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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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 활자.

활자(活字)는 글을 인쇄하기 위해 만든 글자틀을 말한다. 낱글자를 사각기둥 위에 양각으로 새긴다.

역사[편집]

고대 인쇄술의 시초는 탁본이었다. 비석, 기와 따위에 새겨진 글씨나 무늬를 종이에 그대로 떠내는 방식이었으나 불편하면서도 잘 안 찍어지는 결함이 있었다. 이를 발전시킨 것이 목판인데, 목판은 넓찍한 나무 판에다가 글씨를 새겨 책을 여러 번 찍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다른 책을 찍어낼 때는 쓸모가 없었다.

가장 처음 활자를 개발한 나라는 중국이었으나, 흙을 구워 만든 흙활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갈라지기 쉽다는 등 여러 모로 단점이 있었다. 이러한 단점 때문에 초기 중국의 활자 기술은 기술 부족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당시 서양은 종이를 개발할 무렵이었다.

중국은 이어 나무활자를 만들어 냈으나, 활자가 갈라져 버리는 단점이 있어 인쇄에 실패하고 보관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 때 12세기고려에서도 대각 국사 의천이 목활자를 받아들여 나무활자로 《석원사림》이 세상에 나왔다. 그러나 여전히 갈라지는 결함은 남아 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재료를 금속으로 바꾸는 방법이 고려에서 생겨났다.

1234년 고려가 《상정고금예문》을 금속활자로 찍어내 세계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으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일부 주장은 고려 숙종 7년인 1102년에 고려에서 활자가 만들어졌다고는 하나, 설득력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현존하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은 고려 공민왕 때인 1372년 달잠과 석찬이 백운 화상의 배움을 받고 불교의 훌륭한 내용만 가려 뽑아 적은 《백운화상초록불조 직지심체요절》이다. 줄여서 직지심체요절이라고 한다.

제작 방법[편집]

고려 시대의 활자 제작 방법은 다음과 같다.

  • 종이에 글자를 쓴다.
  • 굳은 밀랍 덩어리 표면을 반듯하게 하고 적은 종이를 붙인 후 글자를 새긴다.
  • 어미자(새겨진 글자)에 가지를 달아 밀랍 틀에 고정시킨 뒤 황토 반죽으로 밀랍 틀을 감싼다.
  • 이를 도가니에 넣은 후 구우게 되면, 밀랍은 녹고 글자가 새겨진 어미자 거푸집이 생성된다.
  • 그 거푸집에 쇳물을 붓고, 쇳물이 굳은 뒤 거푸집을 분해해 금속활자가 달린 어미자 틀을 꺼낸다.
  • 가지에서 어미자를 떼고 다듬으면 금속 활자가 완성된다.

조선 시대의 활자 제작 방법은 다음과 같다.(세종때 대대로 개편되었다)

  • 종이에 글자를 쓴다.
  • 나무토막 위에 적은 종이를 얹은 후 글자를 새긴다.
  • 새긴 것은 나뭇가지에 달린 나뭇잎처럼 여러 갈래의 나뭇줄에 이어붙여 틀로 만든다.
  • 밀랍을 깎아 두 개의 통을 만드는데, 이글루처럼 만든다.
  • 두 개의 통 안에 흙을 채우고, 한 통의 흙에 틀을 눌러박아 모습을 새긴다.
  • 틀을 빼고 두 통을 위아래로 맞대면, 이글루 입구 부분이라 할 수 있는 곳이 붙으면서 구멍이 생긴다.
  • 그 구멍은 틀로 생긴 구멍이며, 그 구멍 안에 쇳물을 붓는다.
  • 이를 도가니에 넣은 후 굽고 두 통을 가른 후 안에 있는 어미자(새겨진 글자)를 잘라 다듬는다.

http://kinimage.naver.net/storage/upload/2011/06/26/225112889_1307460819.jpg?type=w620 ↑활자를 만드는 보편적 방법

판에 끼울 때[편집]

  • 고려 시대
    • 고려 시대에는 준비된 활자판에 활자를 끼웠는데, 활자 밑면에 밀랍을 발라 활자판에 끼워 굳게 했다.
  • 조선 시대
    • 조선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활자판에 활자를 끼웠으나, 밀랍으로 굳히지 않고 활자를 그냥 놓은 후 줄 아래 활자가 끼워지지 않은 부분에 맞추어 대나무판을 끼워 고정시켰다.

함께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