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엘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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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엘륄 (Jacques Ellul, 1912년 1월 6일 ~ 1994년 5월 19일) 또는 자끄 엘륄[1]은 프랑스의 법 역사학 교수이자 사회학자이자 개신교 신학자이다. 영국․몰타 혈통의 아버지와 네덜란드 혈통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으며, 자신의 거의 모든 생애를 보낸 보르도(Bordeaux)근교의 뻬삭(Pessac)에서 생을 마감했다.

20세기 기술과 소외에 대한 사상가로 알려진 그는 저서 대부분이 외국, 특히 미국과 대한민국에서 번역되고 있는 60여권의 저서와 수백편의 논문을 저술했다.

그는 칼 마르크스 저서를 탐독한 혁명 이론가이기는 하나, 자신이 규정한 바와 같이 마르크스주의에서 이데올로기와 "화석화된 사상"만을 보았기에,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동향과 늘 멀리 떨어져 있었다.

18세에 개신교로 회심한 그는 기독교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 몰두했는데, 기독교에 대해 그는 3세기부터 기독교가 국가와의 결탁으로 인해 복음적인 메시지를 완전히 와해시켰다고 간주한다.

"존재한다는 것은 저항하는 것이다"(Exister, c'est résister)[2]를 신조로 택한 그는 자신의 저작이 자유라는 개념에 완전히 집중되어 있다고 언급한다.[3]

생애[편집]

대학 교수 생활[편집]

1936년, 자끄 엘륄은 법학을 연구한 후 법학박사 학위 논문을 제출한다. 몽뻴리에(Monpellier) 대학 법학부에서 강의를 맡은 이후,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대학과 끌레르몽 페랑(Clermont-Ferrand) 대학에서 강의를 맡은 그는 1940년 학생들 앞에서 뻬땡(Pétain) 원수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나치의 괴뢰 정권인 비시(Vichy) 정부에 의해 해임된다.[4] 1943년 로마법 및 법 역사학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한 그는 1944년부터 보르도 대학에서, 이후 1948년부터는 보르도 정치대학에서 제도사와 사회사를 가르친다.

이중의 영향[편집]

젊은 시절부터 엘륄은 대립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두 영역에 관여한다. 18세 되던 해 그는 자신을 기독교의 길로 들여놓게 하고 자신으로 하여금 개신교, 곧 프랑스 개혁교회에 들어가도록 점점 이끄는 개인적인 체험을 한다. 이듬해인 1931년 그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정독한 후 마르크스의 저작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시도하는데, 그 후 보르도 정치대학에서 강의하면서 30여년 이상을 마르크스 강의에 한 강좌를 할애한다. “자끄 엘륄은 마르크스에 대해 지적인 빚을 지고 있음을 인정한다"[5]. 엘륄은 이러한 이중의 영향을 “설명할 수 없으나 의미를 담고 있는 긴장”으로 체험한다. 이 이중의 영향은 나중에 그의 저작 전체에서 “분명히 구분되는 동시에 변증법적으로 상응하는 두 부분”으로 구체화된다[6]. 즉, 마르크스에 대한 분석을 20세기 상황에 맞게 현실화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마르크스에 대한 분석에 집중된 사회학적 측면, 그리고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특징짓는 자유와 완전히 대립되는 자유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한 신학적 측면이다.


주요 경력[편집]

  • 1937-1938 : 몽뻴리에 대학 법학부에서 강의를 맡음.
  • 1944-1945 : 보르도 시청에서 6개월간 부시장을 역임함.
  • 1944-1980 : 보르도 대학교 법학부 교수를 지냄.
  • 1956-1971 : 프랑스 개혁교회를 사회에서 활발한 운동으로 만들고 변화시키려는 계획과 더불어[7] 프랑스 개혁교회 전국 위원을 역임함.


참여 활동[편집]

1934-1939 : 엘륄은 잡지 「에스프리」Esprit 와 새로운 수도회 집단과 연결되어 친구 베르나르 샤르보노(Bernard Charbonneau)와 함께 한 집단을 이끌면서 1930년대 비非순응주의자들의 인격주의 운동에 참여한다. 이 집단은 당시 미국식 생산방식인 ‘테일러 방식’(taylorisme)과 ‘포드 방식’(fordisme)의 원칙에 따라 구조화된 생산도구에 의해 초래된 심리적 장애 및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춘다.

1943-1945 : 엘륄은 레지스땅스 운동에 참여한다. 그는 정보수집 활동을 하고, 도피하는데 필요한 가짜 신분증을 제공하며, 나치 감옥으로부터 탈출한 이들과 유대인을 맞아들여 그들이 안전지대로 이동하는데 도움을 준다[8].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 가족들을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준 이 활동으로 말미암아, 그의 사후인 2002년 이스라엘의 얏 바셈(Yad Vashem)재단에 의해 그는 "열방가운데 의인"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1958년부터 : 엘륄은 젊은이 세계에서 범죄 예방을 목표로 하는 보르도의 협회에 참여한다[9].

1973-1977 : 엘륄은 베르나르 샤르보노와 함께 아끼뗀느(Aquitaine) 연안 개발단의 활동에 반대할 목적으로 창설한 환경 단체인 아끼뗀느 연안 보호 위원회에 깊이 관여한다[10].

사회․정치적 분석 - 사회학적 측면[편집]

마르크스와 더불어, 마르크스주의에 맞서[편집]

엘륄은“현대 세상의 형성과정에 대해 이해하려면, 내가 보는 견지로는 마르크스보다 더 좋은 인도자가 없다"[11]라고 기술한다. 그래서 그는 사용 가치, 잉여 가치, 소외 같은 마르크스 개념의 핵심을 다시 취하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에서 마르크스에 대한 해석자로 자임한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그는 마르크스가 남긴 유산에서 일련의 곡해처럼 보이는 바를 파악하는데 열중한다. 즉, 그는 자본가가 노동자에게서 생산된 가치의 일부분을 빼앗는다거나 혹은 자본가가 자신을 위해 노동자의 임금 일부분을 남겨둔다는 식으로 마르크스의 사상을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라 지적하면서, 이와 반대로 자본가는 아무 것도 빼앗지 않을 뿐 아니라 이윤을 만들어내고 잉여 가치를 초래하는 것은 객관적인 메커니즘 자체임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선하고 의롭고 공정한 사장이라면 자신의 노동자에게서 빼앗을 수도, 이윤을 취할 수도, 초과노동을 요구할 수도 없을 텐데, 바로 이 점을 마르크스가 배제한다는 것이다.[12] 따라서 그는 마르크스주의가 하나의 이데올로기임을 상기시키면서, 마르크스주의야 말로 거의 일관성이 없는 지적 요소들과 열정이 혼합된 정치 이론인 동시에 현실성과 결부된 정치 이론이 통속적으로 타락한 것이라고 간주한다[13].

그리하여 엘륄은 공산주의에 대한 신화를 벗기기 시작한다. 엘륄에 따르면, 공산주의 국가에서 인간은 경제적 생산과 생산의 증대만을 이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개인적 자유는 사회적 생산을 위해 사라진다. 다시 말해, 공산주의 국가에서 인간의 행복은 한편으로 ‘더 많은 생산'과 다른 한편으로 ‘안락’이라는 두 용어로만 요약된다는 것이다[14]. 결국, 자본주의 체제에서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 체제에서도 '더 많은 생산'과 '안락'을 위해 이윤 메커니즘과 더불어 자본화에 의한 중공업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데, 유일한 차이는 자본주의의 경우 이윤의 일부가 개인을 부유하게 하는데 반해, 공산주의의 경우 이윤 전체가 프롤레타리아적 요소가 아무 것도 없는 국가에 귀속된다는 점이다[15]. “기술적인 열병에 걸린 소련이 이끄는 세계는 자본주의가 이끄는 세계와 동일한 법칙, 곧 ‘항상 더 효율적이고 더 빠르고 더 강한’이라는 법칙을 따른다.”[16]고 강조하는 엘륄에게 있어, “인간은 가장 소중한 자본이다”라는 스탈린의 표현은[17] 단지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와 약간 다른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준다[18].

이로부터 출발하여 엘륄은 사회주의 전체에 대해, 더 일반적으로는 모든 국가주의 형태에 대해 다음 같이 비판한다. “국가란 거기에 어떤 형용사가 붙든 간에, 즉 공화국이든 민주주의국가든 사회주의국가든 간에, 관료주의적 도구와 제약 수단의 복합체이자 민중이나 혹은 프롤레타리아와 가상의 관계에 의해 겉모습만 합법적인 복합체로 남는다.”[19] 자본주의는 사적이든 국가적이든 경제 성장의 최적화에 의해 초점이 맞추어지고, 따라서 자본주의의 생산 도구에 의해 초점이 맞추어 지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기술의 발전에 의해 완전히 결정지어진다. 이 점이 엘륄로 하여금 다음 같은 결론을 내리게 한다. “오늘날 마르크스가 돌아온다면, 우리 사회를 특징짓기 위해 그는 어떤 현상을 받아들일까? 그것은 자본도 자본주의도 아니라, 기술의 발전과 기술적인 증식 현상이다.”[20]

자본으로부터 기술로[편집]

엘륄은 현대 사회에서 기술이 차지하는 위상과 관련하여, “자본주의에 대해 거세게 비난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이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기술이다.”[21]라는 진단을 내린다. 여기서 그가 자본주의에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 것은, 체제가 전파하는 이데올로기가 무엇이든, 모든 체제는 생산성을 증대시키려고 끊임없이 기술을 완성시키는 목적만을 추구한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로봇공학과 정보공학에서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경제 전체를 결정짓기 때문에, 오늘날 경제가 정치에 그토록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그는 캐나다 라디오 방송 CBC에서 빌렘 반더버그와 인터뷰에서, '자본'이나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을 중심이 되는 마르크스주의를 넘어서서 자신에게 있어 '기술'이 현대 세상을 설명하기 위한 중심 개념이 된 경위를 설명한다. 즉, 그는 마르크스에 의한 19세기의 자본과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이 20세기 초기에 타당한지 의문을 갖기에 이르고, 소련 같은 공산주의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에 극히 비슷한 어떤 경향들이 경제적 변화 너머에서, 또 정치적인 양상 너머에 존재함을 발견한다.[22]

