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연군 분묘 도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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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연군 분묘 도굴사건
교전국
Coat of Arms of Joseon Korea.png
조선 왕국
다국적
지휘관
Flag of Hamburg.svg 실행책 에른스트 오페르트
Flag of the United States (1867-1877).svg 물주 프레더릭 젠킨스
Flag of France.svg 앞잡이 스타니슬라 페롱

남연군 분묘 도굴 사건(南延君墳墓盜掘事件)은 1868년 대한제국 고종 5년 상인이자 학자인 독일인 에른스트 오페르트가 충청도 덕산(德山)에 있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南延君)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한 사건이다. 에른스트 오페르트 도굴 사건(Ernst Oppert 盜掘事件)으로도 불린다.

개설[편집]

1866년 고종 3년에 있었던 두 번에 걸친 통상 요구가 거절되자 오페르트는 1868년 고종 5년에 차이나號(호)를 빌려서 충청도 아산만에 내항해 덕산군에 상륙해 흥선대원군의 부친인 남연군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했다. 급보를 받고 충청 감사가 군병을 급히 파견했을 때는 오페르트 일행이 돌아가고 난 뒤였다. 오페르트 일행은 다시 북항(北航)해 인천 영종도(永宗島) 앞바다에 들어와 개국 통상을 교섭코자 관리 파견을 요청했으나 조선 수비병과 충돌해 아무 성과도 없이 상하이로 돌아갔다.

남연군 분묘 도굴 사건은 후일 흥선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된다.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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