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통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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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의 설명[편집]

조금 과학적 설명으로 부족하다고 생각 되는 군요. --Alfpooh 2008년 2월 5일 (화) 09:34 (KST)답변

일단 개론을 이해하는 정도로 잘 고쳐졌네요. 다른 분들의 의견들도 계속 더해진다면 지식의 수준이 높아지리라 보입니다.Jamessungjin.kim 2008년 2월 6일 (수) 07:17 (KST)답변
'통섭응용'부분이 마음에 걸립니다. 투표에서 쓰이는 Consilience는 상호귀납적 대조란 부분만 같은 데 그것을 응용으로 보기는 힘들듯합니다. 영어판에 있어 추가하긴 했는데 필요한지도 의문이고요. 또한 몇가지 한자성어들은 자칫 오해의 여지가 있고 연관성이 크지 않아보이기도 합니다. 일단 그부분은 삭제하는 것이 어떨까요? 가끔은 없애서 간결한 정보가 더 나을때도 있는 법이니까요. 어떠신지요?--Alfpooh 2008년 2월 6일 (수) 16:12 (KST)답변
계속 '통섭응용' 부분이 위키백과:독자연구 금지에 해당할 위험이 있다고 봅니다. --Alfpooh 2008년 2월 7일 (목) 09:45 (KST)답변

통섭: 야욕의 요역?[편집]

싱크로나이즈 트램폴린 (synchronized trampoline).
집합 A (한 트램폴린 경기자) 및 B (다른 경기자).
음양은 마침내 태극 (Taiji).

'지식의 통합'이라는 일반적인 개념은 누구나 알 만하지만, 매우 제한적 기술적 전문적인 용어인 '콘실리언스'(consilience)나 '통섭'은 그렇지 않다. 원저자도 번역자도 이런 요상한 말에 마력을 불어넣는 마술사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그럴 수록 말은 오염된다.

세계공통언어가 돼버린 영어의 오염은 특히 심각하다. 가장 흡수성이 강한 영어에다 더더욱 많은 어휘와 의미가 추가될수록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은 세계화 속에서 점점 더 불리해질 것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뚸어난 언어학자 찰스 케이 오그던은 1930년에 850단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쉬운 영어를 만들었다. 이것은 현재 영어 어휘의 대략 천분의 일 수준인데, 누구나 이런 수준으로 말을 주고 받는다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도 별로 불리하지 않다.

지식이 필요 이상으로 세분화하는 것은 겉으로만 세분화일 뿐 실상은 하찮은 말바꾸기일 뿐일 수 있다. 한가지 예를 들면, List of cognitive biases에 열거된 수많은 제목의 기사들은 모두 '인지 편향'이라는 한가지 주제를 둘러싸고 '함께 뛰기'(jumping together 곧 consilience)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의 통합은 먼저 이런 인접분야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마침내 과학과 인문학, 형이하학(과학)과 형이상학, 또는 과학과 종교까지 함께 뛰기를 할 수 있을지,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 매우 어려운 물음이지만, 아무튼 에드워드 윌슨(1998)은 그런 희망을 '함께 뛰기'라는 특수한 관점에서 찾으려 했다. 나름대로 학문적 이론적 일대 모험인 바, '함께 뛰기'는 그의 지식통합이론이 한마디로 집약된 핵이다. 이 핵을 번역자가 다른 핵으로 바꿔치면 그의 이론이 뿌리채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이런 번역은 반역이라 할 만할 것이다.

어느 두 가지가 음양처럼 서로 배타적인 듯하면서 마침내 하나인 것이 바로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태극 또는 무극이다. 그러므로 서로 상극처럼 보이는 과학과 종교, 과학과 인문학, 또는 형이하학과 형이상학의 대통합이 콘실리언스의 궁극적인 목표라면, 그같은 '콘실리언스'는 '통섭'보다는 차라리 '태극'이 훨씬 더 나은 번역이 아닐까 싶다. 아쉽다.

