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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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호안(베트남어: Lê Hoàn) 또는 려환(黎桓, 941년 8월 10일 ~ 1005년 4월 19일)은 대구월 전려조의 제1대 황제(재위: 980년 ~ 1005년)이다. 시호대행황제(大行皇帝)인데, 여기서 따와 레다이하인(Lê Đại Hành) 또는 려대행(黎大行)이라 불리기도 한다.

생애[편집]

려환의 선조는 현재의 중국 광시 좡족 자치구의 계림시(桂林市) 양삭현(陽朔縣) 출신이라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정부령의 부하가 되었다. 968년정조가 창건되자 십도장군(十道將軍)에 임명되었다.

979년에 궁정 변란이 일어나 정부령과 그의 장자 정련(丁璉)이 환관 두석(杜釋)에 의해 살해되었고, 정선이 뒤를 이었다. 당시 정선은 너무 어려서, 황태후 양운아(楊雲娥)와 간통하던 려환이 실권을 장악했다. 정조의 대신인 정국공(定國公) 완복(阮匐)과 정전(丁佃), 범합(范盍) 등은 려환의 전횡에 반대하여 반란을 일으켰지만, 병력이 많았던 려환에 의해 진압되었다.

정조 내부에 내란이 일어나자 980년송나라의 광서옹주지사(廣西邕州知事) 후인보(侯仁寶)가 송 태종에게 정조를 공격할 것을 건의하니 수용되었고, 후인보는 육군과 수군을 이끌고 정조를 침공했다. 황태후 양운아는 려환에게 출병하여 송나라를 막도록 하였는데, 행군하던 도중 군중에서 려환을 추대하니 려환은 황제로 즉위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양운아는 용포를 려환에게 전하도록 하였고, 려환은 정선을 폐위하고 위왕(衛王)에 봉하니 이로써 정조가 멸망하였다. 이어서 려환은 송나라군을 기습하여 패배시켰고 후인보가 전사하니 송나라군은 철수했다. 이후 려환은 송나라에 책봉해줄 것을 요구하였고 요나라의 위협에 노출되고 있던 송나라는 이를 받아들여, 려환을 993년에는 교지군왕(交趾郡王), 997년에 남평왕(南平王)으로 책봉하여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982년에 려환은 참파로 친정하여 수도를 공략하였고, 칭신하고 조공을 바치도록 강요했다. 그의 국내 통치는 실질적으로 군정이었고, 법치는 준엄하고 형벌은 무거웠다. 운하를 건설하여 경제의 발전을 보았다. 또한 11명의 아들을 왕으로 삼고, 베트남의 국경의 방어와 통치를 임하게 하였다.

1002년에 전국 10도를 로(路), 주(州), 부(府)로 고치는 등 지방 제도의 확립을 도모했지만, 지방 호족의 반항은 빈발해졌고, 농민 반란이나 소수민족의 봉기도 다발하는 등 정황이 좋지 못했다. 려환은 이러한 저항 세력에 대해 가혹한 진압을 실시했다고 사서에 기록되었다. 소수민족인 망인의 난과 하만동(河蠻洞)등 49동의 반란을 평정하였다.

1005년에 사망하였다.

전 임
(초대)
제1대 대구월 전려조의 황제
980년 ~ 1005년
후 임
려룡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