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스얀 휜텔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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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스 얀 훈텔라르
개인 정보
본명 Dirk Jan Klaas "Klaas-Jan" Huntelaar
출생일 1983년 8월 12일(1983-08-12)(40세)
출생지 네덜란드 드렘프트
186cm
포지션 스트라이커
구단 정보
현 소속팀 샬케 04
등번호 25
청소년 구단 기록
1988-1994
1994-2000
2000-2002
VV H. EN K.
더 흐라프스합
PSV 에인트호번
구단 기록*
연도 구단 출전 (득점)
2002-2004
2003
2003-2004
2004-2005
2005-2008
2008-2009
2009-2010
2010-
PSV
더 흐라프스합 (임대)
AGOVV 아펠도른 (임대)
헤이렌베인
아약스
레알 마드리드
AC 밀란
샬케 04
0010(0)
0090(0)
0350(26)
0460(33)
0920(76)
0200(8)
0250(7)
1290(69)
국가대표팀 기록
2004-2006
2006-
네덜란드 U-21
네덜란드
0230(18)
0720(41)
*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또한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2015년 8월 17일 기준임.
‡ 국가대표팀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2011년 6월 9일 기준임.

클라스 얀 훈텔라르 (네덜란드어: Dirk Jan Klaas "Klaas-Jan" Huntelaar, 1983년 8월 12일, 네덜란드 드렘프트 ~ )는 네덜란드축구 선수PSV 에인트호번, SC 헤이렌베인, 아약스, 레알 마드리드 등 여러 클럽에서 뛴 경험이 있다. 2010년 8월, 그는 세리에 A의 클럽 AC 밀란에서 분데스리가샬케 04로 이적하였다.

각종 언론은 그를 네덜란드 축구의 샛별로 주목하였으며 2006년, 그는 올해의 네덜란드 축구 선수와 아약스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또한 그는 2006년 UEFA 21세 이하 대표로서 유럽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많은 득점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주축이 되었으며 21세 대표팀에서 22경기에 출전하여 18골을 기록하였다. 그는 자국 축구리그인 에레디비시에서 2005-06과 2007-08 시즌에 득점왕의 자리에 올랐다.

휜텔라르는 어시스트를 하기보다는 주로 중앙에서 뛰는 공격수로, 팀에서 전형적인 '9번'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는 기술적인 능력이 좋고 머리와 양 발로 골을 넣을 수 있다. 그의 경기스타일은 마르코 판 바스턴이나 페르난도 모리엔테스와 비교되어 왔다.[출처 필요]

사생활

클라스 얀 훈텔라르는 네덜란드 드렘프트(Drempt)에서 아버지 디르크 얀 훈텔라르와 어머니 마우트 훈텔라르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지 6주 후 그의 가족은 휘멜로로 이사하였다. 3형제 중 둘째인 그에게는 형인 니크 훈텔라르와 동생 옐러 훈텔라르가 있다. 현재 흘텔라르는 그의 여자친구인 매디 스홀더만과 동거 중이며, 둘 사이에는 2009년에 태어난 아들 셉, 2011년에 태어난 아들 엑셀이 있다.

어린 시절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휜텔라르는 5살에 지역 축구팀인 v.v. H. en K.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6년간 활동하였다. 휜텔라르는 어릴 때부터 재능을 보여 고 어헤드 이글스의 입단제의를 받게 되지만 팀이 집과 멀리 떨어져 있어 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11살 되던 해인 1994년 더 흐라프스합와 유소년팀 입단계약을 맺었다. 입단 후 처음 2년동안은 휜텔라르는 왼쪽 수비수, 왼쪽 윙, 공격형 미드필더, 심지어는 골키퍼로서도 경기에 뛰었다. 그러나 3년차부터는 스트라이커로 자리를 옮겨 활약하였다. 14살이던 1997-98 시즌에는 더 흐라프스합 C팀의 주전공격수로 자리잡았고 20경기에 출전해 33골을 기록하였다. 다음 시즌 그는 B1팀에 발탁되었고 1999-00시즌에 B1리그에서 31골을 넣으며 득점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의 골결정력은 그가 2000년 6월에 계약을 체결한 PSV 에인트호번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클럽 경력

PSV 에인트호번

PSV 에인트호번에 입단한 휜텔라르는 A1 유소년팀에서 첫 시즌을 보내며 23경기에 출전해 26득점을 기록하며 빠른 시간 안에 득점력있는 선수로 자리를 잡아갔다. 다음 해 휜텔라르는 거스 히딩크가 이끌고 있던 성인팀에 합류하게 되지만, 주전선수로 자리잡지 못하였다. 그는 2002년 11월 23일 RBC 로센달과의 경기에서 마테야 케주만의 교체선수로 처음 프로경기에 나왔다. 이것이 그가 PSV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에레디비시에 출전한 기록이다.

