보두앵 국왕 경기장
| 원어 명칭 | 프랑스어: Stade Roi Baudouin 네덜란드어: Koning Boudewijnstadion |
|---|---|
| 이전 명칭 | 100주년 경기장 (Stade du Centenaire, 1930–1946) 에젤 경기장 (Stade du Heysel, 1946–1995) |
| 위치 | 벨기에 브뤼셀-수도권 브뤼셀 시 라쾽 마라통 가 135/2, 1020 |
| 좌표 | 북위 50° 53′ 44.54″ 동경 4° 20′ 2.70″ / 북위 50.8957056° 동경 4.3340833° |
| 개장 | 1930년 8월 23일 |
| 보수 | 1995년(€ 3700만) 2024년 |
| 표면 | 잔디 |
| 규모 | 106 m x 66 m |
| 수용 인원 | 50,093 명[1] (최다 관중 기록: 64,073명 안데를레흐트-던디, 1963년 3월 6일) |
| 사용처 |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1930년-1985년, 1995년-현재) 위니옹 생질루아즈 (2016년-현재, 유럽 축구 연맹 주관 대회) 벨기에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 루아얄 엑셀시오르 브뤼셀 (육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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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두앵 국왕 경기장(프랑스어: Stade Roi Baudouin stad ʁwa bodwɛ̃[*], 네덜란드어: Koning Boudewijnstadion ˌkoːnɪŋ ˈbʌudəʋɛinˌstaːdijɔn[*])은 벨기에 브뤼셀의 다목적 경기장이다. 브뤼셀 시 북서쪽에 지어진 이 경기장은 1935년 세계 박람회를 위해 브뤼셀 시 북서쪽 에젤 구릉에 지어졌다. 이 경기장은 1930년 8월 23일에 레오폴 3세 왕태자가 개장식을 지켜보는 가운데 개장했다. 당시 경기장은 70,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경기장 명칭은 보두앵 국왕의 명칭을 땄으며, 레오폴 3세의 후임 국왕이었던 그는 1951년부터 1993년에 승하하기 전까지 재위에 있었다.
경기장은 브뤼파르크 공원(아토미움, 미니 유럽 미니어처 공원, 키네폴리스 영화관 근처) 내에 있으며 주소는 마라통 가(프랑스어: avenue de Marathon) 135/2이다. 근처에 브뤼셀 메트로 역이 2개 있는데, 6호선 에젤 역이나 보두앵 국왕역에서 내리면 된다.
역사
[편집]초기 역사
[편집]보두앵 국왕 경기장은 1935년 브뤼셀 세계 박람회를 설계한 요세프 판 네크 건축가의 근대식 설계로 1929년에서 1930년 사이에 지어졌다. 개장 당시 명칭은 벨기에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00주년 경기장(프랑스어: Stade du Centenaire, 프랑스어: Jubelstadion)으로 명명되었고, 비공식 벨기에-네덜란드 축구 친선전이 열렸다.

1946년, 자전거 트랙의 목재 부분을 철거하였고, 지역 명칭을 따 에젤 경기장(프랑스어: Stade du Heysel, 네덜란드어: Heizelstadion)으로 개칭되었다.[2] 1971년, 육상 대회를 열기 위해 육상 트랙이 설치되었다. 3년 후인 1974년 신형 조명 장치가 설치되었다.
에젤 경기장은 1958년, 1966년, 1974년, 그리고 1985년에 유러피언컵 결승전을, 1964년, 1976년, 그리고 1980년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결승전을 주최했다. 유럽대항전 최다 관중 기록은 1958년에 세운 69,000명이었다.
