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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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
Marcel Proust 1895.jpg
출생 1871년 7월 10일(1871-07-10)
프랑스 파리
사망 1922년 11월 18일 (51세)
프랑스 파리
직업 소설가, 수필가, 비평가
국적 프랑스의 기 프랑스
장르 모더니즘
대표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프랑스어: Valentin Louis Georges Eugène Marcel Proust 발랑탱 루이 조르주 외젠 마르셀 프루스트[*], 1871년 7월 10일 ~ 1922년 11월 18일)는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수필가, 평론가이다. 그는 1871년 7월 10일 파리에서 태어났으며 1922년 11월 11일 파리에서 죽었다. 프루스트의 주요 저서로는 1913년부터 1927년까지 출판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라는 제목의 연작 소설이 있다.

교양있고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마르셀 프루스트는 어린 시절 허약한 아이였고 전 생애를 천식으로 인한 심각한 호흡기 문제로 고통받았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귀족들의 살롱에 드나들었고 거기서 그는 예술가들과 작가들을 만나며 사교계 딜레탕트로 유명세를 떨쳤다. 집안의 재산덕에 그는 일을 하지 않았고 1895년에 작가 사후 1952년에 장 상퇴유 (Jean Santeuil) 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끝내 미완으로 남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00년, 존 러스킨의 발자취를 따라 예술 작품들을 알아가고자 그는 계획하던 소설을 그만 쓰고 대신 베네치아파도바로 여행을 떠났고 그것에 관해 글을 썼으며 러스킨의 책 두 권, 아미엥의 성서 (La Bible d'Amiens)참깨와 백합 (Sésame et les Lys)을 번역했다.

1907년부터 마르셀 프루스트는 1913년 부터 사후인 1927년까지 7권으로 출판된 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쓰기 시작했으며 2권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À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는 1919년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1922년 11월 18일 기관지염을 치료받지 못한 나머지 사망했다. 프루스트는 파리 페르-라셰즈 묘지에 매장되었고 거장에게 경의를 표한 많은 이들이 장례식에 참석했으며 뒤이은 세대의 작가들은 프루스트를 최정상 작가 반열에 올리며 그를 진정한 문학의 신화로 만들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작품은 작가의 고유한 세계를 그려야 하는 예술의 역할처럼 당시의 시대상과 감성적인 기억의 주된 성찰을 보여준다. 그 뿐 아니라 작품은 동성애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프루스트적 묘사로 흐릿하게 그려낸, 실패라는 감정과 존재의 허무에 관한, 사랑과 질투의 성찰이기도 하다. 또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200명 이상의 등장인물이 나오는 광대한 인간 희곡[1]이다. 프루스트는 신랄한 문체로 경이롭고 때로는 냉소적으로 다뤄지는 세계, 유년시절 레오니 숙모의 집에서부터 콩브레, 그리고 귀족과 부르주아 계층이 대조되는 파리의 살롱들처럼 작품내에서 보여지는 장소들을 재창조했다. 이러한 사회적 무대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익살극의 주인공처럼 묘사한 각양각색의 등장 인물들에 의해 생동감있게 그려진다.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실존 인물들에게서 모티브를 따온, 시대를 그린 회화이자 모델 소설[2]로 탄생했다. 프루스트의 특색은 형성(se faire)의 과정에서 창조의 나선을 따라, 항상 잡을 수 없는 실재의 전체성에 도달하기를 추구한, 문장을 길게 늘린 그의 문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생애[편집]

유년기[편집]

콩브레의 분위기를 묘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 귀스타프 카유보유 작.

마르셀 프루스트는 그의 외종조부 루이 베유 (프랑스어: Louis Weil)의 집, 파리 16구역 오퇴유 구 라 퐁텐가 96번지에서 태어났다. 이후 이 집은 팔렸고 헐린 다음 다른 건물이 지어졌으나 지어진 건물도 모차르트 대로 건설로 인해 헐리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 장 클레망스 베유(프랑스어: Jeanne Clémence Weil)는 부유한 로렌 메츠 출신 유대계 알자스인의 딸이었고, 아들에게 화려하고 심오한 문화를 접하게 해줬다. 그녀는 아들에게 때로는 귀찮게까지 애정을 쏟았다. 그의 아버지 아드리앵 프루스트 박사(프랑스어: Achille Adrien Proust)는 외르 에 루아르 일리예 출신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파리 대학 의대 교수였으며 전염병 대책에서 정부에게 자문을 한 대단한 위생학자였다. 마르셀은 1873년 5월 24일 태어난 남동생 로베르가 있었다. 로베르는 후에 외과 의사가 된다. 프루스트의 대부는 예술품 수집가 외젠 뮈티외였다.

