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한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김의한 (1900년 ~ 1964년 10월 9일)은 한국독립운동가이다. 본관신 안동.

1900년 독립운동가 동농 김가진의 아들로 출생했다.1919년 비밀결사 대동단(大同團)에 가담했고, 아버지 김가진과 함께 상하이로 망명했다. 이후대한민국임시정부와 명운을 같이한다. 1928년 상하이 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中國本部韓人靑年同盟)의 재정위원으로 활동했다. 1931년 1월 김구, 안공근, 등과 함께 한인애국단을 조직하고 그 일원으로 활동했다. 1932년 4월 윤봉길의 의거 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상하이를 떠날 때, 이동녕(李東寧)·김구(金九) 등을 모시고 자싱(嘉興)으로 피신한다. 1939년 10월 임시정부 비서처(秘書處) 비서, 선전위원회 선전위원이 됐고, 충칭방송국(重慶放送局)을 통해 국내 한국인들에 대한 선전활동을 전개했다. 1940년 5월 치장에서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재창립시, 감찰위원회 위원을 맡았으며 1942년부터 상무위원 겸 조직부 주임을 맡았다. 그 해 9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충칭에 이전, 정착하고 중국 국민당(國民黨) 정부가 광복군(光復軍) 활동에 정식으로 동의한 뒤 광복군총사령부 주계(主計)에 선임됐다 1943년 8월부터 광복군 조직훈련과장을 맡아 활동하였고, 1945년 6월에는 정훈처(政訓處) 선전과장을 맡았다. 광복후 1946년 5월 귀국해서는 독립운동사 자료 수집에 힘썼고 한독당 중앙상무위원으로 재선임되었다. 1948년 4월 한국독립당 대표로 김구와 함께 남북협상회의에 참가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고 1964년 평양에서 사망했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부인은 여성독립운동가 정정화이다.

가계[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