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자이 절벽
푼탄 사바네타 (반자이 절벽) | |
인근도시: | 사이판산 로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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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 | 북위 15° 17′ 17″ 동경 145° 48′ 58″ / 북위 15.28806° 동경 145.81611° |
면적: | 7.5 에이커 (3.0 ha) |
운영자: | 주 |
부분: | 랜딩 비치; Aslito/Isley Field; & 마피 포인트, 사이판섬 (#85001789) |
NRHP등록번호: | 76002192[1] |
지정・해제일 | |
NRHP지정일: | 1976년 8월 27일 |
NHLDCP지정일: | 1985년 2월 4일 |
푼탄 사바네타(차모로어: Puntan Sabaneta) 또는 반자이 클리프(영어: Banzai Cliff, 일본어: バンザイクリフ 반자이쿠리후[*]), 만세 절벽은 북마리아나 제도 사이판 최북단의 곶이다. 북마리아나 정부는 이 절벽의 정식 명칭을 ‘푼탄 사바네타’(Puntan Sabaneta)로 변경했지만, 세계에서 ‘반자이 절벽’이라는 명칭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개요
[편집]태평양 전쟁 중 일본군 사령부가 사이판 북부에 있었으며, 미군과의 치열한 사이판 전투(1944년 6월 15일 ~ 7월 9일) 중 멀리 있던 일본 병사와 민간인이 미군의 투항 권고, 설득에 응하지 않고 80m 아래 바다로 몸을 던져 자결한 비극이 서려 있는 절벽(곶)이다. 이들이 자결할 때 ‘천황 폐하 만세(天皇陛下、万歳 덴노헤이카 반자이)’, ‘대일본 제국 만세(大日本帝国、万歳 다이닛폰데이코쿠 반자이)’를 외치며 두 팔을 올리면서 몸을 던졌기 때문에 전후 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자살한 군인들의 수는 1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고, 바다는 피로 새빨갛게 물들어 시체의 바다로 변해 있었다. 뛰어 내린 군인들 중 일부는 죽지 않고, 미국 배에 구조되었다.[1]
1976년 미국 국가 사적지로 등록되었고[1][2], 사이판 섬의 미국 역사기념물이다.[3] 현재는 사이판 남태평양 지역의 평화기념공원으로 정비되어 위령비와 사원이 건립되어 있으며, 절벽 주변에 있는 다수의 공양탑과 함께 관광지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또한 위령비로 향하는 길 중간에는 대포와 전차가 방치되어 있어 견학할 수 있다.
한국평화기념탑
[편집]2005년 6월 28일, 아키히토 천황, 미치코 황후 부부가 사이판 북부 중부 태평양전몰자기념비에 헌화, 반자이 절벽을 방문해 묵념을 했다. 이들은 또한 한국인을 위령하는 한국평화기념탑과 오키나와 출신을 위령하는 오키나와의 탑에 들러 배례했다. 이 두 곳은 당초 계획되어 있지 않았었다.[4]
희생자
[편집]- 일본군, 일본 민간인, 한국인 : 55,000명 이상
- 미군 : 3500명 이상
- 차모로 인 : 900명 이상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가 나 다 (영어)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2010년 7월 9일). “National Register Information System”. 《미국 국립사적지》.
- ↑ Dennis C. Vander Tuig (1976). “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 Inventory/Nomination: Banzai Cliff” (PDF).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2011년 10월 16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15년 7월 24일에 확인함. and accompanying two photos from 1976 Archived 2011년 10월 16일 - 웨이백 머신
- ↑ “NHL nomination for Landing Beaches; Aslito/Isley Field; & Marpi Point, Saipan Island” (PDF).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2015년 4월 14일에 확인함.[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위령비에 헌화 희생자 추모 한국인 위령비도 Archived 2015년 7월 25일 - 웨이백 머신, 2005년 6월 28일 교도 통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