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흥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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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시에 있는 쩐흥다오의 동상

쩐흥다오(베트남어: Trần Hưng Đạo陳興道 진흥도, 1228년 ~ 1300년)는 베트남쩐 왕조의 왕족이자 장군이다. 베트남 쩐 왕조의 초대 황제 태종(太宗)의 형인 진류(陳柳)의 아들이다. 본명은 진국준(Trần Quốc Tuấn, 陳國峻)이고, 흥도(興道)는 후에 그 공적을 칭송하여 주어진 호칭이다. 병서요약(兵書要略), 만법종비전서(萬劫宗秘傳書)등의 저작을 남겼다.

처음에는 조정의 실권을 잡고 있던 진수도(陳守度)에 의해서 아버지 진류가 실각당하고, 조정과 대립하고 있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용이 뛰어난 인물이어서, 후에는 장군으로서 중용 되었다. 1257년 몽골군이 침공해 왔을 때도 베트남군을 인솔하여 몽골군을 크게 격파하여 몽골군을 추격 할 때까지 대승을 거두었다.

1282년 원나라쿠빌라이 칸이 군대를 보내어 침공하자, 진흥도는 베트남군의 총사령관에게 임명되었고, 교묘한 게릴라전을 펼쳐 원나라군을 크게 물리쳤다. 이 때, 원나라의 압력으로 인종(仁宗)이 항복하려고 하지만, 진흥도는

"싸우지 않고 항복할 정도라면, 차라리 신(臣)의 목을 바칠수 있습니다"

하였고, 원나라에 항복을 반대했다고 한다. 진흥도에 의해서 인종은 원나라에 저항하기로 하였다.

쩐 왕조의 조정에는 장낫즈앗 등 외교에 뛰어난 자도 있어 또 원나라군이 베트남 쩐 왕조와 참파를 동시에 공격하는 양면 작전을 취하였고, 쩐 왕조는 참파왕 체만(Chế Mân)과 화해를 하고 연합 전선을 결성하고, 게릴라전을 전개했다. 1288년 베트남군과 참파군의 게릴라전에 골치를 썩인 원나라군은 결국 철군을 하였다. 이 때, 진흥도는 원나라군을 백등강(白藤江)으로 추격 하여, 원나라군을 괴멸 시켰다. 그 공적으로 다음 해에 왕으로 책봉되었다.

1300년에 사망하였다. 임종때 황제가 그 죽음을 슬퍼하였고, 참파왕 체만은 최대의 동지를 잃었고, 1306년에 인종의 딸과 정략 결혼을 하고, 개선된 양국 관계의 유지를 도모했지만, 1307년 체만이 갑자기 죽었고, 그의 죽음으로 베트남과 참파 두나라는 다시 수렁의 항쟁에 돌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