그래서 그는 현대 사회에서 기술이 우리 시대의 현상들 전체를 설명하는데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을 다음 같이 설명한다. "나는 변화가 이루어졌음을 점차 깨달았다. 마르크스는 산업 세계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1930-1940년에 이 산업 세계는 여전히 지배적이었음에도, 새로운 방향들이 나타났다. 소비에트 세계와 자본주의 세계에서 서로 필적할 수 있는 듯이 보인 것은 바로 기술 현상이다. 소련에서 공장과 자동차 및 미국에서 공장과 자동차가 정확히 마찬가지라는 극히 단순한 개념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기본적인 수준에서 공통점이 있었으며, 거기서 우리는 그 두 조직을 비교할 계기를 발견했다. 우리가 사회에서 기술의 중요성을 분석할수록, 우리는 기술이 우리 시대의 현상들 전체를 설명하기 위한 더 결정적 요인이 점차 되고 있음을 깨달았고, 설명 요소로서 기술이 19세기에 마르크스의 해석에서 자본이 했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기술이 자본과 같은 역할을 갖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자본주의 체제가 시대에 뒤진 체제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는 자본주의 세계가 늘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자본은 마르크스가 19세기에 자본을 연구했을 때와 같은 역할을 더는 하지 않는다. 가치를 재생산하는 능력과 역량은 더는 자본과 연계된 것이 아니라 기술과 연계되어 있다."[23]

산업 사회로부터 기술 사회로[편집]

엘륄은 현대 사회가 “마르크스에 의해 분석된 산업 사회에서 새로운 유형의 사회인 기술 사회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회피하지 말고 현대 사회를 특징짓는 하나의 본질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야 함을 강조한다[24]. 그래서 그는 기존의 산업 사회와 다른 새로운 유형의 사회인 기술 사회에 대해 다음 같이 설명한다. “기술 사회는 발전의 어떤 단계에 이른 산업 사회에 일치하지 않으며, 그와는 다른 것이다. (...) 산업 사회는 기계들의 증가를 전제로 한다. 왜냐하면 기계들은 일정한 효율성의 증대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계들을 사용하려면 노동력이 필요하다. 마르크스가 보여주었듯이, 진정한 가치 생산력은 인간의 노동이며, 인간의 노동을 통해 기계들은 작동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것이 더는 사실이 아니다. 활동 영역들 사이에 연계는 이제 정보이다. 모든 것은 상품의 유통에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라 정보망에 기반을 둔다. 자동화와 정보화에 힘입어 기계들은 인간의 개입 없이 작동할 수 있다[25]. 엘륄에 따르면, 그 순간부터 가치를 창조하는 것은 인간의 노동이 아니라 기술적인 완성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이론 전체는 기술적인 과정에 의해 뒤집어진다는 것이다[26]

인간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해결책으로서 혁명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엘륄은 이 모든 것이 정당화의 논리일 따름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인간은 소외될 수밖에 없는데, 우선 인간은 노동에 의해 소외되고[27], 그 다음으로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인간 자신이 만들어 낸 도구들에 의해 소외된다는 것이다. 결국 한편으로는, 인간은 이 도구들의 “유용성”에 꼼짝달싹 못하고 묶여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는 인간의 노동이 아니라 기술이 된다는 것이다. 이와 아울러, 그는 기술의 끊임없는 발전에 따라 국가 기구 전체도 자체의 메커니즘과 더불어 자체의 작동 방식을 이룬다고 하면서, 이런 국가 기구의 특징을 관료주의와 관련시켜 다음 같이 설명한다. “이러한 기구의 법칙 전체는 유용성이다. 이 기구는 이러한 절대적 필요성에 의해 세상과 기술의 이데올로기와 진정으로 관련된다. (...) 관료주의는 작동하기 위해, 또 정치․경제․사회적인 결합체를 작동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관료주의는 개인을 고려할 수 없으며, 유용성이라는 유일한 법칙을 따른다.”[28]

신성화된 기술에 대한 비판[편집]

1953년 베르나르 샤르보노와 함께 엘륄은 현대 사회를 우선 특징짓는 것은 그 모델이 공장과 세분화된 노동인 생산의 집중, 자체의 행정을 통한 국가의 집중, 도시 지역으로 인구의 집중, 자본의 집중 같은 집중 경향임을 지적한다[29]. 엘륄과 샤르보노는 “집중의 실현 수단은 산업적 방식으로서 기술이 아니라 일반적 방식으로서 기술이다.”라는 표현을 통해, 20세기에 기술이 '기계사용'(machinisme)이라는 엄밀한 틀을 폭넓게 넘어서고[30], 이제부터 기계사용이 인간 의식 속에 통합된다는 점을 보여주려 한다. 다시 말해, 엘륄은 기술은 단순한 기계사용으로 더는 요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엘륄은 기술은 위상이 변했다고 평가한다. 기술이 과거에 줄곧 그러했듯이 “각각 하나의 목적에 할당된 수단들의 광대한 결합체”가 더는 아니라는 점, 또 기술이 “대등한 주위 환경”으로 바뀐 점, 또 기술이 그때부터 점점 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자율적인 현상이자 수많은 결정들로 인간을 짓누르게 하는 자율적인 현상이 된 점은[31] [32] [33], 기술은 인간이 감지할 수 없게, 다시 말해 인간 의식 저편에서 신성화되었음을 나타낸다[34]. 엘륄은 이 과정을 다음 같이 자세히 설명한다. 즉,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신성화할 수밖에 없기에 인간이 신성화하는 것은 더는 자연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인간은 자연의 신성함을 박탈했고, 자연을 더럽혔으며, 심지어 자연을 오염시켰다. 이러한 '전이'의 결과들은 환경적일 뿐 아니라 심리적이기도 하고, 기술에 대한 인간의 의존 행위로 나타난다. 과거 시대에 비해 자신을 '성인成人'으로 여기는[35] 인간이 무엇이건 자신이 신성화한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수록 더더욱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36].

그리하여 엘륄은 “우리를 예속시키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기술에 전이된 신성함”[37]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럼에도 프랑스 지성계는 그를 기술을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치부한다[38] [39] [40]. 엘륄은 자가 증식하기를 멈추지 않는 기술이 이웃에 대한 사랑 같은 기독교적 가치이든, 도덕 같은 인본주의적 가치이든, 혹은 자유와 평등과 박애 같은 공화적 가치이든 과거의 모든 가치를 노동과 유용성과 효율성과 경제 성장과 진보 같은 기술 자체의 가치로 대체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이미 역사적으로 시대에 뒤쳐진 실재인 자본주의는 여전히 한 세기를 더 지속할 있으나 이 점은 역사적 관심거리가 아니며, 새롭고 의미심장하고 결정적인 것은 기술이다.”[41]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주장이나 견해는 프랑스 지성계에 강한 영향이나 깊은 인상을 남기지도 못한 듯하다. 다시 말해, 프랑스의 아주 특유한 문화적 중앙 집중 현상에서 비롯된 보르도라는 지방 출신이라는 그의 불리한 입장 때문에,“독단적 태도”와 “순응행위”에 틀어박혀 기술의 위상 변화에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42] 이들에 의해 그가 밀려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엘륄은 “자신의 작업을 비판하는 수고를 기울이기보다 자신의 작업을 고의로 무시하기로 작정하는” 파리(Paris)의 지식층이 자신의 연구 작업을 얕잡아 본다고 판단한다. 그렇지만 십여 년 전부터 엘륄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며 그의 저작이 인정되기 시작하고 있다.

선전과 소외에 대한 고찰[편집]

엘륄은 기술 사회가 의식에 대한 극도로 복잡한 조작 과정, 곧 '선전'이라 불리는 과정에서 비롯된다고 여긴다. 역사학자 크리스띠앙 델뽀르뜨(Christian Delporte)에 의해 “선구적인 저작”이라고 규정된[43], 1962년에 출간되고 1965년 미국에서 번역된 그의 저서 『선전』Propagandes 은 복잡하고 다양한 선전 현상에 대한 연구의 기준 구실을 한다.[44] [45] [46] [47] [48] [49] [50] [51]. 이 저서에서 엘륄은 독재로부터 진보적 민주주의까지 모든 체제에서 다양한 정도로 감지되는 정치적 선전 및 20세기 대중사회의 발전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선전 사이에 차이를 밝힌다. 특히, 그는 이 두 번째 유형, 곧 사회적 선전을 연구하는데 전념한다. 그는 가장 고도화된 정보 기술의 일반화를 통해 '정보'와 '선전' 사이에 전통적 구분 및 '선전자'와 '피선전자' 사이에 전통적 구분이 더 상대적이고 모호해 진다는 점을 주지시키면서, 사회적 선전의 중요성이 증대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선전에 대한 엘륄의 접근은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정면으로 대립시키는 고전적 도식과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동시에, 어떤 면에서 '소외'에 대한 고찰에 포함된다. 즉, 인간이 종속 상태에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억압의 결과일 뿐 아니라, ‘무의식적인 방식으로’ 인간이 어떤 책임을 떠맡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엘륄에 따르면, 인간의 자유는 사실상 인간에게 견딜 수 없는 것이기에, 인간은 자유를 충분히 체험하기보다 차라리 자유로부터 멀어지고자 이를 위해 수많은 핑계를 자신을 위해 만들어내는 쪽을 택한다[52].