1985년 5월의 학살
[편집]에젤 경기장은 비록 벨기에의 국립 경기장이었지만, 1985년 유러피언컵 결승전 시점에 유지보수에 소홀해 시설이 열악한 상태였다. 개장한 지 55년이 지난 이 경기장은 몇 년동안 유지관리가 미흡했고, 시설의 일부는 글자 그대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예를 들어, 경기장 외벽은 시멘트 블록으로 대충 쌓여 있었고, 표를 구매하지 않은 지지자들은 발로 벽을 차며 잠입을 시도했다.[3] 또한, 비상 탈출로가 위쪽으로만 나 있었고, 출입문이 경기장 양쪽 끝에 3개밖에 없었고, 2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입석 구역에서 빠른 탈출이 가능한 비상구가 별도로 없었다.[4]
경기장의 열악한 악명은 이전부터 자자했다. 앞서, 1980년에 아스널 지지자들이 몇 년 전에 이 곳에서 경기를 치르고는 "쓰레기장" 같다는 증언을 했다. 물론, 1985년 유러피언컵 결승전에 오른 양 구단이자 당대 유럽 축구의 양대 산맥이었던 유벤투스와 리버풀의 회장도 에젤 경기장은 유럽대항전 결승전을 열만한 자격이 있는 상태가 아님을 짚었다. 그들은 유럽 축구 연맹(UEFA)에 경기장 변경을 요청했지만 묵살되었다.[5][6] 유럽 축구 연맹은 이후 불과 30분 동안 경기장을 조사하는데 그쳤다.[4]
1985년 5월 29일, 에젤 학살이 발생하면서, 유벤투스 지지자 39명이 경기 전에 리버풀 지지자들을 피하다가 다중밀집사고로 사망했다.[3] 대참사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땜질 후 1986년과 1990년에 벨기에 국가대표팀 경기를 열었다. 이는 정부에서 35,000석 시설로 경기장을 보수할 계획에서 진행된 것이었다. 결국, 1990년, 유럽 축구 연맹은 해당 경기장을 최소 2000년까지 유럽대항전 결승전을 열지 못하도록 제재했다.[4] 트랙과 필드 경기도 계속 진행되었고, 판 담머 기념 대회도 매년 열렸다.
현대화
[편집]
1995년, 대참사 10년 후, 경기장은 15억 BEF(1995년 통화가치로 약 € 3700만/$ 5000만)에 보수가 완료되었고, 경기장 명칭도 2년 전에 승하한 보두앵 국왕의 명칭을 땄다. 구 경기장과 동일한 구조로 된 부분은 정문 근처의 새로 지어진 관문이다. 새 경기장은 축구장 주변에 육상 트랙이 있어 육상 경기를 진행할 수 있다. 1995년 8월 23일에 재개장한 이 구장은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의 안방이며 벨기에의 최대 규모 경기장이다. 이 경기장은 50,093명을 수용할 수 있다. 새 구장은 1996년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결승전을 주최했고, 유로 2000의 개막전도 이 경기장에서 열렸다.
2006년 5월 26일, 벨기에 왕립 축구 협회는 한 스탠드의 출입구가 너무 좁아 안전상 우려가 된다고 국가대표팀 안방 경기와 벨기에 컵 결승전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국가대표팀 경기를 콩스탕 반덴 스토크 스타디온에서 진행했다. 브뤼셀 시청은 이와 달리 경기장은 안전하다고 주장했고, 법원에서 이 주장을 인용했다. 2006년 10월 6일, 벨기에 왕립 축구 연맹은 브뤼셀 시청과의 회담을 통해 2008년 6월 30일까지 계약을 갱신했다.
2019년, 벨기에 왕립 축구 협회는 보두앵 국왕 경기장의 재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보수 후 경기장은 40,000명으로 축소될 것이며, 2022년에 완료될 것으로 예상되는 경기장은 황금 세대 아레나로 개칭될 예정이었다.[7] 이 계획은 조용히 묻혔다. 건축업체나 환경 조사나 업체 물색 어느것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안에 긍정적으로 답한 정당별 정치인조차도 그 어느것도 진척이 없다고 밝혔다.[8]
스포츠 행사
[편집]축구
[편집]축구 주요 대회 행사가 이 경기장에서 열렸다: 1958년, 1966년, 1974년, 그리고 1985년에 유러피언컵 결승전이, 1964년, 1976년, 1980년, 그리고 1996년에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결승전이 열렸고, 1972년에는 유럽 선수권 대회 결승전이 열렸고, 이 경기에서 서독이 소련을 3-0으로 이겼다.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공동개최한 유로 2000에서는 5경기를 진행했는데, 6월 10일에 벨기에와 스웨덴 간 개막전(2-1)을 열었고, 6월 28일에 포르투갈과 프랑스 간 준결승전(1-2)을 진행했다.
