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모토 구니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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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모토 구니시게
개인 정보
로마자 표기 KAMAMOTO Kunishige
출생일 1944년 4월 15일(1944-04-15)(80세)
출생지 교토부 교토시 우쿄구
179cm
포지션 공격수
구단 기록*
연도 구단 출전 (득점)
1967-1984 세레소 오사카 251 (202)
국가대표팀 기록
1964-1977 일본 076 0(75)[1][2]
지도자 기록
1978-1984
1991-1994
2009
세레소 오사카
감바 오사카
후지에다 MYFC
메달 기록
*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가마모토 구니시게(일본어: 釜本邦茂, 1944년 4월 15일 ~ )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자 전 축구 지도자로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였다. 1964년부터 1977년까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13년간 활약하며 76경기에 출전해 75골을 기록하면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사상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 중이다.

생애[편집]

가마모토는 1944년 교토시에서 태어나 교토 부립 야마시로고등학교(京都府立山城高等学校)에서 성장하였다. 1963년 와세다 대학 제2상학부에 입학했으며, 입학한 1963년부터 1966년까지 4년 연속 간토 대학 축구리그(関東大学サッカーリーグ戦) 최다 득점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1963년 AFC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는 일본 청소년 대표팀 주장으로 뛰었으며 자국에서 열린 1964년 하계 올림픽, 방콕에서 열린 1966년 아시안 게임, 멕시코 시티에서 열린 1968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해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특히 1966년 아시안 게임에서 5골을 기록하며 일본의 아시안 게임 통산 2번째 메달을 이끌었고 1968년 올림픽에서도 무려 7골을 쏟아부으며 득점왕에 올랐으며 이러한 가마모토의 활약에 힘입은 일본은 사상 첫 올림픽 메달(동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1972년 메르데카컵 국제축구대회에서는 무려 15골을 폭격하며 팀을 3위로 이끌었고 1975년 메르데카컵에서도 4골을 터뜨렸으며 1976년 메르데카컵에서도 6골을 터뜨리며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이러한 활약들과는 별개로 1970년 FIFA 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 1974년 FIFA 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 1976년 하계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 1978년 FIFA 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 같은 메이저 대회 예선에서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그나마 1972년 하계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무려 6골을 터뜨리며 팀의 에이스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가마모토는 일본 리그가 처음으로 배출한 슈퍼스타로 세레소 오사카에서 1967년부터 1984년까지 17년동안 선수 겸 감독으로 뛰는 동안 리그 통산 251경기 202골(컵대회 60경기 60골)을 터뜨리며 7번의 일본 사커 리그 득점왕, 4번의 리그 우승 및 3번의 리그 준우승, 14번의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11, 2번의 일본 사커 리그 어시스트왕, 5번의 일본 사커 리그 스타볼 수상, JSL컵 2회 우승 및 2회 준우승, 천황배 3회 우승 및 5회 준우승이라는 대업을 이뤄냈고 1974년에는 일본 사커 리그 개인 통산 100골을 달성했고 1981년에는 일본 사커 리그 개인 통산 200골의 업적도 이뤄냈다. 이후 1991년부터 1994년까지 감바 오사카, 2009년에는 후지에다 MYFC의 감독직을 맡기도 했고 1995년 이후에는 참의원을 지내는 등 정계 활동도 했으며 1998년 7월 이후 일본 축구 협회 부회장을 지냈다. 그리고 20년 후인 2018년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예를 안았다.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