따라서 엘륄이 “기술에 대한 신성화”라고 부르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영역에 속하고, ‘자아로부터 도피’라는 현대적인 개념과 아주 유사하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다음 같이 주장한다. 즉, “무엇이든 그것을 제도적인 방식으로 변모시킬 거라 생각하는 것은 헛되고”[53], 전체적으로 정치란 그 자체가 거대한 환상이며[54],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인간들이 자신들의 독특함 속에서 세상을 구상하는 방식을 각자 재검토하는 것이다[55]. 이러한 관점에서 엘륄의 사상은 ‘구경거리 사회’ 이론 및 시뮐라크르(simulacre) 이론의 기원에 있어 각각 그와 동시대인인 기 드보르(Guy Debord)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사상과 아주 유사하다. 뿐만 아니라 엘륄은 자신의 저서에서 꽤 일정하게 그들을 언급한다. 이 세 사람은 ‘지배’라는 개념보다 ‘소외’라는 개념을 중시한다는 사실을 공통점으로 갖고 있다.

혁명과 반란[편집]

현대에 와서 "혁명"이라는 용어 자체의 의미가 극도로 평가절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이상은 엘륄이 연구를 시작한 이후부터 삶의 마지막까지 그를 따라다닌다. 그런데, 엘륄에게 있어 혁명이란 개념은 이 용어에 보통 부여되는 의미와 뚜렷한 차이가 있다. 이 개념은 1930년대의 인격주의 운동에서 생겨나는데, 그 당시 엘륄은 혁명에 대해 다음 같이 기술한다. “현재 모든 혁명은 직접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혁명은 판단 방식과 행동 방식의 변화를 통해 각 개인 안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혁명은 더는 대중 운동이나 큰 소동일 수 없다. 또한 그러기 때문에 혁명가가 되지 않고서, 다시 말해 삶을 바꾸지 않고서 혁명가라 자칭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우리는 혁명가가 담화문을 발표한다는 사실에서가 아니라, 혁명가가 자기가 빌려준 돈의 이자를 더는 받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진정한 혁명을 보게 될 것이다.”[56]

우선 엘륄은 혁명과 반란을 명확히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반란을 특징짓는 두 가지 특성이 있는데, 그 특성 중 하나는 반란자에게 있어 견딜 수 없는 상황을 체험하는 감정이다. 그래서 그는 미래는 현재의 악화일 따름이기 때문에 반란자에게는 미래가 없으며, 이러한 현재를 반란자는 더는 원하지 않기 때문에 반란은 절망적인 행동으로 요약된다고 설명한다. 또한 그는 반란을 특징짓는 다른 특성으로서 적을 지정하고 적에 대해 비난을 가하는 행위를 든다 [57]. 혁명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는 혁명이 '성공한 반란'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반란과 달리, 우선 혁명을 특징짓는 것은 혁명은 어떤 주의主義에 근거하고 현실에 적용되려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혁명에는 절망적인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이와 반대로, 혁명은 어떤 방식을 따라 제도화되려 하고 어떤 질서를 늘 지향하는데, 이 질서가 바로 국가 헌법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하지만 엘륄은 혁명의 반복되는 운명이 다음과 같다고 하면서, 혁명이 지닌 한계를 지적한다. 즉, 혁명이란 지배계급, 곧 혁명의 와중에는 자신의 이익을 잊어버리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애초의 민중의 추진력을 저버리고 마는 계급이 민중의 열망을 떠맡는 것이 된다. 따라서 역사의 움직임은 국가의 몰락을 재촉하는 것일 뿐 아니라 국가를 강화하는 것이므로, 이처럼 모든 혁명은 국가를 더 전체적으로 만드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무엇이든 제도적인 방식에 의해 변화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라고[58] 결론짓는다. 그럼에도 그는 현대 사회에서 한편으로, 기술적이고 상업적인 질서에 맞서 이기기 위해 혁명은 “절대 필요한” 채로 있고, 다른 한편으로, 고전적인 형태에서 혁명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간주한다. 그래서 그는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말로, 반란이 어떤 계급에 의해 수단화되지 않고 이처럼 원래 목적에서 벗어나기 않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본다. 이처럼 그가 국가를 비판하는 것은 국가의 이상발달 및 중앙집권제 때문인데, 그는 국가의 이상발달 및 중앙집권제로 말미암아 개인은 행동주체가 아닌 무기력한 요소가 될 따름이라고 판단한다.

소외로부터 자유로[편집]

엘륄은 계몽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개인'이란 개념 자체를 문제 삼는데, 이 개념은 종교적인 모든 사고와 편견에서 벗어나고 이 때문에 성숙한 형태에 이른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는 이미지를 나타낸다. 그는 이 개념이 대중화된 사회가 반드시 만들어내는 콤플렉스를 은폐하고 보상하는 데만 쓸모 있을 따름이라고 주장한다[59]. 그리하여 그는 "자신들의 운명을 떠맡은 사람들로 가득 찬 성년이 된 세상의 존재를 믿는 이들의 근본적인 오류는, 인간에 대한 전적으로 지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60]라고 하면서, '성인成人'이 된 인간에 대한 신화를 분석하는데 전념한다. 요컨대, “현대적”이고 '성인成人'이 되었다고 자부하는 인간은 과학을 신화화하고 기술과 국가를 신성화할 따름이라는 것이다[61]. 그는 이러한 고찰을 다음 같은 사실과 연결시킨다. 즉, “인간은 자신이 주장하듯이 자유에 전혀 열중하지 않는다. 자유란 인간에게 있어 타고난 욕구가 아니다. 안전과 순응과 적응과 행복의 욕구가 훨씬 더 일정하고 깊다... 그래서 인간은 이 욕구들을 충족시키고자 자신의 자유를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 물론, 인간은 직접적인 압제를 견딜 수 없지만, 그 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강압적인 방식으로 다스려지는 것을 인간은 견딜 수 없는데, 그것은 인간이 자유로운 인간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다른 사람에 대한 자신의 권위를 행사하고 명령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진정한 자유를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진정한 자유를 두려워한다.”[62]는 사실이다.

엘륄은 이 “자유에 대한 두려움”을 다음 같이 설명한다.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18세기에 생겨난 소외는 특히 철학자들에게 있어 자유에 대한 수많은 추론을 수반한다. 철학자들은 사회학과 정치학과 정치 경제학과 사회 심리학이 인간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주는 모든 것을 고의로 무시한다. 그래서 그들의 허구를 통해 우리는 꿈과 비일관성의 세계로 들어간다. 거기서는 모든 것이 언어적으로 가능하지만, 우리는 언어적인 것을 넘어서지 못한다. 보상적인 단순한 가치 이상의 것을 거기서 보아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크스가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는 것의 차원에 있다. 즉, 이 철학자들은 허위의식[63]의 매개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전제로 삼기만 하는 자유를 내세우면서, 그들은 경제 체계에 의해 야기된 소외를 적어도 무의식적으로 지지하는데, 다시 말해 그들은 소외를 정당화한다. 경제적 결정들의 비중은 막중한 만큼 더더구나 경제적 영역을 넘어 정당화된다. 이처럼 우리 문명이 복잡해질수록, 이 결정들은 내면화 된다. 이 결정들은 점점 덜 가시적이고 외적이고 제약적이고 충격적이다. 이 결정들은 행복을 위해 제시되기조차 하면서 자발적이고 기만적이 된다. 따라서 이 결정들의 비중은 있는 그대로 느껴지지 않고 자명한 것으로서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정당화된 우리의 소외는 우리에게 거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64]

그래서 엘륄은 '진정한 자유'를 '핑계거리 자유'(liberté-prétexte)와 구분하여 다음 같이 설명한다. “대체로 ‘자유’라고 불리는 것은 자신의 자연적인 성향을 따르고자 사람들이 자신에게 부여하는 '핑계'일 따름이다. 자유의 이름으로 사람들은 모든 것을 행할 수 있고, 어떤 일이나 그 반대되는 일도 행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진정한 자유'는 인격의 통일성과 일관성과 연속성 및 타인에 대한 신실함을 흔적으로 나타내고, 지속성 속에서 구현된다. (...) ‘핑계거리 자유’는 우리 사회 전체의 토대이다. 타인을 가장 심하게 억누르도록 허용하는 것이 경제적 자유주의의 ‘핑계거리 자유’이고, 부르주아 계급으로 하여금 노동자 계급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정치적 자유주의의 ‘핑계거리 자유’이다.”[65]

결국, 인간에 의한 기술에 대한 신성화는 기술이 무의식적으로 인간에게 가하는 제약들의 내재화와 수용으로서만 규정된다면, 인간은 어떻게 그 제약들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어떻게 기술의 신성을 박탈할 수 있는가? 엘륄은 “인간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기술의 소외로부터 해방되어야 하고, 기술이 과장해서 말하는 우선 노동과 같은 거짓 가치 및 특히 ‘행복 이데올로기’ 같은 거짓 가치의 미망에서 깨어나야 한다.”[66]고 주장하면서, 이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 같은 대답을 제시한다. “기술이 총괄적이라면, 다시 말해 기술 체계가 새로운 현상들이 나타나는 대로 새로운 모든 현상들을 통합할 수 있다면, 또한 기술이 회수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면, 다시 말해 모든 혁명운동이 결국 기술에 의해 회수된다면, 무엇이 기술을 벗어날 수 있을까? 인간적인 관점에서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초월의 형태가 필요하다.”[67]

결국, 그는 '증언'이란 표현을 기독교적 의미에서 사용하면서, 자신의 영적 체험을 다음 같이 증언함으로써 어떤 해결책을 모색한다. "나는 하나님이 바벨탑에서처럼 기술이 실패하게 하려고 기술에 직접 개입할 거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인간으로 하여금 기술에 개입할 수 있게 하는 통찰력과 용기와 소망을 인간이 다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성서의 하나님의 계시를 배경으로 함으로써 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인간은 절망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68] 그래서 그는 전형적으로 역사적인 문제에 대답하고자 초월자에 대한 영적 체험을 상기시키면서, 역사적인 문제라는 소위 '합리적인 것'과 영적 체험이라는 소위 '비합리적인 것' 사이에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변증법을 실행하려 한다. 하지만 이것들 사이에 놓인 가치들의 현저한 대립으로 말미암아, 그는 자신이 속한 지적 공동체로부터 고립된다. 왜냐하면 결국 영적 체험으로 귀결되고 결론지어지는 그가 행한 분석과 논증들이, 이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비신자들에게는 공통의 척도가 없어 평가할 수 없는 도발의 의미를 띠기 때문이다.

