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투스 영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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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 영묘의 입구.

아우구스투스 영묘기원전 28년아우구스투스 일가의 무덤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로마마르스 광장에 지어진 건축물이다. 현재는 오랜 세월동안의 풍화와 부주의함으로 인해 황폐화되었고, 관광객들에게는 공개되어있지 않다. 하지만, 그 터는 여전히 인상적이며, 마르스 광장의 북쪽 지역의 랜드마크이다.

아우구스투스 영묘는 아우구스투스가 기원전 31년악티움 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후 처음으로 지은 건물들중 하나이다. 건물은 원형으로 지어졌으며, 영묘의 바깥쪽에는 노송나무들을 심었다. 지붕의 한가운데에는 아우구스투스의 동상이 있었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오벨리스크가 쌍으로 입구에 세워졌다. 지금 이 오벨리스크들은 에스퀼리노 언덕퀴리날레 언덕에 각각 위치해 있다. 영묘가 완공되었을 당시 그 규모는 주변의 땅을 포함하여 지름 90미터, 높이 42미터였다.

고대 로마에서 영묘의 위치.

아우구스투스 영묘에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의 여러 인물들이 묻혀있다. 마르켈루스(아우구스투스의 사위, 영묘에 제일 먼저 묻혔다.), 아우구스투스, 리비아(아우구스투스의 부인), 아그리파, 드루수스, 게르마니쿠스, 대 아그리피나(게르마니쿠스의 부인),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브리타니쿠스(클라우디우스의 아들), 네르바등이 묻혀있다. 네르바 이후로는 더 이상 묻힌 사람이 없다.

410년, 알라리크가 이끄는 고트족에 의해 로마가 대거 약탈을 당했을 때, 납골 항아리등이 약탈당하기는 했으나 건물의 구조에는 손상이 가지 않았다. 중세에 접어들어 콜론나 가에 의해 무덤 부분에 성이 건설되어, 카스텔 산탄젤로처럼 요새화되었다. 1167년에 벌어진 전쟁에서 큰 패배를 당하여 콜론나 가문은 추방당하였고, 성은 해체되었다. 이로 인해 현재까지 폐허로 남아있게 된다.

19세기에 접어들어, 폐허는 투우장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에는 공연장으로 사용되었다. 1930년대에야 인근의 평화의 제단 복원 공사가 진행되면서, 비로소 이 곳이 고고학적으로 랜드마크로 부각되었다. 아우구스투스 영묘의 복원공사는 베니토 무솔리니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로마 복원 사업의 일환이었다. 이 사업은 "영광스러운 시절"이었던 로마 제국이탈리아 파시즘과 연관시키기 위해 추진되었었다. 무솔리니는 자신의 통치하에서 이탈리아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면서, 아우구스투스가 이룬 업적들과 비교하곤 했다.

참고도서[편집]

  • Dal Maso, Leonardo B., Rome of the Caesars. Bonechi: Florence, 1974.
  • Lanciani, Rodolpho.Pagan and Christian Rome, 1892. On-line
  • Young, Norwood., P. Barrera (rev.). Rome and Its Story. J.M. Dent & Sons Ltd: London, 1951 (original edition, 1901).

함께 보기[편집]

좌표: 북위 41° 54′ 22″ 동경 12° 28′ 35″ / 북위 41.90611° 동경 12.47639° / 41.90611; 12.47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