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노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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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노미야
범례 - 분류:일본의 씨족

가야노미야(일본어: 賀陽宮(かやのみや))는 일본 왕실미야케(宮家)의 하나이다.

개요[편집]

1900년(메이지 33년) 5월 9일, 구니노미야 아사히코 친왕(久邇宮朝彦親王)의 제2자 구니노리 왕(邦憲王을 초대로 하여 창설되었다.[1] 구니노리 왕은 형이 뭉치고 있었기 때문에 구니노미야 궁호를 계승할 예정이었지만, 병으로 동생 구니요시 왕에게 양보하고, 별도로 미야케를 창설했다.

궁호의 유래는 아버지 아사히코 친왕이 구니노미야를 창설하기 이전에 칭하고 있던 궁호에서 따온 것이다. 아사히코 친왕은 막부 말기에 환속했을 때, 처음에는 「나카가와노미야」(中川宮)를 칭했지만, 조정의 지도부로서 이치카이소 정권과 제휴하고 있던 시기에 「가야노미야」라는 궁호로 재차 미야케 반열에 끼게 되었다. 이 궁호는 당시 아사히코 친왕의 저택에 있던 비자나무(가야) 노목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는데, 여기에 과거 헤이안 시대 후기의 사토다이리인 가야노인(賀陽院, 다카노인高陽院)의 글자를 가져다 맞춘 것으로 보인다.

1947년 10월 14일, 2대 쓰네노리 왕(恒憲王)의 대에서 황적을 이탈하여 가야 가문을 이루고 쓰네노리 왕도 가야 쓰네노리라 칭하게 되어 가야노미야는 2대만에 궁가로서의 역사가 끝났다. 이후 옛 미야케의 제사는, 쓰네노리 왕의 손자에 해당하는 5대 · 마사노리가 이어받아 거행하고 있다.

일본 왕실과의 사이는 기쿠에이 친목회(菊栄親睦会) · 도키와 회(常磐会) 등을 통해 깊으며, 당주 가야 마사노리는 가쿠슈인 초등과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나루히토 일본 국왕의 동창생이기도 하다.

계도[편집]

북조(北朝) 제3대 천황
스코 천황(崇光天皇)
후시미노미야(伏見宮)
요시히토 친왕(栄仁親王)
후시미노미야
사다후사 친왕(貞成親王)
102대 일본 천황
고하나조노 천황(後花園天皇)
후시미노미야
사다쓰네 친왕(貞常親王)
현대 일본 왕실
후시미노미야
구니이에 친왕(邦家親王)
구니노미야(久邇宮)
아사히코 친왕(朝彦親王)
〔후시미노미야 가〕
초대 가야노미야
구니노리 왕(邦憲王)
〔구니노미야 가〕
유키코 여왕(由紀子女王)2대 가야노미야
쓰네노리 왕(恒憲王)
사키코 여왕(佐紀子女王)
3구니토시 왕(邦寿王)미치코 여왕(美智子女王)4하루노리 왕(治憲王)아키노리 왕(章憲王)후미노리 왕(文憲王)무네노리 왕(宗憲王)다케노리 왕(健憲王)
아키코(章子)5마사노리(正憲)
아들[2]아들[2]

기타[편집]

  • 가야노미야 궁저는 교토와 도쿄에 있었다. 교토의 가야노미야 궁저는 산주산겐도 옆에 있었으며, 현재 부지는 호텔이 들어섰고 담장만 남아 있다. 도쿄의 가야노미야 궁저는 지토리가후치에 있었는데 공습으로 소실되었고, 현재는 해당 부지에 지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도쿄 도 지요다 구 산반초)이 들어서 있다. 그밖에, 오기쿠보(荻窪), 스마(須磨) 등에도 가야노미야의 별저(별장)가 있었다.[3][4]

각주[편집]

참고문헌[편집]

  • 《週刊新潮》 (新潮社) 68 (10): 20-23. 2023년 3월 16일.  다음 글자 무시됨: ‘和書’ (도움말); |제목=이(가) 없거나 비었음 (도움말)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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