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백과:알찬 글 후보/나카모리 아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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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모리 아키나

기준

  1. 믿을 수 있는 높은 품질
    • 전문적인 기준이 적용된 잘 짜여진 글인가?
    • 주요한 사실과 세부사항, 문맥이 포함된 포괄적인 글인가?
    •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 기반한 확인이 이루어진 인용을 통한 신뢰할 수 있는 글인가?
    • 편향된 시각이 없는 중립적인 글인가?
    • 주요한 내용의 변함이 없이 안정된 글인가?
  2. 세부적인 양식 기준: 편집 지침과 다음 조건에 적합하는가?
    • 개요 문단에 전체 문서의 내용이 간단히 잘 요약되어 있는가?
    • 목차의 구성이 알찬가?
    • 인용이 일관된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가?
  3. 멀티미디어: 저작권에 대한 설명이 충족하는 미디어 사용 정책에 일치하는 멀티미디어 자료가 있는가?
  4. 길이: 불필요한 세부사항 없이 주요 주제에 중점을 두고 있는가?

의견

찬성 [1] shyoon1님의 기여로 문서가 많이 발전했습니다. 수고하셧습니다.--분당선M (토론) 2014년 5월 28일 (수) 06:04 (KST)[답변]
찬성 --Namoroka (토론) 2014년 5월 31일 (토) 19:42 (KST)[답변]
토론이 열린지 한달이 넘었네요. 참고로 정규 음반 문서와 싱글 문서는 모두 완성되었습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6월 30일 (월) 18:15 (KST)[답변]

조금 늦게 보았습니다. 몇 가지 고쳐주셨으면 합니다.

