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텐
아키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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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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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프랑스 |
데파르트망 | 도르도뉴 주 지롱드 주 랑드 주 로트에가론 주 피레네아틀란티크 주 |
아롱디스망 | 18 |
코뮌 | 2296 |
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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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인구}}} 명 ({{{인구_날짜}}}{{{인구_출처}}}) |
인구밀도 | 74명/km² |
인구순위 | 6 |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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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km² |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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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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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텐(프랑스어: Aquitaine, 오크어와 가스콩어: Aquitània, 라틴어: Aquitania, 바스크어: Akitania)은 프랑스의 레지옹이다. 도르도뉴, 지롱드, 랑드, 로트에가론, 피레네아틀란티크의 다섯 주로 나뉘며, 중심지는 보르도이다.
지리
아키텐은 면적이 41,308 km²이다. 프랑스 전체 면적의 7.6 %를 차지한다. 남쪽은 에스파냐, 동쪽은 미디피레네, 북쪽은 푸아투샤랑트와 리무쟁, 서쪽은 비스케이 만에 접해 있다. 아키텐의 주요 도시는 보르도, 포, 바욘, 몽드마르상, 페리쥐외다.
역사
고대 로마시대의 갈리아 아퀴타니아는 본래 피레네 산맥과 가론 강 사이의 갈리아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아우구스투스는 가론 강과 루아르 강 사이의 땅까지 아퀴타니아에 포함시켰다. 이 시기에 아퀴타니아 속주는 현대 프랑스 영토의 1/3정도까지 확장되었으며, 아퀴타니아는 갈리아의 북부와 달리 문화적으로 로마화되었다. 기원후 4세기에 아퀴타니아는 3개의 주로 갈리게 되는데, 북동부는 아퀴타니아 프리마, 북서쪽은 아퀴타니아 세쿤다, 남쪽 끝은 아퀴타니아 테르티아로 갈리게 된다.
5세기에 로마 제국이 쇠약해짐에 따라 서고트족이 침입해 들어왔고, 프랑크족에 의해 507년에 쫓겨나기 전까지 이 지역을 지배했다. 프랑크족의 이 지역에 대한 지배는 불안정했는데, 이는 프랑크족이 당시 도시생활 및 국가 운영에 대해 미숙했기 때문이다. 다고베르트 1세는 자신의 이복동생 하리베르트 2세와 조카 힐페리히를 연이어 아키텐의 왕으로 임명했으나 이들은 모두 바스크족에게 암살당했다.
8세기 사라센의 침입에 대한 아키텐의 저항은 미온적이었으며, 아키텐의 군주 에우도는 사라센 족과 손을 잡고 프랑크 왕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 카를 마르텔이 사라센인을 몰아낸 뒤 아퀴타니아는 카롤링거 왕조의 일부가 되었다.
샤를마뉴의 자손들은 그의 사후 제국을 분할했는데, 아키텐은 서프랑크 왕국에 배속되었다. 아키텐은 1453년 프랑스에 완전히 배속되기 전까지 아키텐 공국으로 준독립 상태를 유지했다.
경제
문화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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