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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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대 로마의 장군에 관한 것입니다. 다른 뜻에 대해서는 아그리파 (동음이의) 글을 참조하십시오.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기원전 63년 ~ 기원전 12년)는 고대 로마의 군인이자 정치가이다. 아우구스투스의 절친한 친구이자 사위였으며, 정치적 동반자였다. 악티움 해전등 여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목차

[편집] 어린 시절

아그리파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옥타비아누스(훗날의 아우구스투스)와 비슷한 연배였고, 이 둘은 절친한 친구가 된다. 아그리파의 형은 내전 시기에 소 카토의 휘하에서 카이사르에 맞서 싸웠으나, 아그리파는 히스파니아에서 벌어진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와의 문다 전투에 참가하였다.[1] 이후 카이사르는 옥타비아누스와 아그리파를 일리리아에 있는 아폴로니아에서 공부하게 하였다.[2] 넉달 뒤에 카이사르의 암살 소식이 전해지고, 아그리파는 옥타비아누스에게 마케도니아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군을 이끌고 로마로 진격하라 조언하지만 옥타비아누스는 소수의 수행원들과 함께 로마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편집] 권력을 향하여

옥타비아누스와 그 일행은 로마로 돌아온 뒤에야 군단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그리파는 옥타비아누스를 위해 캄파니아에서 군대를 소집하였다.[3] 옥타비아누스가 자신만의 군대를 가지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레피두스와 함께 기원전 43년 성립한 제2차 삼두정치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옥타비아누스와 그의 동료였던 퀸투스 페디우스는 카이사르를 암살한 이들을 기소하기로 한다. 아그리파는 카시우스와의 소송을 맡았다.[4]

기원전 42년, 아그리파는 필리피 전투에 참전했다. 로마로 귀환한 뒤에는 안토니우스의 아내인 풀비아 안토니아와, 동생인 루키우스 안토니우스와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다. 기원전 41년에 시작한 전쟁은 기원전 40년페루자의 함락으로 끝이 난다. 이후 시칠리아섬을 점거한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와의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옥타비아누스는 아그리파에게 이탈리아 반도의 방비를 맡긴다. 아그리파는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의 공격을 잘 막아내었고, 폼페이우스는 이탈리아 본토 공격을 포기한다.[5] 기원전 40년 8월, 안토니우스는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와 연합하여 이탈리아를 공격하려 하였다. 아그리파는 시폰툼(Sipontum)을 탈환하여 안토니우스가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끌고 간다.[6] 아그리파는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사이에 체결된 평화협정에서 중개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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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주석

  1. Reinhold, pp. 13–14.
  2. (1911)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425 “He was the same age as Octavian(as the emperor was called), and was studying with him at Apollonia when news of Julius Ceaser's assassination arrived.”
  3. 다마스쿠스의 니콜라우스, Life of Augustus 31. It has been speculated that Agrippa was among the negotiators who won over Antony's Macedonian legions to Octavian, but there is no direct evidence for this; see Reinhold, p. 16.
  4. Velleius Paterculus 2.69.5; Plutarch, Life of Brutus 27.4.
  5. Dio 48.20; Reinhold, p. 22.
  6. Dio 48.28; Reinhold, p.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