영적인 노정 - 신학적 측면[편집]

성서와 자유와 책임[편집]

신학자로서 엘륄은 두 가지 유형의 저작을 저술한다. 한편으로, 현대 교회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중심으로 하는 저작이다. 다른 한편으로, 특히 창세기, 요나서, 열왕기하, 전도서, 로마서, 요한계시록 같은 성서에서 발췌된 다양한 텍스트에 대한 주석이다. 성서 텍스트에 대한 엘륄의 접근에서 다음 같은 네 가지 특징을 염두에 둘 수 있다.

우선, 첫 번째 특징은 프레데릭 로뇽이 강조하듯이, 성서는 우리 인간에게 책임과 자유를 떠안기는 책이라는 점이다. “자끄 엘륄은 성서를 비결을 담은 책으로도, 심지어 우리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담은 책으로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질문을 가지고 성서 안으로 들어가면, 거기서 질문은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리 이동과 중심 이탈을 겪는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워진 우리의 질문 및 우리에게 제기된 새로운 질문을 가지고 성서로부터 다시 나온다. 자유롭게 질문에 대답하는 것, 다시 말해, 우리의 대답을 떠맡으면서 책임지는 것은 우리다. 따라서 성서는 인간을 자신의 자유와 책임으로 돌려보내는 책이다.”[69] 자신의 저서에서 아주 일정하게 또한 텔레비전에 드물게 출연할 때에도, 엘륄은 성서를 질문을 담은 책으로 소개하는데, 이 점에 있어 그는 “신앙은 신심과 다를 뿐 아니라 신심에 대립한다”고 분명히 말한다.

두 번째 특징은 “실재”와 “진리” 사이에 변증법이다. 엘륄은 예를 들어 요나서에 기술된 사실들이 현실로 간주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완전히 있음직하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렇기는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려는 유혹 속에 있다고 거기에 묘사되어 있으므로, 또 요나서의 저자가 자신의 하나님과 개인적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약속하는 한, 그 뿐 아니라 미완성 상태의 기술에 대한 신학적 비판이 거기서 식별되는 한, 이 이야기는 사실이라고 엘륄은 분명히 말한다[70]. 마찬가지로, 그는 열왕기하가 자율성에 대한 주장을 가장 강하게 표명하는 장으로서 정치적인 것의 상대성을 보여준다고 밝힌다[71]. 성서의 마지막 권인 동시에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요한계시록에 대해 말하자면, 요한계시록에 두 저서를 할애하는 엘륄은 '실재' 안에 있는 더 신비스러운 것을 강조하면서, 독자에게 '실재'를 해석하는 수단을 거기서 보도록 권유한다.

성서 텍스트에 대한 엘륄의 접근을 유달리 눈에 띄게 하는 세 번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즉, 성서는 내용 전개에 있어 거의 기존 권력을 비판하는 만큼이나 종교를 비판하고[72],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어떠한 매개도 없이 직접 대화를 강조하는 책이라는 점이다. 신학 분야에서 키르케고르(Kierkegaard)와 칼 바르트(Karl Barth)에 대한 지적인 빚을 인정하는 엘륄은 죄와 구원을 성서 해석의 처음과 끝으로서 규정하는 대부분의 신학자와 구별된다. 그가 보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는 무조건적이다.

마지막 네 번째 특징으로, 키르케고르를 본 따서, 엘륄은 자신이 '헛됨의 목록'에 분류하는 자신의 성서 주석을 포함하여 성서 주석의 중요성을 상대화한다[73]. 그는 “우선 텍스트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히는 것, 음악처럼 감정과 고요한 경청 속에서 텍스트를 받아들이 것,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하기 전에 자신의 감수성과 상상력이 말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74] 중요하다고 말한다.

종교에 맞선 신앙[편집]

신학 분야에서 엘륄의 독특함은, '진정한 신앙'을 체험하는 일은 종교 현상과 거의 관련이 없으므로 '진정한 신앙'을 체험함으로써 종교 현상을 불신하게 된다고 주장하는 점에 있다. 젊은 시절 엘륄은 ‘계시’ 혹은 ‘회심’이라 불리는 바를 체험하는데, 이 '회심'에 대해 다음 같이 설명한다. “나는 별로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갑작스럽다고 할 수 있는 육중한 회심이 보르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블랑끄포르(Blanquefort)에 있는 친구들 집에서 방학기간 중이던 여름에 일어났다. 나는 대학입학자격시험 철학과목을 치른 이후였기 때문에 이 때 17살이었던 것 같다. 이런 종류의 명백한 현존, 곧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던 믿을 수 없고 놀라운 어떤 것을 느꼈을 때, 나는 파우스트(Faust)를 번역하는데 열중하며 집안에 혼자 있었다. 바로 이것이 내가 이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전부이다. 이 후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현존이다’라고 속으로 말했다. 아주 빨리, 나는 내가 회심을 경험했음을 깨달았고, 그리고 나서 나는 그것이 견고한지 그렇지 않은지 확인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반기독교 작가들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18세에 나는 켈수스(Celsus)와 돌바끄(d'Holbach)와 내가 이미 약간 알던 마르크스의 저서를 읽었으나, 나의 신앙은 계속 유지되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우선 나의 사고가 재편성되는 것을 시작으로 나의 존재 전체가 뒤흔들렸다."[75] 이러한 “사고의 재편성"으로 말미암아, 엘륄은 신앙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신앙은 날마다 사실들과 비판적 이성을 견뎌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의심은 신앙을 약화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의심만이 신앙에 자양분을 공급한다는 것이다[76].

그는 이런 입장에서 출발하여 기독교에 대한 신랄하면서도 정당한 비판에 몰두하면서, “어떻게 기독교 사회와 교회의 발달이, 우리가 성서를 통해 읽은 것, 곧 토라와 선지자와 예수와 바울의 분명한 텍스트와 모든 면에서 반대되는 사회·문화·문명을 탄생시켰는가?”[77]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따라서 그는 하나의 '주의主義'나 종교 현상으로 전락해 버린 기독교에 대해, 본래의 진정한 기독교의 왜곡에 불과한 이데올로기적이며 사회적인 운동의 경우에만 '기독교'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하면서, 다름 같은 세 가지 측면을 포함하는 '엑스(X)'라는 용어로 '기독교'라는 용어를 대체할 것을 주장한다. 삼중적인 이 세 가지 측면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취된 하나님의 계시와 일이고, 둘째,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의 참된 존재이며, 셋째, 진리와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이다.[78]

'하나님과의 단절' 시대에서 소망[편집]

기독교나 세상에 대한 엘륄의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사실 확인은 자신 안에 지닌 소망과 자신이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데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즉, 엘륄의 이런 입장과 태도는 그가 구약의 ‘사사기 시대’나 예수 그리스도가 오기 직전의 ‘중간 시대’처럼 현 시대와 세상이 '하나님과의 단절' 상태에 있다고 규정하는데서 비롯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로부터 돌아서서 침묵하는 ‘하나님과의 단절' 시대에 들어왔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 모두로부터 돌아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 속에는 존재해 있다. 하나님의 침묵과 부재(不在)는 집단적으로 체험되는 것으로서, 우리의 역사와 사회와 문화와 과학과 정치로부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하나님과의 단절’ 상황에 있는 것은 기독교가 지배하는 국가이고 교회라는 것이다. 이런 자신의 전제 앞에서 수많은 반발과 반대 입장이 제시되겠지만, 하나님이 실제로 돌아섰고 하나님의 말이 그 자체로서 더 이상 선포되지 않는다고 그는 주장한다[79]. 특히, 그는 기독교가 본래의 모습에서 벗어나고 왜곡된 근본적인 원인이 하나님의 돌아섬과 침묵, 다시 말해 '하나님과의 단절' 상태에 있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더 나아가 그는 이러한 세상과 사회에 나타나는 닫힌 세상, 비합리의 폭발, 뒤바뀜, 가치들의 변질, 말의 죽음, 마법적인 것으로 회귀, 경멸, 의심, 조롱 등과 같은 현상과 징조의 근원이 되는 상황으로서 ‘하나님과의 단절’을 제시한다[80].

엘륄은‘하나님과 단절’ 시대에서 소망은 하나님의 이러한 거부와 침묵과 돌아섬 앞에서 인간의 요구이자 하나님에게 전해지는 도발임을 강조하면서, 소망이 근거하는 태도로서 기다림과 기도를 제시한다. 기다림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到來)에 대한 기다림이고,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말과 성령에 대한 기다림이다. 그 기다림은 길을 잃은 이 시대에 위험이 임박할 때 구조신호를 보내듯 중단 없이 악착같이 매일 하루에도 수백 번 ‘마라나타’를 외치는 인간에게 더욱 더 요구된다. 기도는 하나님의 개입 가능성에 대한 확신으로서, 우리가 기도를 시작하는 그 때 소망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도란 돌아서서 침묵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돌아와 다시 말하도록 요청하는 끈질기고 투쟁적인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81].

실제로, 엘륄은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적극적으로 돌아서서 하나님을 아는 것을 터득한다면, 인간은 자신을 진정한 혁명으로 유일하게 이끌 수 있는 자유를 발견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에 따르면, 이것은 제도화된 교회가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부름, 곧 하나님에 의한 그리스도인의 부름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혼자 남아 있음으로써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기에 교회의 필요성이란 원리를 부인하지 않는 엘륄은 “일상적이면서도 영원한 긴장의 표현”으로서 자신의 신앙을 체험하기에 이르고, 신학자로서 열정을 쏟기에 이른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키르케고르와 칼 바르트라는 개신교의 두 위대한 인물로부터 영감을 받은 그는 1945년부터 개신교 잡지인 「개혁」Réforme 지에 많은 글을 쓰고, 「신앙과 삶」Foi et Vie 지의 편집장으로 활동하면서, 기술과 자유와 혁명에 할애된 자신의 저작만큼이나 풍부한 신학 분야의 저작을 집필한다.

