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동 (익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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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동 銅山洞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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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 표기 | Dongsan-dong |
행정 | |
국가 | 대한민국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행정 구역 | 52통, 267반 |
행정동 | 3 |
관청 소재지 | 동산동 서동로4길 37 |
지리 | |
면적 | 12.73 km2 |
인문 | |
인구 | 22,100명(2022년 3월) |
세대 | 9,789세대 |
인구 밀도 | 1,736명/km2 |
지역 부호 | |
웹사이트 | 동산동 행정복지센터 |
동산동(銅山洞)은 대한민국의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에 설치된 동이다.
개요
[편집]동산동은 동산동은 남쪽으로는 만경강을 경계로 김제시 백구면과 접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춘포면, 팔봉동과 경계를 이루고 북쪽으로는 마동, 서쪽으로는 인화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행정구역은 3개의 법 정동(동산,금강,석탄동)과 51개통 267개반으로 구성되어 있고, 인구 28,343명이 거주하고 있는 도농복합형 동이다.[1]
역사
[편집]일제때 이리읍 ‘동산정’이었는데 1946년12월1일 동산동으로 개칭 했고, 1951년 6월 1일 동산동을 남·중·북부로 나누었으나 1957년 9월 14일 다시 통합했다. 1973년 7월 1일 김제군 백구면 삼정리 일부 지역이 편입되고, 1983년 2월 15일 익산군 팔봉면 일부 지역과 춘포면 석탄리 일부 지역이 편입되었다. 1994년 12월 1일 동산동의‘나룻가’와‘신천’이 인화동으로 넘어갔다. 1998년 10월 9일 신흥동의 법정동이었던 금강동이 동산동으로 편입되었다.[2]
행정 구역
[편집]행정동명 설명 법정동명 설명 비고 동산동 1949년 개소
2002년 주민자치센터 개관
2018년 행정복지센터 개관동산동(銅山洞) ‘동산(銅山)’이라는 지명은 18세기 말 간행된 『호구총수』(전주)에 남일면 동산리(銅山里)로 처음 언급되었다. 1911년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조선지지자료』(익산)에 남일면의 동산보(銅山洑), 동산리(銅山里)가 기록되어 있다. 석탄동(石灘洞) 석탄동의 본 이름은 전에는 만경강이 돌아서 흐르는 곳이 었기로 ‘돌(廻)’이 ‘돌(石)’이되어 ‘돌여울→石灘’이 되었다. 금강동(金江洞) 1914년 강경리, 금곡리, 운룡리, 신성리, 망산리, 신동의 일부로 한 里가 구성될 때‘금곡리’와‘강경리’에서 한자씩 따서‘금강리’라하여 익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17년에는 북일면에 편입되고 1974년 북일면이 이리시에 편입 됨으로써 법정동 이름으로 ‘금강동’이라 하였다. 금곡(金谷)은 마을 동북쪽의 강둑 근처에 소를 많이 매던 곳이라 ‘쇠실’이라 불렀는데 이를 한문으로 표기해 ‘금곡(金谷)’이 되었다. 강경(江景)은 예전에 강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서 강의 곁이라는 뜻에서 ‘강곁’이라 하던 것이 ‘강경’이 되었다고 한다.
교육
[편집]주거
[편집]단지명 건설사 시행사 주소 입주 비고 동산 그린팰리스 신일건업㈜ 대한주택공사 동천로 25 2009년 8월 옴솟골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
3단지는 국민임대동산여울 3단지 휴먼시아 동천로1길 7 동산 우남 ㈜우남건설 평동로 795-1 1997년 8월 동산 제일2차 ㈜제일건설 평동로17길 5 2001년 10월 동산 제일오투그란데 평동로23길 16 2020년 7월
각주
[편집]- ↑ “소개 > 유래및연혁”. 2021년 6월 3일에 확인함.
- ↑ “소개 > 일반현황”. 2021년 6월 3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