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일 청년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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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6일 청년 운동 (كة شباب 6 أبريل)은 이집트의 페이스북 그룹이 2008년 봄 산업도시인 엘 마하라 엘 쿠브라 지역의 노동자들을 지지하고자 시작한 4월 6일 총파업을 벌이기 위해 시작한 청년운동이다.[1][2][3][4][5][6]

운동가들은 각 참여자를 직접 방문할 때 검정색 옷을 입고 파업 날에는 집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블로거와 시민 기자 및 언론인들은 페이스북, 트위터, 플리터, 블로그를 비롯한 신종 미디어를 사용해 파업 상황에 대해 보도하고 네트워크에 경찰의 활동과 법적 보호에 대한 글을 올려 관심을 끌었다.[7]

뉴욕타임스는 이 운동을 이집트에서 가장 극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켜 정치적은 페이스북 그룹으로 성장하게 된 계기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했다.[8] 2009년 1월부로 7만명에 가까운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참여해 이전에는 정치적이지 않았던 대다수의 세력이 핵심적인 관심사에 대해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발언권과 정부의 의결에 대한 비판 및 갈수록 어려워져 갔던 정부에 대한 여론 등이 해당됐다.

4월 6일 운동은 오트포르! 운동(세르비아)와 같은 구호를 사용해 세르비아 정부의 하야를 촉진하는 계기를 제공했으며 비폭력적인 방법이 후에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에서도 응용됐다.

대중 참여 및 체포[편집]

국가의 내부 상황을 토론하는 장을 온라인에서 열게 된 상황을 차치하고 대다수의 참여자들은 대중들에게 직접 다가가 감금 혹은 투옥된 언론인들을 석방하고 2009-2009이스라엘-가자 지구 분쟁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랠리를 시작했다.[8] 공식 발표에서 참여자들은 정당이 절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으며 최초의 참여자 중 하나인 아메드 마헤르는 이집트 다국에 의해 2008년 5월 체포됐다.[9]

2008년 8월 그가 14명의 참여자와 함께 다시 체포됐으며 죄목은 "정권에 대한 반기 도모"로 발표됐다. 그는 이집트 당국이 증언 시 그를 위협할 수 있을 것임을 명심하라는 어투로 위협했다고 주장했다.[10]

2009년 4월 6일 이집트 정부세력으로 추종되는 세력에 의해 공격당해 여러 웹사이트가 동시다발적으로 해킹을 당했다. 카이로의 시위는 민무늬의 옷을 입은 이집트의 경찰관과 여러 체포로 얼룩졌다.[11]

2011년 1월 19일 위키리크스 문서는 미국이 이 운동을 "야당 정치인과 활동가의 주류 밖 활동"으로 규정했음을 시사하였고 운동의 민주주의 쟁취 노력이 "비현실적"이라고 평했으나 아직까지는 여러 모로 지지하고 있음을 밝혔다. [12]

2011년 1월 31일 2월 1일 화요일에 1백만 명 이상이 참가하는 운동을 펼쳐 대통령 무바라크를 실각시키도록 움직일 것을 도모했다.[13]

2011년 2월 3일 히샴 무바라크 법센터에서 4월 6일 활동가들의 모임이 열려 의학적, 법적 도움을 제공하고자 하였으나 이집트 당국의 기습 공격으로 수많은 시위 참가자들이 체포됐다.[14]


주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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