1870년 공성과 1871년 파리 코뮌 시절 그를 임신한 어머니가 처했던 궁핍한 생활 탓에 그가 허약하게 태어났다고 여겨진다.[출처 1][출처 2] 파리 코뮌의 혼란으로부터 프루스트의 부모는 오퇴유로 피난간다. 프루스트는 고통스런 유년기를 보냈지만 부모의 보살핌 속에서 자랐다.

천주교 신자인 아버지와 유대인인 어머니에게서 결합이라는 가정환경에서 프루스트는 파리 생 루이 당탱 교회에서 천주교 세례를 받았으나 종교와 관련하여 자신을 규정하지 않고자 했다.

그는 허약했고 봄은 그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계절이었다. 아름다운 봄날에 분비되는 꽃가루는 그의 천식을 더 악화시켰다. 아홉 살 때 부모님과 불로뉴 숲을 산책하면서 그는 천식 발작 증세를 호소했고 그의 호흡기는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그에게 최후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봄이 올 때 마다 그가 산책할 때 그 어느 때라도 천식 발작이 심하게 일어난다면 죽을 수도 있다는 위협이 프루스트의 전 생애에 걸쳐 도사렸다.

젊은 시절[편집]

리세 콩도르세 졸업식, 장 베로 작.
1887년 3월 15살의 어린 마르셀, 폴 나다르 촬영.

그는 파프 카르팡티에에게 초등교육을 받았으며 작곡가 조르주 비제의 아들인 자크 비제와 훗날 비제의 아내가 되는 제네비에브 알레비가 여기서의 동창생이었다. 카르팡티에는 그녀의 삼촌 집에서 살롱을 열기 시작했는데 그곳에는 여러 예술가들이 모였다. 1886년 그녀는 변호사 에밀 스트라우스와 재혼하고 자신의 살롱을 열었는데 프루스트가 그곳의 단골이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1882년 리세 콩도르세에 입학해서 공부를 계속 해나갔다. 그는 5학년 때 유급했으나 1884년 12월에는 처음으로 우등생 명부에 이름이 올라갔다. 그는 종종 건강상을 이유로 결석했지만, 소설 장 상티유에서 서술한 것 처럼 빅토르 위고뮈세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철학 수업에서 알퐁스 다를뤼의 제자였고, 이 무렵 자크 비제와 친하게 지냈다. 그는 학교에서 문학 잡지를 함께 만들던 페르낭 그레그, 자크 베녜르와 다니엘 알레비 (자크 비제의 사촌)와 교우관계를 쌓기도 했다. 그의 첫사랑은 당시 러시아 제국의 폴란드인 외교관의 딸 마리 드 베나르다키였다. 목요일 오후마다 둘은 후에 대통령이 되는 펠릭스 포르의 두 딸, 앙투아네트와 뤼시 펠릭스 포르 고요와 레옹 브륀슈비크, 폴 베나제, 모리스 에르베트와 함께 샹젤리제 공원에서 놀았다.

프루스트는 1887년 마리 드 베나르다키와 절교하게 되고 그의 첫 애정, 어머니를 제외한 타인에게 사랑받고 사랑을 한 첫사랑은 고로 실패했다. 베나르다키는 프루스트가 이후 찾고자 했던 그가 잃어버린 첫 소녀 (jeune fille)[3]였다.

프루스트의 첫 문학 활동은 리세 고학년 때에 이뤄졌다. 시간이 지나 1892년, 그레그는 콩도르세 동창들과 함께 소규모의 잡지 향연 (Le Banquet)을 창간했고 프루스트는 이 잡지에 글을 썼다.

