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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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천의(渾天儀)는 천체관측 기구로 '혼의' 또는 '선기옥형'이라고도 불린다. 해와 달, 오행성의 위치를 측정하는 데 사용되었다. 한국에는 조선 세종때에 도입되었으며, 현종 10년(1669년)에 송이영이 제작된 것이 현전한다.

개요

혼천의

천구의

혼천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기후를 예측하기 위한 천문관측에 사용하여 왔다. 한나라장형이 만든 것이나 당나라의 황도유의(黃道遊儀)나 수운혼천(水運渾天) 그리고 송나라의 부루표영(浮漏表影)이나 혼천의상(渾天儀象) 그리고 원나라의 앙의(仰儀), 간의(簡儀) 같은 것은 모두 정교하게 제작된 것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측정을 할 때마다 수동으로 작동을 해야 했다.

한국에는 문헌상으로 1433년 6월 25일(세종 15년 음력 6월 9일)에 정초, 박연, 김진 등이 제작한 것이 처음이다. 당시 세종과 세자는 매일 간의대에 숙직할 정도로 관심을 기울였다. 1438년 2월 1일(세종 20년 음력 1월 7일) 장영실에게 흠경각(欽敬閣)을 짓게하고, 이곳에 혼천의를 설치하였다. 이곳에 설치된 혼천의는 기기를 별도로 수동으로 작동하는 일 없이도 측정할 수 있는 정밀한 기기였다.[1]

혼천시계

그 후 선조 대를 거쳐 개량을 거듭하여 물레바퀴를 동력으로 하는 시계와 인조 때 서양에서 들여온 자명종의 원리와 결합하여 혼천시계로 발전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병자호란을 통해 손상되거나 소실되었다.

그러다가 1669년 현종 때 이전의 것들을 개량한 두 종류의 혼천의가 제작되었는데, 바로 이민철과 송이영이 각각 물의 힘으로 돌아가는 혼천시계와 톱니바퀴로 돌아가는 혼천시계를 만든 것이다. 1631년 인조 9년 정두원이 명나라에서 천리경자명종, 화포 등을 들여왔는데, 1669년 현종 10년 10월 14일 송이영(宋以穎)은 자명종을 참고하여, 톱니바퀴로 작동하는 시계와 종을 울려주는 자명장치 등이 추가되어, 절기와 계절, 시간까지 알게 해주는 다목적의 시계였다. 구조를 살펴보면 네모난의 나무상자 안에 오른쪽 절반은 시계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왼쪽은 혼천의가 설치되어 있었다. 혼천의에는 눈금이 새겨진 둥근 지평환과 황도환, 적도환, 백도환, 받침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2] 이러한 이민철의 수동(水動)식 혼천시계와 송이영의 기계식 혼천시계는 경희궁에 설치되었으나, 그것도 이전의 혼천의처럼 대부분 소실되었다.

현재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남아 있는 국보 제230호 혼천의는 1669년 현종 10년 송이영에 의해 만들어진 혼천시계이며, 1930년 인촌 김성수가 구매를 하여 고려대학교에 기증한 것이다. 여주의 세종대왕릉에 있는 혼천의는 송이영의 혼천시계 중 혼천의 부분만 따로 2.5배 확대한 것이다.

복원

2009년 8월 18일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는 국립중앙과학관은 조선 현종 10년 1669년에 만들어진 혼천시계를 완전 복원하여 상설전시관에 전시하였다. 송이영이 만든 시계 장치는 1657년 네덜란드의 크리스티안 호이헨스가 발명한 세계 최초의 태엽장치 자명종의 원리를 이용했지만, 태엽장치 대신 추의 상하 운동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해 시계 바늘을 움직이도록 하여 타종하도록 고안되었다.[3] 원형은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보관 중이며, 2004년 복원되어 서울과학전시관에 전시되었던 복원품을 보완해 새로 만든 것이다.

같이 보기

주석

  1. “세종실록 20년 80권,1438년 1월 7일”. 조선왕조실록. 2008년 12월 4일에 확인함. 
  2. “현종실록 10년 21권, 1669년 10월 14일”. 조선왕조실록. 2008년 11월 4일에 확인함. 
  3. “340년 전 혼천시계 그대로 볼 수 있다”.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