도발적인 입장 표명[편집]

엘륄은 사회 현상인 종교와 개인적 체험인 계시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끊임없이 부각시킨다. 하지만 그가 프랑스라는 반反교권주의로 뚜렷이 각인된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신앙을 드러냄으로써 대부분 무신론자이나 그가 가까이 하기를 몹시 즐겨하는 여러 지식인과 멀어지고 만다. 예를 들어, 그는 국제 무정부주의자들의 사상에 몹시 이끌려 기 드보르(Guy Debord)에게 공동 연구를 제안하지만, 기 드보르는 엘륄이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기에 이를 거절한다[82]. 마찬가지로 엘륄은 교회에 대한 가장 근본적이고 신랄한 비판에 몰두하기에,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거의 친구를 만들지 못한다. 예를 들어, 그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다음 같이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투사였으며 투사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행동 공동체를 만들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목격하는가? 일요일에 서로 옆에 앉아 있으나 서로 모르는 체하며 새로운 아무 것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무기력하고 게으르며 아무 일에도 개입하지 않는 교회의 구성원들이다.”[83] 더구나 “기독교는 그리스도에 대한 최악의 배반이다”[84] 라는 그의 표현은 훨씬 더 과격한 듯이 보인다.

이처럼 엘륄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바는 그들의 ‘순응행위’(conformisme)인데, 그에 따르면 이 '순응행위'는 로마서 12장 2절에서 “현 시대를 추종하지 말라”는 바울의 권고를 무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엘륄은 그리스도인들이 경제적 자유주의라는 재앙과 오늘날 마약이 되어버린 기술에 대한 어떠한 비판에도 전념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 뿐 아니라, 엘륄은 그리스도인들이 기술과 국가가 신성화되어 있다는 사실 및 더 나아가 성서의 말씀이 조롱당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가장 열성적인 지지자들 가운데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고 주장한다. 엘륄은 콘스탄티누스 치하에서 교회와 국가 사이에 맺어진 거래가 특히 『뒤틀려진 기독교』La Subversion du christianisme 의 내용을 이룬다고 간주한다. 이와 반대로, 그는 그리스도의 메시지와 무정부주의의 강령 사이에 강한 유사성을 확립한다. 즉, 이 둘에는 자유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이 공통으로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국가제도와 교회제도에 거부 내지는 최소한 이 제도들의 신성화에 대한 거부가 있다는 것이다. 『무정부와 기독교』[85]라는 저작은 기독교 무정부주의의 극히 강력한 메시지를 이룬다. 그는 한편으로, 복음의 근본적으로 전복적이고 해방적인 측면들을 부각시키고, 다른 한편으로, 무정부주의를 “사회주의의 가장 완성된 형태”로서 간주하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기발하게 여겨지는 주제이나, 기독교계에서는 지지받을 수 없는 주제일 따름이다.

이슬람에 대한 문제제기[편집]

1967년 이스라엘과 아랍 간의 갈등이 시작된 이후부터 자신이 죽기까지 엘륄은 이스라엘의 편을 드는 엄청나게 많은 글을 발표하는데[86], 마찬가지로 1986년에는 『이스라엘을 위한 그리스도인』Un chrétien pour Israёl[87] 이란 제목이 붙여진 책이 출간된다. 이와 아울러, 엘륄은 자신이 '유대․기독교'(judéo-christianimse)와 이슬람 사이에 양립불가능성을 주장한다는 점을 명백히 밝힌다. 그에 따르면, 이슬람은 소수파일 때 자신을 위한 온갖 권리를 요구할 수도 있으나, 이슬람이 다수파이거나 혹은 다수파가 될 때 다른 것들에게서 이 권리들을 거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88]. 이 논제와 관련된 비판에서는 엘륄이 양보하지 않음을 언급하는 프레데릭 로뇽에 따르면[89], 이스라엘에 호의적인 전제들로 이루어진 논쟁적인 글에서 엘륄은 하나님의 속성이란 문제가 제기되자마자 하나님의 단일성은 여지없이 손상된다고 주장하면서, 또 그 텍스트가 동등한 속성을 지니지 않은 소위 “책의” 세 종교들이 아브라함의 친자 관계에서 속성의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유대․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 유사성을 설정하는 지식인들을 비판한다.

또한 엘륄은 이슬람이 지닌 근본적인 한계에 대해 다음 같이 지적한다. “나는 이슬람에도 역시 말의 성육신成肉身에 대한 배려가 있고 이슬람 역시 아브라함과 예수 안에서 계시에 힘입어 존재함을 잊지 않지만, 나는 마시뇽(Massignon)의 해석을 택하겠다. 그에 따르면 마호메트는 ‘부정적인 예언자’ 즉 유대교와 기독교 이후에 위치하기를 주장했던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을 뛰어넘는 것은 실제로 어떠한 분야에서도 새로운 아무 것도 정말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쓸데없는 되풀이이다. 그리하여 마호메트는 그가 이런 길에서 아무 것도 덧붙여질 리 없고 새로워질 리 없음을 입증한다는 의미에서 예언자이다. 그래서 이슬람에는 인간 역사의 깊은 의미에 있어서 유대교와 기독교와 같은 근본적인 중요성이 없는 듯이 보인다.”[90]

더 나아가 엘륄은 이슬람을 서구에 대한 위험, 곧 "서구에 대항하는 영원한 전쟁 위협"으로 간주한다. 같은 시대에 그는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 "유럽을 파멸시키고 없애버릴" 존재를 맞아들이는 "유럽의 평화적인 침입"에 대해 언급한다. 1988년 그는 지금부터 25년 후까지 유럽은 무슬림이 새로운 '쇼아'(Shoah)[91]를 조장한다고 비난하면서, 인종차별정책 시절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상황에 비견될 만한 상황에 있을 거라고 판단한다[92]. 어떤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 근본적인 입장 표명은 이슬람에 대한 단편적이고 막연한 인식에 근거를 두지만, 다른 연구자들은 엘륄의 불안감에 동조한다[93]. 그렇지만, 엘륄은 1980년 라디오스꼬삐(Radioscopie) 자끄 샹셀(Jacques Chancel)의 방송에 출연하여, "나는 이슬람이 자신의 선지자들과 신비주의자들의 이슬람이 다시 된다면, 대화가 극히 유익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가진다."라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한다.

자끄 엘륄의 계승자[편집]

자끄 엘륄의 유산[편집]

50여권 이상의 책과 수백편의 글로 된 상당한 저작을 저술했지만, 엘륄의 명성은 프랑스에서 꽤 미미한 채로 남아 있고, 프랑스 서남부에 위치한 아끼뗀느(Aquitaine) 지역을 벗어나지 못한다[94]. 엘륄의 영향은 지적인 풍토에서 아주 한정되어 있다. 장 삐에르 제제껠(Jean Pierre Jézéquel)이 모스(Mauss) 지의 글에서 기술하듯이, “사람들은 기술 및 기술의 특성에 대한 엘륄 식의 분석력과 오늘날의 토론에서 엘륄의 부재 사이에 간극에 어리둥절해 한다. 현상에 의해 제기된 문제들이 엘륄이 살아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이 문제들이 사람들의 일상적인 관심사에서처럼 대중 연설에서 훨씬 더 나타나는데도 말이다”[95] 이와 반대로, 엘륄의 사상을 원용하는 엄청나게 다양한 흐름이 목격된다. 그가 1930년대 몇 편의 글을 발표했던 에스프리(Esprit) 지는 직접적인 참조의 하나로서 그를 일정하게 인용한다. 이반 일리치(Ivan Illich) 같은 기독교 철학자는 1993년 11월 12일과 13일에 보르도에서 열린 “자끄 엘륄의 저작에서 기술과 사회”를 주제로 한 국제 학회 때 엘륄에게 열렬한 찬사를 보냈다[96]. 전혀 다른 영역에서도 그리스도적 연구의 영감을 띤 인격주의적 무정부주의의 수립을 추구하는 ‘급진주의자 예수’(Jesus Radicals)라는 미국에서의 운동은 공공연하게 무엇보다도 엘륄의 저서들이 자신에게 귀속됨을 주장한다.

2000년에 동시에 창설된 프랑스의 세계 자끄 엘륄 협회(AIJE : Association Internaitionale Jacques Ellul)[97]와 미국의 세계 자끄 엘륄 협회(IJES : International Jacques Ellul Society)는 엘륄의 유산의 핵심을 유지하고 있다. 두 협회 모두 엘륄의 저작을 알리고 엘륄의 저작이 오늘날 무슨 점에서 명확히 밝혀 주는지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두 협회는 빠트릭 트루드 샤스뜨네와 데이비드 길(David W. Gill)에 의해 각각 주재되고 있다. 엘륄에게 소중한 연방적인 방식으로 기능을 수행하면서 프랑스의 세계 자끄 엘륄 협회는 다양하게 조직된 여러 지역 그룹을 프랑스에서 결집시키고 있다. 2008년 창설된 마르세이유․엑상프로방스(Marseille / Aix en Provence) 그룹은 가장 활동적인 그룹 중 하나이다. 자체의 인터넷 사이트[98]를 이용하여 이 그룹은 2011년과 2012년 사이에 참여 활동을 주제로 다양한 모임을 주재한다. 초대 인물 중에는 1971년부터 1974년까지 엘륄과 일정하게 교류했던 유럽의회 의원인 호세 보베(José Bové), 엘륄의 제자였던 작가 장 끌로드 기이보(Jean Claude Guillebaud), 두 권의 저서를 엘륄에게 할애했던 프레데릭 로뇽 등이 있다. 이 그룹의 리더인 조엘 드까르젱(Joël Decarsin)은 엘륄 식의 접근과 무의식의 심리학에서 다양한 연구의 교차점에 있는 개인주의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또한 이 그룹은 한국에서 엘륄의 저서 번역 작업에 도움을 주는데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엘륄의 저서 번역 숫자에 있어 미국 다음으로 두 번째 가는 나라이며, 2009년 한국 자끄 엘륄 협회(Korean Jacques Ellu Society)[99]가 창설된다.