개요
  • "(...)1980년대에 가장 유명했던 일본 여가수 중 하나로 오리콘 차트에서 15 싱글곡 연속 1위를 하기도 하였다." - 앞뒤 순서를 바꿔 "오리콘 차트에서 15 싱글곡 연속 1위를 하는 등, 1980년대에 가장 유명했던 일본 여가수 중 하나다."로 바꾸면 더 자연스러울 듯 합니다.
  • 1994년에는 선배 가수들의 곡을 자신만의 색깔로 커버한 《가희》(歌姬)를 출시하였고 매년마다 콘서트 투어를 열어 음악 활동을 이어나갔다. - 그냥 '매년'만 남겨주세요. 중복
생애- "데뷔 이전: 1965년 ~ 1981년"문단
  • 이러한 가정형편 때문에 일부 대한민국 언론에서는 그녀의 일가가 재일동포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에 대해 뚜렷한 증거는 없으며 본인 또한 직접적인 언급을 한 적은 없다.[3][10][11] - 출처를 아무리 뒤져봐도 '가정형편'을 이유로 재일 동포설을 주장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증거가 없다'는 내용도요. 어느 정도 내용을 짜맞출 수는 있다고 봅니다만 이건 아예 창작입니다. 이전의 AKB48문서의 좋은 글 토론 때도 이런 점 때문에 탈락하였습니다.
  • 6살 때 소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에는 - "초등학교"죠.
  • 2년 후인 1980년에는 훗날 자신의 가장 큰 라이벌이 되는 신인가수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青い珊瑚礁)를 부를 때는 심사위원이 노래는 잘 부르는데 얼굴이 아이 같아서 차라리 동요를 부른는게 낫다며 혹평을 했는데 - 오타, 띄어쓰기 수정
  • 이후 11개의 연예기획사와 레코드 레이블 사무소가 플랜카드를 올려 나카모리를 스카우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결전대회 최우수상까지 수상하였다. - 우승한 것이 먼저인가요, 스카웃 의사를 밝힌 것이 먼저인가요? 문장 호응이 약간 어색한데 이 부분은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데뷔 이후와 아이돌 노선: 1982년 ~ 1984년" 문단
  • 이 문단에서 "엣치(エッチ)"의 의미가 아키나가 부여한 의미로 새롭게 쓰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엣치'의 어감이 미묘하니만큼 이걸 단순히 '야한'이라 번역하지 말고 '엣치' 그대로 쓰고 , 주석을 다는 것이 어떨까요?
  • 또한 이 캐치프레이즈를 소개할 때, 여러 사람들이 본인이 야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거나 이상한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고 밝혔으며,/// 당시 소속사인 켄온에선 “야한”(エッチ)이란 뜻이 음란하다는 의미가 아닌, 곧 어른으로 발돋움할 성숙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이러한 캐치프레이즈를 붙였다고 설명했다. - 빗금 부분에서 문장 한 번 끊어 주세요.
  • (...)〈소녀A〉는 과격하고 어른스러운 가사로 기존 아이돌들과의 이미지 차별을 꾀하였다._- "차별화"입니다.
  • 이때에 이르러 그녀는 자신 특유의 창법인 ‘아키나 비브라토’를 개발, 곡의 대부분을 중저음으로 부르다 마지막 부분에서 압도적인 롱톤과 고음으로 시원시원한 마무리를 줌으로서 자신만의 노래 스타일을 확실하게 개척하기에 이른다 - 주술 관계상 '주는'정도면 적당할 듯 합니다.
"복귀와 재기: 1990년 ~ 1994년" 문단
  • 〈Dear Friend〉 발매 직전, 나카모리는 10년 가까이 소속되어 있는 켄온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이듬해인 1991년에 새로 개인사무소인 Collection(콜렉션)을 세웠으나/// 곧 소속사의 임원들과의 트러블 때문에 다시 나오고 1992년 자신의 개인 소속사인 Continue(컨티뉴)를 다시 세웠다 - 빗금친 부분에서 한 번 끊어주세요--Reiro (토론) 2014년 7월 7일 (월) 03:14 (KST)[답변]
재일동포 부분은 아예 삭제하죠. 최소한 일본에서만큼은 아무리 제가 찾아봐도 재일동포다라는 말은 없습니다. 재일동포다라고 주장하는 곳은 한국 언론 뿐이거든요. 그리고 소학교는 소학교대로 내버려두죠. 한국식으로 초등학교라 부르는 것도 이상합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7월 7일 (월) 03:33 (KST)[답변]
아닙니다, 일단 문제될 만한 부분은 지웠습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7월 7일 (월) 03:34 (KST)[답변]
다 완료했으니 봐주십시오. 엣치에 관련된 주석처리는 나카모리 아키나가 얘기한게 아니고 소속사에서 밝힌거라 개인이 밝힌 것이랑도 약간 거리가 있어서 어떻게 주석처리를 해야할지 난감하군요. -- S.H.Yoon · 기여 · F.A. 2014년 7월 7일 (월) 03:40 (KST)[답변]
그 가장 먼저 나오는 '조금 엣치한 (...)"부분에 주석을 달고, "일본어로 변태를 뜻하는 '헨타이'(Hentai)의 앞글자 '에이치'를 일본식으로 읽은 것. 주로 외설스러운 것을 의미한다."로 주석을 붙이면 되겠습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도 '엣치'란 단어를 설명한 항목이 있으니 참고하세요.
Elementry school을 '엘리멘트리 스쿨'이라 읽지 않듯이 일본의 소학교는 한국의 초등학교에 대응되는 단어이니, 바꿔서 읽어야 합니다. 뭐 한국에서 예전 '소학교'내지 '국민학교'를 졸업한 년도라면야 모를까. (역사적으로 공인된 단어니까) 그리고 수원화교소학교처럼 공식 명칭이 아닌 다음에야 저런 단어는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언론에서도 '일본 초등학교'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 추세입니다.[2]--Reiro (토론) 2014년 7월 7일 (월) 04:49 (KST)[답변]
