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동 (인권 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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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金福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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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6년 4월 19일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군 양산면 |
사망 | 2019년 1월 28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92세)
거주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 판잣집 |
성별 | 여성 |
국적 | 대한민국 |
학력 | 양산국민학교 |
직업 | 인권운동가 |
김복동(金福童, 1926년 4월 19일 ~ 2019년 1월 28일)은 대한민국의 인권운동가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세계 여러 곳을 돌며 여성의 인권을 신장시키기 위해 활동하였다.[1][2] 67주년 세계 인권 선언의 날을 맞아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2015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을 받았다.[3]
생애
[편집]아버지가 소작농이자 좌익 운동가인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후 초등학교를 다니다 형편이 안 되어 전학을 여러번 가다가 중퇴하고 공장노동자로 일했다가, 위안부 피해자가 됐다.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처음으로 파견되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 등 여러 곳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2012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에서 함께 기거하는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나비기금'을 발족시켰다. 나비기금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일본의 공식 사죄와 함께 이뤄질 법적 배상금 전액을, 전 세계 '전쟁 중 성폭력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각종 폭력에 고통 받는 여성들을 위해 기부하는 기금이다.[4][5][6][7][8]
발언
[편집]김복동 발언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윤미향. '위안부' 피해자에서 인권운동가로, 김복동 할머니의 20년. 민중의소리. 2012년 11월 7일.
- ↑ 박길자. “왜 위안부 할매냐? 강제 동원된 ‘성노예’로 불러야”. 여성신문. 기사입력 2015년 7월 30일. 기사수정 2015년 7월 31일.
- ↑ 고영득. 일본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인권상 국민훈장’. 경향신문. 2015년 12월 10일.
- ↑ 이은경. “우리 고통 알아주는 이들 많으니 행복해요”. 여성신문. 2013년 8월 7일.
- ↑ 김보경. 위안부 기림일 기념 수요집회…9개국서 국제연대. 연합뉴스. 2013년 8월 14일.
- ↑ 박현경. 김복동 할머니, LA 일본총영사관 시위. 라디오코리아. 2013년 7월 25일.
- ↑ 이희정. 세계 1억인 서명 운동 나선 정대협 윤미향 대표 Archived 2013년 6월 25일 - 웨이백 머신. 한국일보. 2013년 4월 19일.
- ↑ 김동선·김민영·김보경·주상돈. "정부가 한 게 뭐 있소, 일본 눈치나 봤지". 아시아경제. 기사입력 2014년 8월 14일. 최종수정 2014년 8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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