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인민대표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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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인민대표대회(極東人民代表大會)란, 1922년 1월 21일부터 2월 2일까지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 국제대회를 말한다. 최종회의는 레닌그라드(現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렸다.

개요[편집]

1920년에 열렸던 '제2차 코민테른 국제대회'에서 채택한 (민족,식민지문제에 관한 테제)에 입각, 극동의 파압박민족 문제를 다룬 회의로서, 중국,한국,일본,몽고,인도네시아 등지의 대표들이 참가했다. 본래 명칭은 극동피압박인민대회였으나, 일본은 피압박국이 아니라는 문제제기에 의해 '인민대표대회'로 변경되었다. 한국대표단은 23개 단체 대표 52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대표총수 144명의 3분의 1을 넘는 숫자였다. 주요인물은 이동휘,박진순,여운형,장건상,박헌영,임원근,김단야,김규식,나용균,김시현,김원경,권애라등이었고, 여운형이 대회의장단에 선출되었다. 이동휘는 불참했다가 폐회 무렵 도착했다. 이 대회에서는 동방혁명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특히 한국문제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반제민족통일전선의 결성이 유일하고 정당한 노선임이 제시되었다. 상하이로 돌아온 여운형 등은 대회결의에 따라 민족통일전선 결성을 위해 1923년 1월 23일, 국민대표회의를 열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진로를 비롯한 독립운동 방안에 대해 논의하였으나 임시정부 개조문제를 둘러싸고 창조파와 개조파 의견이 대립, 결렬되었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