그리고 떼끄노로고스 협회(Association Technologos)[100]가 있는데, 이 협회의 목적은 현대 사회에서 기술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고찰, 더 특별히는 기술의 확장과 기술이 빚어낸 결과에 대한 고찰을 프랑스에서 전개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찰은 다음 같은 두 가지 질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어느 정도로 우리는 기술을 통제하고 있는가?" 또 "기술을 통제한다는 인간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로 기술은 인간의 상황을 만들어내는 자율적인 과정이 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러한 고찰은 자끄 엘륄은 물론, 기술적인 현상에 대한 분석으로 잘 알려진 베르나르 샤르보노(Bernard Charbonneau),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귄터 안데르스(Günther Anders), 이반 일리치(Ivan Illich) 등의 사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 협회는 국제적인 연맹을 만들려는 목적으로 외국에서 이와 비슷한 목적을 지닌 단체와 관계를 맺기 원한다.

엘륄 탄생 100주년인 2012년에는 1월에는 『기술 체계』Le Système technicien,『기술담론의 허세』Le bluff technologique, 엘륄 사상을 보급하는데 기여했던 장 뤽 뽀르께의 책 『(거의) 모든 것을 예견한 사람, 자끄 엘륄』Jacques Ellul - L'homme qui avait (presque) tout prévu, 마르크스에 대한 강의 같은 여러 주요 저서가 재 간행되었다. 또한 3월에는 두 권의 새로운 저서가 간행되는데, 한편으로 스테판 라비뇨뜨(Stéphane Lavignotte 의 『자끄 엘륄, 무엇보다 소망』Jacques Ellul, L'espérance d'abord 이고, 다른 한편으로 프레데릭 로뇽의 『엘륄 세대. 자끄 엘륄 사상의 60명 계승자』Générations Jacques Ellul. Soixante héritiers de la pensée de Jacques Ellul 이다. 프랑스와 세계에 걸쳐 60여명의 인물로 구성된 이 책은 프랑스와 세계에 걸쳐 엘륄 저작의 수용에 대한 정확한 상황 판단을 한다. 그리고 5월 30일에는 '파리 고등사회과학원'(EHESS)에서 경제 분야에서 엘륄의 예측이 현실성이 있는지에 대한 학술대회가 열린다. 다음으로 6월 7일부터 9일까지 보르도에 있는 '몽테스끼외 정치 연구 센터'(Centre Montesquieu de Recherches Politiques)는 “어떻게 20세기에 엘륄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를 주제로 하는 학회를 주재한다.

자끄 엘륄이 미친 다른 영향[편집]

『공해 백과사전』l'Encyclopédie des Nuisances, 테드 카진스키(Ted Kaczynski), 미국의 사회 비평가 닐 포스트먼(Neil Postmanm)[101] 같은 반산업주의적 경향을 지닌 사전이나 인물들은 일정하게 엘륄을 참조한다. 엘륄 저서의 독자로서 농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장 삐에르 베를랑(Jean-Pierre Berlan)은 생명공학의 어원이 의미하는 바인 “생명의 과학”과는 반대로 생명공학을 “죽음의 과학”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엘륄이 “광대한 정보처리 망”으로서 시장이 기술의 평범한 변화일 따름이라는 사실을 강조할 때, 그는 시장에 자신의 비판을 한정시킨다는 사실에 의해 엘륄과 구분된다[102]. 인접한 영향권에 있는 프랑스 그르노블(Grenoble)의 단체 “부품과 인력”(Pièces et main d'oeuvre)은 과학 연구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에 참여하는데, 이 단체는 과학 연구가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과 더불어 경제력에 의해 완전히 도구화된 것으로 파악한다. 엘륄이 자기 시대에 그렇게 했듯이 신기술을 두려워하는 자가 되기를 스스로 금하면서 이 단체의 구성원들은 핵 산업, 유전자 변형 생물체, 나노 공학, 전자 카드화, 휴대 전화 등을 비판한다. 그들은 우리 사회를 산업 사회 혹은 후기 산업 사회로 규정한다는 점에 있어 엘륄과 구별되는데, 엘륄은 이러한 수식어들이 오래전부터 시대에 뒤떨어져 있으며 우리 사회를 기술 사회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저서[편집]

연대별 저서 목록[편집]

  • 1936. Étude sur l'évolution et la nature juridique du Mancipium (thèse de doctorat) ; 만시피움의 변화와 사법적 성격에 대한 연구(박사학위 논문)
  • 1946. Le fondement théologique du droit ; 법의 신학적 기초
  • 1948. Présence au monde moderne, Problèmes de la civilisation post-chrétienne ; 현대 세상에서 현존, 후기 기독교 문명의 문제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 대장간)
  • 1952. Le livre de Jonas ; 요나서 (『요나의 심판과 구원』 - 대장간)
  • 1954. L'homme et l'argent ; 인간과 돈 (『하나님이냐 돈이냐』 - 대장간)
  • 1954. La Technique ou l'Enjeu du siècle ; 기술 혹은 시대의 쟁점 (『기술의 역사』 - 한울)
  • 1955. Histoire des institutions, t. 1 & 2, L'Antiquité ; 제도사 1-2권, 고대
  • 1956. Histoire des institutions, t. 3, Le Moyen Age ; 제도사 3권, 중세
  • 1956. Histoire des institutions, t. 4, XVIe siècle-XVIIIe siècle ; 제도사 4권, 16-18세기
  • 1956. Histoire des institutions, t. 5, Le XIXe siècle ; 제도사 5권, 19세기
  • 1962. Propagandes ; 선전 (『선전』 - 대장간)
  • 1963. Fausse présence au monde moderne ; 현대 세상에서 잘못된 현존
  • 1964. Le vouloir et le faire, Recherches éthiques pour les chrétiens ; 원하는 것과 행하는 것, 그리스도인을 위한 윤리 연구 (『원함과 행함』 - 솔로몬)
  • 1965. L'Illusion politique ; 정치적 환상 (『정치적 착각』 - 대장간)
  • 1966. Exégèse des nouveaux lieux communs ; 새로운 사회 통념에 대한 주석
  • 1966. Politique de Dieu, politiques de l'homme ; 하나님의 정치와 인간의 정치 (『하나님의 정치와 인간의 정치』 - 대장간)
  • 1967. Histoire de la propagande ; 선전의 역사
  • 1967. Métamorphose du bourgeois ; 부르주아의 변신
  • 1969. Autopsie de la révolution ; 혁명의 해부 (『혁명의 해부』 - 대장간)
  • 1971. L'impossible prière ; 불가능한 기도
  • 1971. Jeunesse délinquante, Une expérience en province (avec Yves Charrier) ; 비행 청소년, (이브 샤리에와) 지방에서 경
  • 1972. Contre les violents ; 폭력에 맞서 (『폭력에 맞서』 - 대장간)
  • 1972. De la Révolution aux Révoltes ; 혁명으로부터 반란까지
  • 1972. L'Espérance oubliée ; 잊혀진 소망 (『잊혀진 소망』 - 대장간)
  • 1973. Éthique de la liberté, volume 1. ; 자유의 윤리, 1권
  • 1973. Les nouveaux possédés ; 새로운 악령 들린 자들
  • 1974. Éthique de la liberté, volume 2. ; 자유의 윤리, 2권
  • 1975. Sans feu ni lieu : signification biblique de la Grande Ville ; 의지할 곳 없이, 대도시의 성서적 의미 (『머리 둘 곳 없던 예수』 - 대장간)
  • 1975. L'Apocalypse : Architecture en mouvement ; 요한계시록, 움직이는 건축물 (『요한계시록 주석』 - 한들)
  • 1975. Trahison de l'Occident ; 서구의 배반 (『서구의 배반』 - 솔로몬)
  • 1977. Le Système technicien ; 기술 체계 (『기술 체계』 - 대장간)
  • 1979. L'idéologie marxiste chrétienne ; 마르크스 기독교 이데올로기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 - 대장간)
  • 1980. L'empire du non-sens, L'art et la société technicienne ; 무의미의 제국, 예술과 기술 사회(『무의미의 제국』 - 대장간)
  • 1980. La foi au prix du doute, « Encore quarante jours...»  ; 의심을 댓가로 치른 신앙, “아직도 40일이...” (『의심을 거친 믿음』 - 대장간)
  • 1981. La Parole humiliée ; 굴욕당한 말
  • 1982. Changer de révolution, L'Inéluctable Prolétariat ; 혁명의 쇄신, 불가피한 프롤레타리아 (『인간을 위한 혁명』 - 대장간)
  • 1984. Éthique de la Liberté, volume 3 : « Les Combats de la liberté » ; 『자유의 윤리, 3권, “자유의 투쟁” (『자유의 투쟁』 - 솔로몬)
  • 1984. La Subversion du christianisme ; 기독교의 뒤집힘 (『뒤틀려진 기독교』 - 대장간)
  • 1985. Conférence sur l'Apocalypse de Jean ; 요한계시록 강연
  • 1986. Un chrétien pour Israël ; 이스라엘을 위한 그리스도인
  • 1987. Ce que je crois ; 내가 믿는 것
  • 1987. La raison d'être, Méditation sur l'Ecclésiaste 존재의 이유, 전도서 묵상 (『존재의 이유』 - 규장)
  • 1987. La Genèse aujourd'hui ; 오늘날의 창세기
  • 1988. Anarchie et Christianisme. ; 무정부와 기독교 (『무정부주의와 기독교』 - 대장간)
  • 1988. Le bluff technologique ; 기술담론의 허세
  • 1991. Ce Dieu injuste...? Théologie chrétienne pour le peuple d'Israël ; 불의한 하나님...?,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기독교 신학 (『하나님은 불의한가?』 - 대장간)
  • 1991. Si tu es le Fils de Dieu: Souffrances et tentations de Jésus ;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예수의 고난과 시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 대장간)
  • 1992. Déviances et déviants dans notre société intolérante ; 너그럽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일탈과 일탈자
  • 1992. L'Homme à lui-même, correspondance avec Didier Nordon ; 참 모습 그대로의 인간, 디디에 노르동과의 서신 교환