그게 좀 이상한게 한국에서만 초등학교로 부르고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은 다 소학교입니다. 그리고 설령 소학교로 내버려두더라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있을까요? 그 경우라면 북한에서 불리는 인민학교, 소학교도 한국의 실정에 맞게 다 초등학교로 고치자는 어폐가 생깁니다. 그리고 나카모리 아키나는 1965년생이니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를 다녔던 세대도 아닙니다. 아무튼 주석에 대한 단어 설명은 추가해보겠습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7월 7일 (월) 04:53 (KST)[답변]
  • 음반 목록 중 정규 음반만 남겨주세요. 지나치게 큰 목록은 오히려 전달하려는 바를 해칩니다. 다른 좋은 글, 알찬 글 가수 문서들도 음반 목록에는 정규만 남겨놓고 있습니다. 싱글 자체가 앨범의 하위 개념으로, 음반 목록 문서에서 충분히 확인 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 영향 문단 중 나카모리 아키나가 영향을 받은 내용은 없나요? 지금 영향이라는 문단은 성과 문단과 거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실제로 이런 문제로 영어판 가수 문서에서는 영향이라는 문단에서는 거의 그 가수가 영향을 받은 것에 대해 서술하고, 영향을 준 것에 대해서는 성과 문단에서 서술하죠. 영향을 준 것도 어찌보면 성과의 일부라고 볼수 있으니. -- J13 (토론) 2014년 7월 7일 (월) 20:34 (KST)[답변]
싱글을 음반 목록에서 빼야 할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음반보다는 싱글곡으로 잘 알려져있고 더 활동을 많이한지라 그걸 무턱대고 디스코그래피에서 빼긴 그렇네요. 싱글곡으로도 더 1위를 많이 했기 때문에 섣불리 뺄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침화된 것도 아닌데요. 그리고 영향을 받은 경우라면 가창력 쪽에 이미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일단 야마구치 모모에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편이기 했으니 그걸 살려보겠습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7월 8일 (화) 00:39 (KST)[답변]
다른 가수 문서들도 음반 목록에는 정규만 남겨놓고 있습니다. 정규가 그 가수를 대표하는 음반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해당 가수 문서에는 정규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음반 목록 본문으로 빼놓는 것이죠. -- J13 (토론) 2014년 7월 8일 (화) 17:39 (KST)[답변]
싱글 중에서는 정규 음반에 꼭 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상당합니다. 마찬가지로 어떠한 가수의 디스코그래피를 쓰라 또는 나열하라 한다면 결국엔 싱글도 정규 음반과 함께 디스코그래피의 양대 축 아니겠습니까. 제가 딱히 베스트 음반이나 리메이크 음반 같은 것도 추가한 것도 아닌데요. 더군다나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건 대부분 싱글로 수상한 경우인지라 음반 목록에 싱글들이 나열되어 있다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봅니다. 말했듯이 지침으로 명시되어 있는 경우도 아니라서 다른 알찬 글, 좋은 글 가수 문서도 마찬가지로 싱글들을 음반 목록 단락에다가 넣는다 해서 특별히 더 번잡해질 이유도 없습니다. 어쨌든 영향과 평가는 말하신대로 수정을 해서 좀 더 추가했습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7월 8일 (화) 19:08 (KST)[답변]
음반 목록이라는 본문이 있는 이상 음악가 문서에서는 해당 음악가의 주요 작품만 남겨 놔야 한다고 봅니다. 정규 음반이 음악가의 주요 작품이라는 건 이견이 없는 문제입니다. 경력이 오래된 음악가 같은 경우 싱글 100개가 넘는 경우가 다반사로, 싱글을 포함하기 시작하면 과도한 목록성으로 필요 이상의 정보를 전달합니다. 또 음악가에 따라 싱글보다 컴필레이션이 더 비중있게 다뤄질 수도 있는데, "싱글은 되는데 왜 컴필레이션은 안 되냐"라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또 싱글 중에서도 프로모션 싱글, 피처링 싱글, 자선 싱글 등등 음반 목록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제대로 정리하기도 힘듭니다. 영어판에서는 음반 목록에 정규를 제외한 컴필레이션, EP, 싱글 등을 포함할 수 없다고 정해 놨습니다(참고). -- J13 (토론) 2014년 7월 8일 (화) 19:36 (KST)[답변]
어떻게 싱글이 주요 작품이 아닌가요? 저건 정규 싱글입니다. 그리고 지금 말하시는 걸 보면 제가 보기엔 다른 문서들이 싱글을 포함시키지 않기 때문에 싱글을 포함시켜선 안된다, 즉 관행의 이유때문이라고 밖에 보여지질 않습니다. 그랬다면 진즉 좋은 글 토론에서 걸러졌겠죠. 저 역시 다른 프로모션 싱글, 피쳐링 싱글 등 여러 싱글이라면 당연히 실으려 하지도 않지만 지금 제가 걸어놓은 48개의 싱글은 사정이 다릅니다. 그리고 언제나 얘기하지만 영어판은 영어판이고, 한국어판은 한국어판일뿐입니다. 그쪽 프로젝트야 사정이 다르고 여긴 지침도 세워놓지 않은 마당에 이걸 빼라, 저걸 빼라도 맞지 않거니와 불필요한 부분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7월 8일 (화) 20:04 (KST)[답변]
