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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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궁(共和國宮, 독일어: Palast der Republik 팔라스트 데어 레푸블리크[*])은 독일 분단 시절 동독 동베를린에 있었던 청사이다. 남북길이 180m, 동서넓이 85m인 6층 건물로, 백색의 대리석과 청동거울과 같은 색의 유리창으로 외관을 장식하였으며, 내부의 로비에는 1001개의 램프가 걸려있는 등, 흰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부속 시설로는 인민회의장과 볼링장, 식당, 바 등이 있었다.
역사
[편집]공화국궁 자리는 본래 프로이센 왕국/독일 제국의 정궁인 베를린 성이 위치한 곳이었다. 베를린 성은 1918년 독일 제국이 해체되면서 박물관과 국가행사에 이용되었다가, 1945년 2월 3일, 2월 24일의 공습으로 각각 일부와 지붕이 날아갔다. 1945년 독일이 항복한 후 소련군의 점령지구로 들어간 후 일부 파괴된 부분을 보수해 계속 전시장으로 이용했으나, 1949년에 독일 민주 공화국이 세워진 뒤 동독의 공산정권은 베를린 성을 "프로이센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산물"이라 규정, 1950년 9월부터 12월에 걸쳐 성을 철거했다.
이후 성터는 1951년부터 1990년대까지 마르크스-엥겔스 광장으로 불렸다. 1950년대 중반 동독 당국은 성터의 일부에 초고층 정부청사를 짓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으며, 1960년대 들어서 정부청사의 건축이 계획되었다. 이 건물은 1973년에 준공되어 1976년에 '공화국궁'이란 명칭으로 완공된다. 이후 이 "공화국궁"에서 1976년, 1981년, 1986년에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SED)의 전당대회가 열렸으며, 1989년 동독 당국이 소련의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를 초대해 동독 수립 40주년을 축하하는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 동독이 서독에게 흡수통일되면서 이 건물은 비게 되었으며, 한편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인체에 유해한 석면(石綿)이 대량으로 사용된 것이 밝혀지면서 1990년대부터 2003년까지 석면 제거 공사를 해 한동안 건물 출입이 제한되었다. 이후 공화국궁은 한동안 존치되었다. 행위예술 전시관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태생적으로 베를린 성을 철거한 자리에 세워진 탓에 독일연방공화국 정부와 베를린 시 당국은 공화국궁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베를린 성을 복원할 계획을 세운다. 이 방침에 대해 과거 동독시대에 대한 향수를 가진 구(舊) 동베를린 시민들이 거세게 반발, 시위를 벌이기도 했으나 철거는 예정대로 강행되었다. 공화국궁의 철거는 2006년부터 2년간에 걸쳐 진행되어, 32년간 존재했던 공화국궁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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