더 흐라프스합

PSV 1군에서 주전선수가 되는 데 실패한 휜텔라르는 그의 옛 클럽인 더 흐라프스합으로 임대이적을 하게 되었다. 그는 2003년 2월 16일 SC 헤이렌베인과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선발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지만 더 흐라프스합에서 뛴 9번의 에레디비시 경기에서 득점에는 실패하게 되고 팀은 그와 더이상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AGOVV

2003-04년 시즌 초반, 휜텔라르는 다시 임대이적을 하였다. 에이르스터 디비시에 새롭게 승격한 AGOVV 아펠도른에 합류한 그는 35경기에 출전해 26득점을 기록해 리그 득점왕과 '에이르스터 디비시 올해의 선수' 타이틀을 거머쥐며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2007년에 AGOVV는 홈경기장의 관람석에 '클라스얀 휜텔라르 관람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SC 헤이렌베인

PSV와의 재계약이 성사되지 못한 후, 휜텔라르는 헤이렌베인의 스트라이커 제랄드 시봉의 PSV 트레이드건에 포함되어 10만 유로의 이적료에 SC 헤이렌베인에 입단하게 되었다. 2004-05시즌을 헤이렌베인과 함께 시작한 휜텔라르는 31경기에 출전하며 17골을 뽑아내 팀이 UEFA컵에 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2005-06시즌에는 15경기에 출전해 17득점을 하게 되고 그 해 겨울, 9백만 유로의 이적료와 함께 아약스로 이적하였다.

아약스

휜텔라르는 아이러니하게도 아약스에 입단한 후 옛 팀이었던 SC 헤이렌베인을 상대로 출전한 KNVB컵 경기에서 첫 골을 성공하며 신고식을 치렀다. 2월 한달동안 그는 그의 첫 챔피언스리그 경기이기도 한 인테르나치오날레와의 경기를 포함한 7경기에 출전해 9득점을 하게 되었다. 그는 결국 33득점으로 에레디비시의 득점왕에 오르며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아약스가 리그 2위를 차지함에 따라 플레이오프 경기를 통해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게 된 상황에서 휜텔라르는 페예노르트FC 흐로닝언을 상대로 모두 득점에 성공하며 팀을 챔피언스리그에 올려놓는 데 일조하였다. 로다 JC를 상대로 한 KNVB컵 준결승전에서 그는 추가시간에 바이시클킥으로 극적인 동점을 만들게 되었고, 109분에 터뜨린 휜텔라르의 골과 함께 아약스가 4-1로 승리하였다. 결승전에서 휜텔라르는 PSV를 상대로 2득점을 하였고, 결국 아약스는 우승을 차지하였다. 휜텔라르는 '2005-06 에레디비시 요한 크라위프 상'과 '아약스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였다.

2006-07시즌, 휜텔라르는 팀의 부주장으로 임명되었고 데니스 베르흐캄프의 은퇴경기에서 골을 기록함으로써 아스널 FC의 새 경기장인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골을 넣은 첫 번째 선수가 되었다. 아약스는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패배해 UEFA컵으로 자리를 옮겼고, 휜텔라르는 7경기에 출전해 8골을 넣었다. 에레디비시에서 그는 21골을 기록하였고 팀은 2위로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KNVB컵에서는 6경기에 출전, 4골을 기록하였다. 아약스는 또다시 다음시즌 챔피언스리그로 향하기 위한 플레이오프 경기를 거쳐야 하였다. 휜텔라르는 SC 헤이렌베인을 상대로 한 준결승 2차전 경기에서 2골을 뽑아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아약스는 AZ마저 물리치며 UEFA 챔피언스리그 2007-08 예선전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아약스는 SK 슬라비아 프라하를 상대로 한 챔피언스리그 예선전에서 그의 페널티킥 실축으로 다시 한번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올라가는 데 실패하였다. 휜텔라르는 UEFA컵 경기에서 2골을 넣으며 분전하였지만 역부족이었고 아약스는 NK 디나모 자그레브와의 경기에서도 패배해 국제대회 우승과 멀어졌다. 에레디비시에서 아약스는 새롭게 승격한 더 흐라프스합을 상대로 8-1 대승을 거두었고 이 경기에서 휜텔라르는 4골을 넣었다. 2007년 10월, 팀의 주장이었던 야프 스탐이 은퇴함에 따라, 부상중이던 엣하르 다비츠가 돌아올때까지 휜텔라르가 임시로 주장직을 맡았다. 그가 시즌 동안 이뤄낸 '34경기 출전 33골'이라는 기록은 그를 '에레디비시 득점왕'으로 만들었다. 이 기록은 2위인 FC 트벤터블레이즈 은쿠포보다 11골 앞선 것이었다.