그 후 파리의 여러 살롱들을 드나들며 사교계 출세를 하려던 그는 스노비즘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들었다. 이후 그는 소설가 알퐁스 도데의 아들인 6살 연상의 뤼시엥 도데와 친분을 쌓았다. 젊음은 훗날의 작가 프루스트를 사로잡았다. 그들은 1895년 수업에서 만났다. 적어도 서로 애정을 보인 그들의 관계는 장 로렌의 신문 기사에서 밝혀졌다.

마르셀 프루스트 (사진 속 앉은 사람), 로베르 드 플레르 (왼쪽), 뤼시엥 도데 (오른쪽)

마르셀 프루스트는 국가의 부름을 받고 1889년부터 1890년까지 오를레앙의 76 보병연대에서 복무하였고, 거기서 좋은 추억을 쌓았다. 그는 로베르 드 빌리와 친구가 되었다. 파리에서 그의 절친한 친구가 된 가스통 아르망 드 케야베와 프루스트가 반한 그의 약혼녀 잔 푸케를 알게 된 것도 이 시절이었다. 그는 소설 속 등장인물 로베르 드 생루와 질베르트를 이들을 모델로 창작했다. 그는 마담 아르망 드 카야베의 살롱에 초대받기도 했다. 그는 끝까지 이 살롱의 단골이었고,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였던 아나톨 프랑스 (베르고트의 모델)를 이곳에서 만나게 된다.

전역 후 사회에 나와서 그는 정치학 사립 학교 (École libre des sciences politiques)에서 그가 '박식하다'고 평가한 알베르 소렐과 아나톨 르루아 보리외의 강의를 들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외무고시나 국립고문서학교 (École des chartes)에 합격하겠다고 나섰다.

후자에 더 관심을 들인 그는 국회도서관 사서 샤를 그랑장에게 글을 썼고, 먼저 소르본에서 학위를 따기로 결정한다. 소르본에서 프루스트는 사촌의 남편인 앙리 베르그송의 수업을 들었다. 그는 베르그송의 결혼식에서 참석하기도 했다. 프루스트의 작품에서 베르그송의 영향은 종종 중요하게 생각되며 프루스트는 그것을 옹호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1895년 3월 문학사 학위를 받는다.

1896년 그는 세기말 문체의 시와 산문, 단편 모음집, 즐거움과 나날들 (Les Plaisirs et les Jours)을 출판한다. 이 모음집에는 프루스트와 작곡가 친구 레이날도 안과 함께 살롱에 드나들던 마들렌 르메르의 삽화가 수록되었다. 그는 1894년 봄에 샹송 그리스를 부른 쥘 마스네의 제자이자 레이날도 안의 부인인 르메르와 만났다. 23살의 프루스트와 20살의 레이날도 안은 1894년 여름 샤토 드 레베이옹에서 열린 파티에서 보았다.

책 즐거움과 나날들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고 비평가들은 책에 대해 호된 비판을 가했다. 특히 작가 장 로렌은 가차없는 평가를 내렸다. 그는 새벽에 총을 들고 결투하겠다고 말했다. 그에 맞서 마르셀 프루스트는 입회자인 화가 장 베로와 함께 똑같이 총 들고 그를 만나러 갔다. 누구 하나 다치지 않고 끝났지만, 어느 누구도 막 등단한 이 작가를 보고 슬퍼하지 않았다. 이 책은 프루스트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권이 나온 뒤에도 그가 사교계 딜레탕트라는 평을 듣게 했다.

장 상퇴유 집필[편집]

마들렌 르메르의 샤토 드 레베이용. 프루스트는 1894년부터 1895년 사이에 두 차례 이곳에 오래 머물렀다. 이 곳은 소설 장 상퇴유베르뒤렝 부인라 라스펠리에에 영감을 주었다.

집안의 부는 그에게 쉬운 삶을 보장해줬으며 그를 부르주아와 포부르 생 제르맹과 포부르 생 오노레의 귀족 사회로 구성된 살롱을 자주 드나들 수 있도록 도왔다. 그의 친구 기슈 공작 아르망 드 그라몽의 장모이자 시인의 사촌인 그레퓔레 백작부인, 엘렌 스탕디슈 부인 (결혼 전 성은 페뤼스 데 카르), 바그람 공주 (결혼 전 성은 로트쉴드), 오송빌 백작부인와의 만남처럼 1894년부터 1900년 초 사이에는 그가 귀족적인 살롱에서 소개받은 유명한 로베르 드 몽테스퀴외와의 만남이 있었다.

