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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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기
출생1928년
일제 강점기 황해남도 해주시
성별남성
국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직업정치인

박남기(朴南基, 1928년 ~ ???)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前)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이다.

생애[편집]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 당 경공업비서, 국가계획위원장, 당 경제비서를 역임하다가 1998년 9월부터 2003년 9월까지 국가계획위원장, 2003년 9월 최고인민회의 예산위원장, 2005년 7월에 당 계획재정부장에 차례로 임명되었다.[출처 필요] 1980년대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으로 승진한 후, 1990년대에는 경제에 능통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제통이 되었다. 그 후, 2000년대에는 조선노동당 계획 재정 부장으로 승진하였다. 연합뉴스는 한국 통일 연구원이 발간하는 「1994-2008 김정일의 현지 지도 동향」을 분석하여, 2007년부터 김정일을 수행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실각[편집]

2009년 11월 30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원을 100분의 1으로 하는 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하였다. 이 지시를 실시한 인물로서 박남기의 이름이 보도되었다. 통화의 교환에 있어서는 한사람 당 10만원의 상한액이 설정되고 그것을 넘는 현금은 사실상, 북한 정부에게 몰수되게 된다. 지하 자금의 유통을 저지하고 암시장의 이권 구조를 파괴하여,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여겨지지만, 그렇지 않아도 적은 물자의 매석이 발생하고, 물가의 상승하였다.

총살설[편집]

대한민국의 대북 관련 매체인 데일리 NK는 2010년 6월 9일에 박남기가 화폐개혁 실패를 이유로 총살되었다고 보도하였다.[1] 대한민국 정부는 이 보도가 확실하지 않으며, 현재 정확한 내용이 파악이 안 된다고 분석하였다.[2] 결과적으로 박남기 총살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으며, 2011년 시점으로 생존한 상태임이 확인되었다.[3]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박성국 (2010년 6월 9일). "화폐개혁 책임 '박남기+1' 총살 後 대규모 숙청". 데일리엔케이. 2019년 11월 2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 “北 박남기 총살설”. 《서울신문》. 2010년 3월 19일. 2020년 7월 24일에 확인함. 
  3. “총살설 北 박남기 "누가 나 죽었다고 해?". 《뉴데일리》. 2011년 2월 2일. 2020년 7월 24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