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 (15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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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全霽, 1558년 ~ 1597년)는 조선 중기무신이다. 본관은 완산(完山). 자는 시적(時適), 호는 영수(英叟)이다.

1591년(선조 24년) 별시 무과에 급제하여 영산 현감(靈山縣監)을 지내며 임진왜란곽재우의 휘하에서 조전장(助戰將)으로 활약하였다. 정유재란울산성 전투에서 권율에게 처형되었다.

생애[편집]

경상도 초계군 도방리(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 하신리) 출신. 백제의 개국공신인 전섭(全攝)의 후손이고, 완산군(完山君, 시호는 충정(忠貞)) 전집(全潗)의 10대손이며, 완산 전씨 초계(草溪) 입향조인 수찬 전하민(全夏民)의 6대손이다.[1] 아버지는 전경원(全慶遠) 또는 전덕원(全德遠)이다.[2] 자는 시적(時適) 또는 시숙(時叔)이고, 호는 영수(英叟)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全悌라고 표기되어 있다. 당숙인 탁계(濯溪) 전치원(全致遠)과 설학(雪壑) 이대기(李大期)를 사사하였다.

교생(校生)으로 1591년 별시 무과에 을과 30위로 급제하였다.[3]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 그해 5월 당숙 전치원(全致遠)과 재종형 전우(全雨), 서재종제 전문(全雯) 등과 함께 초계에서 조호장(調護將)으로 거병, 6월부터 9월까지 낙동강변, 황강, 성주, 창녕, 현풍 등지에서 왜군과 교전하여 전공을 세웠다.[4] 그 후 곽재우 휘하에 조전장(助戰將)으로 종군하였다. 1596년 3월에는 대구 팔공산에서 결사구국을 회맹하였다. 이후 1597년경에 경상도 영산현감으로 부임했다.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그해 7월 21일 영산현감으로 경상좌도방어사 곽재우의 휘하에서 조전장(助戰將)으로 화왕산성에 입성하여 성을 지켰다.[출처 필요] 12월 영산현감(靈山縣監)으로 권율의 휘하로 울산성 전투에 출전하여 종군하던 중 출신(出身)[5] 1인, 군정(軍丁) 1명과 함께 처형당했다.[6]

사후[편집]

사후 배대유(裵大維)가 상소를 올렸고,[7] 1692년 합천 도계서원(道溪書院)에 재종형 전우(全雨), 재종질 전영(全榮)과 함께 배향되었다.[8] 1880년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출처 필요] 대한민국 제11·12대 대통령 전두환(全斗煥)의 13대조가 된다.

저서[편집]

저서로 《영수실기 英叟實記》[9] 가 있다.

가계[편집]

전제는 완산(전주) 전씨 군수공파 이고, 군수공파의 파조는 전제의 고조부인 전수문이 된다.[10]

  • 조부 : 전순(全純)
    • 부친 : 전경원(全慶遠, 이명 전덕원(全德遠), 1524년 ~ 몰년 미상, 승사랑별시)
    • 모친 : 합천 이씨(陜川李氏)
      • 아들 : 전세준(全世俊)

후손[편집]

각주[편집]

  1. 수찬(修撰)에 재직하다가 1531년에 경주에서 초계군 이책면 하신리(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 하신리)로 이거해왔다고 한다.
  2. 무과방목상에는 전덕원(全德遠)이라고 기재되어있다.
  3. 전제 - 한국학중앙연구원
  4. 남명학고문헌시스템
  5. 조선 시대에, 과거의 무과에 급제하고 아직 벼슬에 나서지 못한 사람
  6. 선조실록 96권, 선조 31년 1월 6일 임진 8번째기사
  7. 배대유의 문집인 모정집에 수록된 청영산현감전제신원소(請靈山縣監全霽伸冤疏)[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8. 네이버 지식사전
  9. “한국고전적종합목록시스템”. 2016년 5월 1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4월 15일에 확인함. 
  10. 草溪鄕案을 기초로 한 초계지역 유력가문의 연구, 김은영, 국회도서관,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