1895년부터 1899년에 걸쳐서 3인칭 형식의 자서전적인 장편소설 《장 상퇴유(Jean Santeuil, 1952)》를 시도하였으나 미완으로 그쳤다.

존 러스킨의 미학[편집]

존 러스킨의 <아미앵의 성서>와 <참깨와 백합>을 번역하였다(1904, 1906). 후에 《모작과 잡록(Pastiches et mélanges, 1919)》과 《시평집(1927)》에 수록될 평론을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문학활동은 모두 '유일하고 참다운 글'을 쓰기 위한 준비라 할 수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편집]

1906년 양친을 여읜 정신적 타격을 넘어서 《생트뵈브에 반하여 (Contre Sainte-Beuve, 1954)》을 쓰기 시작하며, 이것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집필로까지 이어진다. 이후 프루스트는 죽을 때까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몰두하였고, 총 일곱 권으로 구성된 이 방대한 분량의 작품은 1913년부터 1927년에 걸쳐 출판된다. 대전 이후 출간된 제2권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 (À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로 1919년 공쿠르상을 받아 일약 유명해졌을 뿐만 아니라, 이 걸작으로 20세기 최대 작가의 한 사람이 되어 널리, 그리고 깊이 영향을 끼쳤다.

작품 목록[편집]

페르-라셰즈 묘지에 위치한 마르셀 프루스트의 무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전작[편집]

프루스트 생전 출판[편집]

프루스트 사후 출판[편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편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프랑스어: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1권 〈스완네 집 쪽으로〉(Du Côté de chez Swann), Grasset, 1913년

  • 1부 : <콩브레> (Combray)
  • 2부 : <스완의 사랑> (Un amour de Swann)
  • 3부 : <고장의 이름 : 이름> (Noms de Pays : le nom)

2권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서〉(À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 NRF, 1918년, 공쿠르상 수상작

  • 1부 : <스완 부인의 주변> (Autours de Mme Swann)
  • 2부 : <고장의 이름 : 고장> (Noms de Pays : le pays)

3권 〈게르망트 쪽〉(Du Côté de Guermantes), NRF,

4권 〈소돔과 고모라〉(Sodome et Gomorrhe), NRF,

5권 〈갇힌 여자〉(La Prisonnière), NRF, 1923년


6권 〈사라진 알베르틴〉(Albertine disparue), NRF, 1925년


7권 〈되찾은 시간〉(Le Temps retrouvé), NRF, 1927년

한국어 번역서[편집]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민음사 ISBN 978-89-374-8561-9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 스완네 집 쪽으로 2》, 민음사 ISBN 978-89-374-8562-6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1》, 민음사 ISBN 978-89-374-8563-3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2》, 민음사 ISBN 978-89-374-8564-0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 - 게르망트 쪽 1》, 민음사 ISBN 978-89-374-8565-7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6 - 게르망트 쪽 2》, 민음사 ISBN 978-89-374-8566-4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국일미디어 ISBN 89-7425-180-9
  •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펭귄클래식 ISBN 987-89-01-15627-9

일화[편집]

각주[편집]

각주[편집]

  1. 원 작성자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단테의 신곡 (佛)Divine Comédie (伊) Divina Commedia 과 제목을 대응시킨 오노레 드 발자크인간 희곡 Comédie Humaine에 비유하고 있음
  2. 실재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을 소재로 하거나 작가 자신의 체험을 허구화하여 만든 소설. 독자에게 실록을 읽는 것과 같은 흥미를 느끼게 한다. (표준국어대사전 참고)
  3.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권 꽃핀 소녀들의 그늘과 그 책의 주제

출처[편집]

  1. Cyril Grunspan, Marcel Proust : Tout dire, Portaparole, 2005, 21p.
  2. Julia Kristeva, invitée de Marc-Alain Ouaknin, « Proust, être juif entre la Madeleine et la Victoire », Les Talmudiques, France-Culture, 2013년 10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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