비엔나 학파는 '지식의 통합' 대신에 '과학의 통합'을 매우 큰소리로 줄기차게 외쳐댔다. 그들은 과격하게 경험적 논리적 분석적 실증적인 나머지 형이상학(metaphysics)을 단연코 배격했다. 이들의 통합과학 운동의 일환으로, 찰스 퍼시 스노의 《두 문화와 과학혁명》(1959년) 3년후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1962년)가 출판되었다.

그 이듬해 마치 이에 대항하듯 칼 포퍼의 《억측과 반박》(1963년)이 출판되었다. 그 가운데 "과학과 형이상학의 구분"은 아래 인용문이 잘 시사하듯 비엔나 학파를 대표하는 루돌프 카르나프를 직접 겨냥하여 공격하였다.

Summary
Put in a nut-shell, my thesis amounts to this. The repeated attempts made by Rudolf Carnap to show that the demarcation between science and metaphysics coincides with that between sense and nonsense have failed. The reason is that the positivistic concept of 'meaning' or 'sense' (or of verifiability, or of inductive confirmability, etc.) is inappropriate for achieving this demarcation -- simply because metaphysics need not be meaningless even though it is not science. In all its variations demarcation by meaninglessness has tended to be at the same time too narrow and too wide: as against all intentions and all claims, it has tended to exclude scientific theories as meaningless, while failing to exclude even that part of metaphysics which is known as 'rational theology'. (p. 253)
-- "The Demarcation between Science and Metaphysics," (p. 253-292), in: Karl Popper. (1963). Conjectures and Refutations.

윌슨이 과학의 혁명적 통합에 용약 뛰어들어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은 《사회생물학: 새로운 종합》(1975년)부터다. 그런데! 그 해부터는 왠일인지 이상하게도 그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유지들이 갑자기 비슷한 혁명적인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그때의 극적 콘실리언스!

그 한 예가 프리초프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1975년) 직역하면 "물리학의 도교: 현대 물리학과 동양 신비사상의 평행선 탐구"다. 여기서 평행선은 곧 콘실리언스! 그리고 그 도교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음양 또는 태극이다. 그는 지식의 동서 통합과 함께 과학과 신비주의의 통합을 내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주장이기보다 주로 현대 물리학의 두 거인 닐스 보어와 그 제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주장을 대변하고 있었다. 보어는 오른쪽의 태극 도형을 자신의 문장(紋章)에 포함시킨 바 있다. 하이젠베르크의 《과학과 철학》(1958년)은 '과학과 형이상학'의 통합에 대한 바램이 담겨있고 마치 《두 문화》(1959년)의 예고편처럼 보인다. 카프라는 여기서 다음 구절을 책 첫머리에 인용한다:

인류의 사상사에 있어서, 두 개의 다른 사상의 조류가 만나는 그런 지점에서 가장 풍요한 발전이 자주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마도 거의 전적으로 타당한 얘기일 것이다. 이러한 조류들은 인류 문화의 전혀 다른 분야에, 상이한 시대와 상이한 문화 환경과 상이한 종교적 전통에 그 근원을 두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 둘이 실제로 만나는 일이 이루어진다면, 행여 그처럼 긴밀히 연결을 맺어 하나의 진정한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곳에서 새롭고도 흥미진진한 발전이 곧 뒤따라 전개될 것이라고 기대해도 좋으리라.

마지막으로, 무분별한 콘실리언스을 경계하는 시각도 오래 전부터 있었는데, 정보이론이 그 한 예다. 비엔나학파의 통합과학운동의 일환으로 나온 콜린 체리의 《인간의 의사소통에 관하여》(Colin Cherry (1957) On Human Communication. MIT Press.) 참조.

--KYPark (토론) 2009년 4월 21일 (화) 20:41 (KST)답변

프랜시스 크릭의 경우[편집]

참조

--KYPark (토론) 2009년 4월 21일 (화) 20:59 (KST)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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