2008-09시즌 아약스의 새 감독으로 임명된 마르코 판 바스턴은 야프 스탐의 후임으로 휜텔라르를 1군 주장으로 임명하였다.

레알 마드리드

휜텔라르는 2009년 1월, 2천7백만 유로의 이적료와 함께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하였다. 이적 첫 시즌, 20경기 8골을 득점하며,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나,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 2기 정책'의 희생양이 되었다. 팀 동료이자, 네덜란드 대표팀 선배인,뤼트 판 니스텔로이가 "대표팀에서 활약하기 위해선, 후보로 밀리는 것보다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팀으로 이적하는 게 낫다" 라는 말을 해, 베슬러이 스네이더르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이적하였다. 한때 독일 분데스리가 소속의 VfB 슈투트가르트 이적에 합의하였다는 말도 나돌기도 하였으나, 연봉 문제 등으로 결렬되었다. 곧바로 진행된 AC 밀란과의 협상에 합의 이적료 약 1천5백만 파운드에 이적하게 되었다.

AC 밀란

휜텔라르는 2009년 8월, 1천5백만 유로의 이적료로 짧은 마드리드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AC 밀란에 입단하였다. 하지만 그는 AC 밀란 소속으로 9경기 2골에 그쳐,주전에서 밀린 상태가 되었다. 그는 주전에서 밀리자 자연스럽게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도 부름을 받지 못하게 되었고 그는 월드컵출전을 위해서 AC 밀란을 떠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결국 자연스럽게 이적하게 되었다.

샬케 04

휜텔라르는 2010년 8월, 3년간 계약을 맺고 독일의 클럽 FC 샬케 04로 이적하였다. 이적료는 약 천 4백만 유로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대표 경력

청소년 대표팀

휜텔라르는 2001 FIFA 세계 유소년 선수권대회에 네덜란드대표로 출전하였다. 대회 기간 동안 그는 2골을 기록하였지만 네덜란드팀은 준준결승에서 이집트에 패배해 탈락하였다.

휜텔라르는 2006년 독일 월드컵의 예비 대표였지만 결국 최종선택 되지 못하고 대신 포르투갈에서 열린 UEFA 21세 이하 유럽 선수권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휜텔라르는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결승전의 2골을 포함, 4골을 기록해 대회의 득점왕이 되었다. 그는 UEFA가 선정한 '대회 베스트 11'의 스트라이커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대회를 마치고 휜텔라르는 21세 이하 대표팀 안에서 이뤄낸 '22경기 출전 18득점'의 기록을 남긴 채 21세 이하 대표팀에서 은퇴하였다.

성인 대표팀

휜텔라르는 2006년 8월, 당시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던 마르코 판 바스턴에 의해 아일랜드를 상대로 한 친선경기에 출전할 선수로 발탁되었다. 휜텔라르는 성인대표팀의 첫 데뷔와 함께 2골 2어시스트의 놀라운 경기력으로 네덜란드를 4-0으로 승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 후 몇 경기동안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던 휜텔라르는 2007년 10월, UEFA 유로 2008예선 경기를 위해 대표팀에 재승선하였다. 네덜란드 대표팀의 간판공격수 뤼트 판 니스텔로이를 대신해 휜텔라르는 슬로베니아전에 선발출전해 득점에 성공하였고 팀은 2-0으로 승리하였다. 휜텔라르는 유로 2008 본선에 출전할 대표팀 선수로도 차출되어 본선 C조의 루마니아전에 첫 출전해 1골을 넣었다. 이 경기에서 네덜란드는 2-0으로 승리하였다.

휜텔라르는 23명으로 구성된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최종 선발명단에 합류해 2010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하였으며 6월 24일 카메룬전에서 1득점을 하였다.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2010년 FIFA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수상

네덜란드


개인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