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유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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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약조(己酉約條)는 1609년(광해군 1) 에도 막부와 맺은 전문 13조의 송사조약(送使條約)이다. 조약 내용은 주로 쓰시마 후추 번주의 세견선[1]의 왕래 조건에 관한 것이다.

배경[편집]

임진왜란 이후 단절되었던 국교를 재개하기 위해 에도 막부[2]는 통교 요청을 해왔고, 이에 대해 조정에서는 찬·반 양론이 대두되었으나 일본 측이 대조선 통교 재개를 위해 적극적인 태도로 나오자 조선 측은 국서(國書) 요구 문제, 범릉적(犯陵賊)[3]의 압송문제, 피로인(被虜人)의 송환문제 등 대일강화조약의 성립조건을 제시하였는데, 막부는 이를 이행했으므로 조약을 위한 안이 논의되었다.

조약 내용[편집]

조약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쓰시마 후추 번주에게 내리는 쌀은 모두 100석으로 한다.
  2. 쓰시마 후추 번주의 세견선은 20척으로 한다.
  3. 관직을 제수 받은 자는 1년에 한 차례씩 조선에 와야 한다.
  4. 조선에 들어오는 모든 왜선은 쓰시마 도주의 허가장을 지녀야 한다.
  5. 쓰시마 후추 번에서 도서(圖書)를 만들어 준다.
  6. 허가장 없는 자와 부산포 외에 정박한 자는 적으로 간주한다.
  7. 왜관에 머무르는 기간을 쓰시마 도주의 특송선 110일, 세견선 85일, 그밖에는 55일로 한다.

이 약조는 이전의 조약보다 일본 측에 더욱 제약을 가한 것이었다.

함께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세견선”. 표준국어대사전. 조선 세종 때에, 쓰시마 국주의 청원을 들어주어 삼포(三浦)를 개항한 뒤 내왕을 허락한 무역선 
  2. 당시의 쇼군도쿠가와 히데타다
  3. 선릉·정릉을 침범한 범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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