자끄 엘륄의 유작[편집]

  • 1995. Silences, Poèmes ; 침묵, 시
  • 1996. Oratorio, Les quatre cavaliers de l'Apocalypse ; 오라토리오, 요한계시록의 네 기사
  • 2003. La pensée marxiste ; 마르크스 사상 (『마르크스 사상』- 대장간, 2013)
  • 2004. Islam et judéo-christianisme ; 이슬람과 유대․기독교 (『이슬람과 기독교』 - 대장간)
  • 2007. Les successeurs de Marx ; 마르크스의 계승자
  • 2007. Penser globalement, agir localement ; 총체적으로 생각하고 국지적으로 행동하라
  • 2008. Ellul par lui-même, Entretiens avec Willem H, Vanderburg (Perspectives on our age, Jacques Ellul speaks on his life and work) ; 그 자체로서 엘륄, 빌렘 반더버그와 대화 (우리 시대에 대한 전망, 자끄 엘륄이 자신의 삶과 일에 대해 이야기하다)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대장간)
  • 2008. Israël, Chance de civilisation ; 이스라엘, 문명의 기회
  • 2013. Pour qui, pour quoi travaillons-nous ? ;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우리는 일하는가?

출처[편집]

  1. 한국에서는 자크 엘륄, 자끄 엘륄, 자크 엘룰등으로 음역되는데, 한국 자끄 엘륄 협회에서는 프랑스어의 발음에 보다 가까운 자끄 엘륄로 읽고 쓰도록 권하고 있다.
  2. 우선 “사회적 환경의 유혹”에 저항하는 것. 자끄 엘륄, 『정치적 착각』L’illusion politique, 1965, 3e édition 2004, La Table ronde, p.297. 이 표현은 ‘세계 자끄 엘륄 협회’(Association Internationale Jacques Ellul) 홈페이지에 실려 있다.
  3. “내가 행하고 경험하고 생각했던 모든 것은 자유와 관련되지 않는다면 이해되지 않는다. (자끄 엘륄,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 가리구 라그랑쥬와 대화』A temps et à contretemps, Entretiens avec Madeleine Garrigou-Lagrange, Paris, Le Centurion, 1981, p.162.)
  4. 두 번이나 엘륄은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 한다. 빠트릭 샤스뜨네(Patrick Chastenet), 『자끄 엘륄과 대화』 Entretiens avec Jacques Ellul, 1994, La Table Ronde, pp.115-116. 『그 자체로서 엘륄, 빌렘 반더버그와 대화』 Ellul par lui-même, Entretiens avec Willem H, Vanderburg (1979), 2008, La Table ronde, pp.42-44.
  5. 프레데릭 로뇽(Frédéric Rognon), 『자끄 엘륄, 대화의 사상』Jacques Ellul, une pensée en dialogue, Labor et Fides, 2007, p.211.
  6. 블랑(J.L. Blanc), 「자끄 엘륄과 변증법」 Jacques Ellul et la dialectique, La Revue Réformée, 1990, vol. 41, no 165, pp.35-45.
  7.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 가리구 라그랑쥬와 대화』(A temps et à contretemps, Entretiens avec Madeleine Garrigou-Lagrange, pp.78-89.) 에서 상세히 이야기 하듯이 엘륄은 결국 이 경험을 실패로 겪게 된다.
  8. 『자끄 엘륄과의 대화』 Entretiens avec Jacques Ellul, pp.120-123.
  9.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 가리구 그랑쥬와 대화』A temps et à contretemps, Entretiens avec Madeleine Garrigou-Lagrange, pp.105-123.
  10. Ibid., pp.128-139.
  11. 자끄 엘륄, 『인간을 위한 혁명』Changer de Révolution, L’inéluctable prolétariat, Seuil, 1982, p.7.
  12. Ibid., pp.8-9.
  13. 자끄 엘륄,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Idéoligie marxiste chrétienne, La Table Ronde, 2006, p.5.
  14. 자끄 엘륄과 베르나르 샤르보노, 『인격주의 선언을 위한 강령』 Directives pour un manifeste personnaliste, texte dactylographié édité par les groupes d'Esprit de la région du Sud-ouest; reproduit en 2003 dans les Cahiers Jacques-Ellul n°1, "Les années personnalistes", p.68.
  15. Ibid. pp.40-41.
  16. 『인간을 위한 혁명』Changer de Révolution, L’inéluctable prolétariat, p.55.
  17. Ibid., p.48.
  18. Ibid., p.93.
  19. Ibid., pp.52-53.
  20. 자끄 엘륄, 「장 끌로드 기이보와 대화」Entretien avec Jean-Claude Guillebaud, Le Nouvel Observateur, 1982년 7월 17일.
  21. 『기술 혹은 시대의 쟁점』La technique ou l'enjeu du siècle.
  22. 『그 자체로서 엘륄, 빌렘 반덴버그와 대화』Ellul par lui-même, Entretiens avec Willem H. Vanderburg, pp.56-62.
  23. Ibid., pp.57-58.
  24. 『인간을 위한 혁명』Changer de Révolution, L’inéluctable prolétariat, p.41.
  25. 오늘날, 미국 뉴욕의 월 스트리트(Wall Street)에서 공황을 일으키는 컴퓨터 연산방식은 엘륄이 “기술의 자율성”이라고 부른 것의 가장 좋은 예이다.
  26. Ibid., pp.41-42.
  27. 도미니끄 메다(Dominique Méda)의 『사라지고 있는 가치, 노동』 Le travail, une valeur en voie de disparition (Flammarion, Paris, 1995) 105페이지를 볼 것.
  28. 『정치적 착각』L'illusion politique, p.201.
  29. 자끄 엘륄과 베르나르 샤르보노, 『인격주의 선언을 위한 강령』Directives pour un manifeste personnaliste, 1935, in Cahiers Jacques-Ellul n°1, “Les années personnalistes”, 2003, pp.66-67.
  30. 이 점과 관련하여, 엘륄은 기술에 대한 다른 위대한 비판가인 『기술에 대한 신화』Le Mythe de la machine 의 저자 루이 멈포드 (1895-1990)와 구분된다.
  31. 장 삐에르 제제껠(Jean-Pierre Jézéquel), 「자끄 엘륄 혹은 기술의 궁지」Jacques Ellul ou l’impasse de la technique, Revue du MAUSS permanente, 6 décembre 2010.
  32. 마르크 슈바이어(Marc Schweyer), 「자끄 엘륄 혹은 속박하는 기술」Jacques Ellul ou la technique asservissante, communication au colloque de Gunsbach 1999.
  33. 파브리스 플리뽀(Fabrice Flipo), 「자끄 엘륄에 있어 기술과 뤽 페리에 있어 인간」La Technique chez Jacques Ellul et l’Homme chez Luc Ferry, Communication présentée au colloque international et interdisciplinaire «Jacques Ellul - Libre examen d’une pensée sans frontières», Faculté de Droit et des Sciences Sociales de Poitiers, les 21-22 octobre 2004, p.4-5, publié dans F. Flipo, La Technique chez Jacques Ellul et l’Homme chez Luc Ferry – La liberté est-elle quête de puissance ?, in P. Chastenet (dir.), Jacques Ellul - Libre examen d’une pensée sans frontières, L'Esprit du temps/diffusion PUF, 2005.
  34. 자끄 엘륄,『기술 혹은 시대의 쟁점』La technique ou l'enjeu du siècle, 1954; 3e édition 2008, Economica.
  35. 예를 들어, 에드가 모렝(Edgar Morin)의 『인간적인 복잡성』La Complexité humaine(éd. Flammarion, champs) pp.303-304 페이지를 볼 것.
  36. 자끄 엘륄, 『새로운 악령 들린 자들』 Les nouveaux possédés, 1973. 2e édition, Les Mille et une nuits, 2003
  37. 『새로운 악령 들린 자들』 Les Nouveaux Possédés, p.316.
  38. 알렉상드르 세르(Alexandre Serres), 『‘기술적인 질문’에 대한 강박관념』 L’obsession de la «question technique», Pour un autre regard sur les technologies numériques, mémoire de DEA, Université de Rennes 2, 1995.
  39. 철학자 미셀 쀠엑(Michel Puech)의 논평을 볼 것.
  40. 질베르 오뚜아(Gilbert Hottois)의 글 「기술과학 : 기술에 대한 두려움과 기술에 대한 찬양」La technoscience : entre technophobie et technophilie 을 볼 것.
  41.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 가리구 라그랑쥬와 대화』A temps et à contretemps, Entretien avec M. Garrigou-Lagrange, p.155.
  42. 자끄 엘륄, 『기술 체계』 Le système technicien, 1977. 2e édition, Le cherche-midi, 2004, pp.145-152.
  43. 크리스띠앙 델뽀르뜨, 「선전의 역사와 정치적 소통의 역사를 위하여」 Pour une histoire de la propagande et de la communication politique, Vingtième Siècle. Revue d'histoire, n° 80 2003/4, p.3-4.
  44. 엘비스 뽀띠에(Elwis Potier), 「선전과 정치 심리학」 Propagande et psychologie politique, Cultures & Conflits, 67, automne 2007.
  45. Mark Vollaeger는 다음 같이 묘사한다. “the foremost theorist of propaganda and its effects” in “Conrad's Darkness Revisited: Mediated Warfare and Modern(ist) Propaganda in Hear of Darkness and the Unlighted Coast”, Conrad in the Twenty-First Century: Contemporary Approaches and Perspectives, Routledge, p.72.