- 유로 2000 경기
| 날짜 | 1팀 | 결과 | 2팀 | 단계 |
|---|---|---|---|---|
| 2000년 6월 10일 | 2–1 | B조 | ||
| 2000년 6월 14일 | 2–0 | |||
| 2000년 6월 19일 | ||||
| 2000년 6월 24일 | 2–0 | 8강전 | ||
| 2000년 6월 28일 | 2–1 (서든 데스 연장전) | 준결승전 |
2021년 2월 18일, 벨기에 여자 국가대표팀은 이 경기장에서 첫 경기를 치렀다. 이 경기는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이 3국이 공동으로 여자 월드컵을 유치 홍보하는 목적으로 치러젔는데, 이 경기에서 네덜란드에 1-6으로 패했다. 유치전에 따라 벨기에 여자 대표팀이 주로 안방 경기를 치르는 에네코 경기장을 대신해 보두앵 국왕 경기장을 치르는 것으로 결정된 것이었다.[9]
사이클링
[편집]
UCI 트랙 사이클링 세계 선수권 대회가 1930년 1935년에 100주년 경기장에서 열렸다.
이 경기장은 로드 사이클링 경기장으로 활용되었다. 예를 들어 1949년과 1960년 투르 드 프랑스의 2차전 결승전이 에젤 경기장에 설치되었다.[10]
럭비 유니언
[편집]2007년 8월 25일, 벨기에는 2007년 럭비 월드컵을 앞두고 아르헨티나와 럭비 유니언 연습 경기를 치렀다. 아르헨티나가 이 경기에서 36-8로 이겼다.
이 경기장은 2009년 12월 19일에 럭비 유니언 경기에 이정표가 세워워질 수도 있었는데, 파리 연고의 스타드 프랑세가 하이네켄 컵 안방 경기에서 북아일랜드의 얼스터 럭비를 상대할 예정이었고, 이 경기의 표가 30,000장 이상 팔렸다. 그러나 본래 경기를 치를 날에 폭설로 이 경기는 본래 벨기에에서 진행될 첫 하이네켄 컵이 될 예정이었다. 경기는 결국 이튿날 파리에서 열렸다.[11]
이 경기장에서 2012년에 하이네켄 컵 경기 개최 시도를 한 번 더 했다. 2012년 10월 20일, 잉글랜드의 사라센스가 라싱 메트로와의 하이네켄 컵 조별 리그 경기를 브뤼셀에서 치렀다.[12]
테니스
[편집]2010년 7월 8일, 이 경기장에서 쥐스틴 에냉과 킴 클레이스터르스 간 벨기에 최고 갈라가 이 경기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에냉이 철회하면서 세리나 윌리엄스가 대타로 출전했고, 종전 성간 대결에서 세운 단일 경기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했다.[13]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History King Baudouin Stadium”. 벨기에 왕립 축구 협회. 2016년 6월 2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5년 5월 9일에 확인함.
- ↑ “Stade Roi Baudouin, anciennement stade du Centenaire – Inventaire du patrimoine architectural” (프랑스어). 《monument.heritage.brussels》. 2021년 3월 25일에 확인함.
- 1 2 Evans, Tony (2005년 4월 5일). “Our day of shame”. 《The Times》 (London). 2019년 12월 1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6년 5월 24일에 확인함.
- 1 2 3 “The Heysel Stadium Disaster”. 《벨기에 왕립 축구 협회》. 2018년 12월 16일에 확인함.
- ↑ “LFC Story 1985”. 《Liverpool Official Website》. 2006년 5월 2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6년 5월 24일에 확인함.
- ↑ Enrico Sisti (2010년 5월 28일). “Il calcio cambiò per sempre” (이탈리아어). la Repubblica. 2014년 3월 2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4년 3월 22일에 확인함.
- ↑ “Golden Generation Arena – An arena at the height of our golden generation”. 《belgianfootball.be》. 벨기에 왕립 축구 협회. 2019년 3월 19일.
- ↑ “Golden Generation Arena stort al in elkaar”. 2022년 5월 25일.
- ↑ “Royal Belgian FA”. 《www.rbfa.be》.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 ↑ “Le Tour de France et Bruxelles, une histoire en quelques dates” (프랑스어). 《rtbf.be》. 2019년 7월 4일.
- ↑ “Stade Français Paris v Ulster Rugby”. European Rugby Cup. 2009년 12월 20일. 2010년 4월 1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9년 12월 20일에 확인함.
- ↑ “Sarries take Heineken Cup to Brussels”. ESPNscrum.
- ↑ “Clijsters to play Henin at 40,000-capacity stadiu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