일단 지침이 없으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군요. 물론 shyoon1님 말대로 싱글이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게 '정규 싱글'인 경우도요. 여기서 목록을 다 담아도 그다지 알찬 글 선정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라 봅니다. 다만 지침 거르고 그대로 볼 때, 앨범 수가 너무 많이 나열되어 조금 번잡한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아키나를 잘 모르는 저로서는 어느 것이 대표적인 앨범인지 한눈에 들어오지 않고요. 다시 말하자면, 목록이 할 일을 이 문서가 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잭슨처럼 앨범이 많은 경우 목록으로 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상을 받은 싱글이야 문서 내용에도 적혀 있으니 문제 없으리라 보고, 정 강조해야 한다면 아래에 '싱글' 소문단 만들어서 상 받은 것만 남겨두는 것도 방법이라 봅니다.--Reiro (토론) 2014년 7월 11일 (금) 02:22 (KST)[답변]
좋습니다, 데뷔곡이랑 상을 받은 주요한 싱글 위주로만 남겨두겠습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7월 11일 (금) 03:04 (KST)[답변]
완료 -- S.H.Yoon · 기여 · F.A. 2014년 7월 11일 (금) 03:37 (KST)[답변]
토론이 열린지 한달 반이 다되었네요. 많은 의견 바랍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7월 15일 (화) 10:10 (KST)[답변]
찬성 크게 흠 잡을 곳은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경우 당시 일본 문화를 허용하지 않았던 터라 직접적인 영향은 끼친 적이 없었지만..."라는 부분에서 "당시"가 어느 때인지를 밝혀주시고, 이에 대한 출처가 필요해 보입니다. 출처가 뒤에 있다면 한 번 더 적어주는 것도 좋구요.--NuvieK 2014년 7월 17일 (목) 03:02 (KST)[답변]
뒤에 추가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1980년대 후반 음악계"라고 설명했으니 당시에 대해선 이미 설명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7월 17일 (목) 07:16 (KST)[답변]
찬성 괜찮은 것 같습니다. -- Germantower (토론) 2014년 7월 18일 (금) 05:41 (KST)[답변]
찬성하며, 그동안의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콩가루 (토론) 2014년 7월 18일 (금) 15:39 (KST)[답변]
노력까진 아닙니다만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쑥스럽네요. 과찬 감사드립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7월 19일 (토) 14:21 (KST)[답변]
의견 연인이었던 곤도 마사히코와 처음 연애 사실이 보도되었을 당시, 일본 언론에서 큰 주목을 받았을텐데 해당 부분이 문서에 없고 불화 부분부터 도중에 등장하네요. 해당 부분이 보완되면 좋겠습니다. --Tsunami 2014년 7월 22일 (화) 10:53 (KST)[답변]
의견 수상 목록 문서는 별도 문서로 다룰 필요는 굳이 없지 않을까요? 문서에 합쳐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데, 문서가 길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인가요? --Tsunami 2014년 7월 22일 (화) 11:30 (KST)[답변]
의견 사소한 정보입니다만, 나카모리 아리나는 의상, 안무 이외에도 메이크 또한 본인이 관여하고 의견을 피력했다고 나오네요. 일본어판 주석의 23번입니다. --Tsunami 2014년 7월 22일 (화) 11:37 (KST)[답변]
그 연애가 폭로집같은 검증되지 않은 것을 따르느냐 아니면 나타나는 기록에 따르느냐에 따라 갈리는데요 일단 나타나는 것은 84년 말 영화를 같이 찍으면서 가까워졌다인데 이 부분을 추가해보겠습니다. 공식적으로 열애가 났다에 대해서는 그 시작보다는 자살미수로 끝나는 불화에 쏠린 만큼, 언제부터 교제를 시작했다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관심없어 하는건지 정확한 날짜를 찾기 힘드네요. 수상 목록은 아무래도 받은 상이 좀 있다보니 나누는게 낫다 싶었고 (일본어판도 그리 하더군요) 마지막으로 해당 부분은 그 방송분을 다시 인용해 추가했습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7월 22일 (화) 11:57 (KST)[답변]
완료했습니다. 말했듯이 정확한 날짜는 저도 알수 없었고 다만 영화를 찍으면서 가까워져 열애설이 났고 이에 분노한 곤도 마사히코의 팬들이 무대에 올라오는 나카모리 아키나에게 야유를 보냈다, 뭐 이정도로 썼습니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7월 22일 (화) 12:18 (KST)[답변]
찬성 크게 고칠 부분이 없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Tsunami 2014년 7월 22일 (화) 17:08 (KST)[답변]

알찬 글로 선정합니다. --천리주단기 (토론) 2014년 7월 22일 (화) 19:28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