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 7번 (베토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교향곡 7번 가장조 Op.92 "대곡"》 은 1811년보헤미아의 휴양지 테플리스에서 작곡하기 시작하여 1812년에 완성하였다. 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초연했으며, 모리츠 폰 프리스 백작(Moritz Reichsgraf von Fries 1777~1826)에게 헌정했다. (정식 표제는 대교향곡이다.) 8번과 동시작곡된 7번 교향곡은 경쾌한 장단과 리듬을 앞세운 무곡 스타일 형태를 뛰우고 있는 곡이다.

개요[편집]

베토벤의 7번째 교향곡. '투쟁과 패배' 라는 도식의 5번이나 '자연에 대한 찬미' 가 중심 주제인 6번과 달리, 7번에서는 경괘한 장단과 리듬을 앞에 내세우는 무곡 스타일의 아이디어를 보여주고 있다. 당대건 후대던 이 곡을 평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춤이나 춤곡, 축제 등의 흥분되고 들뜬 모습을 연상케 한다고 한 바 있다. 후속작인 8번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작업했는데, 대략 1811년 말에 착수해서 1812년 4월(혹은 5월)에 완성했다고 되어 있다. 이 시기 동안 베토벤은 빈이 아닌 보헤미아 지방의 테플리츠(현 체코 테플리체)에서 요양하고 있었는데, 불멸의 연인도 여기서 마지막으로 던져졌기 때문에 이 곡들과 모종의 연관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연구가들도 있다. 헌정은 베토벤의 후원자 중 한 사람이었던 은행가 모리츠 폰 프리스 백작에게 행해졌다.

초연[편집]

1813년 12월 8일에 빈에서 열린 자선 음악회에서 처음 연주되었는데, 하나우 전투에서 부상당한 오스트리아 병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개최된 공연이었다. 베토벤 자신도 그렇고 공연을 기획한 사람들도 그렇고 꽤 공을 많이 들였는데, 이 때 관현악단에서 연주한 이들 중에는 후기 현악 4중주 보급에 크게 이바지한 바이올리니스트 이그나츠 슈판치히 등의 명연주가들 외에 당대 혹은 이후의 유명 작곡가들까지 있어서 꽤 흥미롭다.

하지만 청각장애가 한층 심해진 데다가, 당대 악기로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힘과 스피드를 얻기 힘들자 리허설 때 꽤 짜증을 낸 모양이었다. 바이올린 연주자로 참여했던 루이 슈포어의 증언에 따르면, '약하게 연주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아예 보면대 밑으로 기어들어갔고, 강한 부분에서는 펄쩍 뛰어올라 고함을 치기까지 했다' 고 한다.

베토벤이 지휘대에서 지휘한 음악회는 한층 고양된 애국주의 열풍과 승리감도 있어서였는지 크게 성공했다. 특히 2악장은 유별나게 인기를 얻어서 여러 형태로 편곡되었고, 초연 무대에서도 앵콜로 연주되었다. 하지만 이 7번이 유독 인기를 많이 얻어 후속작인 8번을 압도하게 되자, 베토벤은 오히려 짜증을 내며 '8번이 7번보다 더 훌륭한 작품' 이라고 출판사에 편지까지 보내 항의했다.

구성[편집]

  • 1악장(Poco sostenuto-Vivace)은 가장조의 목가풍 서주로 시작한다. 3분 남짓 서주가 연주되고 이어 꾀꼬리 소리를 연상케 하는 경쾌한 리듬의 1악장 제시부가 이어진다. 이 주제에 나타나는 특유의 리듬은 이후 1악장 전체에 걸쳐 반복된다. 서주를 제외한 1악장은 전형적인 소나타 형식이다.
  • 2악장(Allegretto)은 '알레그레토(조금 빠르게)'라고 써 있지만 이 교향곡에서 가장 느린 악장이다. 가단조의 멜랑콜리한 주제가 제시되고, 대위법적으로 전개된다.
  • 3악장(Presto)은 바장조의 스케르초이다. 전형적인 겹세도막 형식(A-B-A)을 확장한 A-B-A-B-A 구조로 되어 있다.
  • 4악장(Allegro con brio)은 이 교향곡을 통틀어 가장 빠르고 힘이 넘치는 악장으로, '바커스(술의 신)의 향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약박에 있는 액센트가 특징

평가[편집]

로맹 롤랑이 지은 베토벤 전기에서 이 곡을 일컬어 '리듬의 대향연'이라 하였듯이, 이 곡은 각 악장마다 독특하고 인상적인 리듬과 경쾌한 장단이 악장 전체를 지배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 곡은 베토벤 교향곡 중에서 인기가 높은 곡으로 손꼽히며, 연주 시간은 약 40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