  46. Garth S. Jowett와 Victoria O'Donnell은 다음 같이 기술한다. “Both Ellul and Doob have contributed seminal ideas to the study of propaganda”, Propaganda and Persuasion, 2006. p.4.
  47. Ron Schleifer는 다음 같이 기술한다. “(...) the points he made are very thought-provoking, and are both original and relevant today”, Psychological Warfare in the Intifada: Israeli And Palestinian Media Politics And Military Strategies, 2007, p.10.
  48. 자끼 레땅(Jacquie L'Etang)과 Magda Pieczka는 다음 같이 지적한다. “The work of Ellul is significant and remains so”, Public Relations: Critical Debates and Contemporary Practice, 2006, p.30.
  49. Eric A. Seibert는 다음 같이 기술한다. “Literature dealing with the phenomena of propaganda outside of biblical studies has mushroomed in the second half of the twentieth century and is far too vast to be considered here. The classic text is Jacques Ellul, Propaganda (New York, Knopf, 1968)”, Subversive Scribes And the Solomonic Narrative: A Rereading of 1 Kings 1-11, 2006, p.6.
  50. 다니엘 메조뇌브(Danielle Maisonneuve), 『공적 관계, 페러데이 차단 판의 증후군』 Les Relations Publiques Le Syndrome de la Cage de Faraday, 2004, p.42.
  51. 미카엘 린(Michael Rinn), 『공공 소통의 수사학적 후천성 면역결핍증에 맞선 사회론』Les discours sociaux contre le sida rhétorique de la communication publique, 2001, p.51.
  52. 자끄 엘륄, 『자유의 윤리』(1권과 2권) Etique de la liberté (vol Ⅰ et Ⅱ), 1973, Labor & Fides.
  53. 자끄 엘륄,『혁명에서 반란까지』De la Révolution aux révoltes, 1972; réédition en 2008 aux éditions de La Table Ronde.
  54. 『정치적 착각』L’illusion politique.
  55. 『기술담론의 허세』Le bluff technologique (1988; 2e édition en 2008 chez Hachette)의 결론인 「인간을 변화시키기」Changer l'homme 를 특히 읽을 것.
  56. 자끄 엘륄, 「인격주의, 직접 혁명」Le personnalisme, révolution immédiate, Journal du Groupe de Bordeaux des Amis d'Esprit, 1935. Réédité dans les Cahiers Jacques-Ellul n°1, "Les années personnalistes", 2003.
  57. 자끄 엘륄, 『혁명의 해부』Autopsie de la révolution, 1969; 2e édition 2008, La Table Ronde.
  58. 『혁명에서 반란까지』De la Révolution aux révoltes.
  59. 『새로운 악령 들린 자들』 Les Nouveaux Possédés.
  60. Ibid.
  61. Ibid.
  62. 『자유의 윤리』(1권) Etique de la liberté (vol Ⅰ), p.36.
  63. 마르크스에 의해 자세히 설명되고 엘륄에 의해 다시 취해진 개념이지만 인문과학 한가운데서 논쟁의 대상이 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허위의식은 조작적인 개념인가?」La fausse conscience est-elle un concept opératoire? (Robert Paris, Annales. Économies, Sociétés, Civilisations, 1963, Volume 18, n°3, pp.554-560.) 를 읽을 것.
  64. 『자유의 윤리』(1권) Etique de la liberté (vol Ⅰ), pp.38-45.
  65. Ibid., pp.273-277.
  66. 『부르주아의 변신』Métamorphose du bourgeois, 1967; 2e édition, 1998, La table-ronde (pp.76-123 et 294-297)
  67. 『그 자체로서 엘륄, 빌렘 반더버그와 대화』 Ellul par lui-même, Entretiens avec Willem H, Vanderburg (1979), 2008, La Table ronde, p.148.
  68.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 가리구 라그랑쥬와 대화』A temps et à contretemps, Entretiens avec Madeleine Garrigou-Lagrange.
  69. 프레데릭 로뇽, 『자끄 엘륄, 대화의 사상』Jacques Ellul, Une pensée en dialogue, Labor & Fides, 2008.
  70. 자끄 엘륄, 『요나의 심판과 구원』 Le livre de Jonas, 1952.
  71. 자끄 엘륄, 『하나님의 정치와 인간의 정치』Politique de Dieu, politiques des hommes, 1966.
  72. 『무정부와 기독교』Anarchie et christianisme 는 특히 이 주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73. 자끄 엘륄, 『존재의 이유』 La raison d’être, Méditation sur l'Ecclésiaste, 1987. 3e édition La Table Ronde, 2007.
  74. Ibid., p.323.
  75. 빠트릭 샤스뜨네, 『자끄 엘륄과 대화』, Entretiens avec Jacques Ellul, Paris : La Table Ronde, 1994, pp. 86-88.
  76. 자끄 엘륄, 『의심을 거친 신앙』, La foi au prix du doute, 1980. 2e édition 2006, La Table Ronde.
  77. 자끄 엘륄, 『뒤틀려진 기독교』La subversion du christianisme, 1984. 2e édition 2001, La Table Ronde, p.9.
  78. ibid., p.21
  79. 『잊혀진 소망』L'Espérance oubliée. Paris : Gallimard. 2e édition Paris : La Table Ronde, 2004. pp.77-78
  80. ibid.
  81. ibid., pp.250-265.
  82. “엘륄은 자신의 저서 중 어떤 것들이 아주 탁월하다고 여기던 드보르에게 함께 연구하자고 제안했으나, 그 대답은 ‘아니오’였다. 신앙을 갖는 일이 어떤 관계를 맺는데 방해가 되었다는 것이다.” 『기술 체계』Le Système technicien (Le Cherche-Midi, 2004, p.7)에서 장 뤽 뽀르께(Jean-Luc Porquet)의 서문 「엘륄은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Ellul l'avait bien dit
  83. 자끄 엘륄,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L'idéologie marxiste chrétienne, 1979; 2e édition 2006 La Table Ronde, p. 206.
  84. 자끄 엘륄, 『참 모습 그대로의 인간, 디디에 노르동과의 서신 교환』L'homme à lui-même, correspondance avec Didier Nordon, 1992, p. 148.
  85. 자끄 엘륄, 『무정부와 기독교』Anarchie et christianisme, 1988; 3e édition, La Table Ronde, 2008.
  86. 이 모든 글은 엘륄의 유작인 『이스라엘, 문명의 기회』Israël, chance de civilisation 에 모아져 있는데, 이 책은 이브 샤리에(Yves Chevalier)의 서문과 더불어 프러미에르 빠르띠(Première Partie) 출판사에서 2008년 간행된다.
  87. 그 당시 로쉐(Rocher) 출판사에서 간행된 이 소책자는 2007년 라 따블르 롱드(La Table Ronde) 출판사에 펴낸『도전과 새로움』Le défi et le nouveau 이라는 엘륄의 신학적인 저서 모음집 안에 다시 간행된다.
  88. 「프랑스에서 이슬람의 정착에 대한 반대」Non à l’intronisation de l’Islam en France, journal Réforme, 15 juillet 1989. 1994년 출간된 그의 소책자 『이슬람과 기독교』Islam et Judéo-christianisme 를 볼 것. 이 소책자의 부록에는 밧 예올(Bat Ye'or)의 저서 『딤미, 이슬람 치하에서 유대인과 그리스도인』The Dhimmis : Jews and Christians under Islam 을 위해 1983년 엘륄이 쓴 영어판으로 된 서문이 있다.
  89. 프레데릭 로뇽(Frédéric Rognon), 『자끄 엘륄, 대화의 사상』Jacques Ellul, une pensée en dialogue, Labor et Fides, 2007, pp.154-158.
  90. 자끄 엘륄, 『잊혀진 소망』L'espérance oubliée, Paris, La Table ronde, 2004, p.294-295.
  91. 나치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을 가리키는 표현
  92. 앞의 책에서 프레데릭 로뇽에 의한 인용.
  93. 『자끄 엘륄, 이슬람에 대항하는 그리스도인?』Jacques Ellul : un chrétien contre l'islam ? (Université March Bloch, 2005, cité par Fr. Rognon, op. cit. Jean Alcader)에서 무슬림 출신 개신교 목사의 「이슬람의 진정한 모습」Le vrai visage de l'islam, 나하드 마무드 넷왈리(Nahed Mahmoud Netwali)의 『이슬람의 폭력 혹은 코란이 ‘나의 투쟁’보다 더 나쁘다고 주장하는 와파 술탄』La violence de l'islam ou Wafa Sultan qui affirme que le Coran est pire que Mein Kampf
  94. 보르도에는 정치대학의 강의실 및 거리와 중학교에 엘륄의 이름이 붙어 있다. 엘륄이 거주했던 보르도 근처 뻬삭(Pessac)에는 시립도서관에 엘륄의 이름이 붙어 있다.
  95. 「자끄 엘륄 혹은 기술의 막다른 골목」Jacques Ellul ou l’impasse de la technique, 6 décembre 2010 http://www.journaldumauss.net/spip.php?article743 [archive]
  96. 온라인으로 접근할 수 있는 텍스트 : http://agora.qc.ca/textes/ellul.html [archive]
  97. http://www.jacques-ellul.org
  98. www.jacques-ellul-marseille-aix.org
  99. http://www.jacques-ellul.com
  100. http://technologos.fr
  101. 특히 그의 저서 『테크노폴리』Technopoly 에서.
  102. 『기술담론의 허세』 Le Bluff technologique, 1988. 2e é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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