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투스 업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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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 업적록》의 일부.

신격 아우구스투스 업적록》(라틴어: Res Gestae Divi Augusti)은 로마 제국의 첫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의 업적에 대해서 쓴 글이다.

구성[편집]

《아우구스투스 업적록》은 서문과 사후에 추가된 주석, 본문, 총 35문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게 네부분으로 나뉜다.[1]

정치 경력[편집]

업적록의 첫 부분(2 ~ 14번째 문단)은 아우구스투스의 정치적인 업적에 대해 다룬다. 아우구스투스가 맡았던 공직들과 수여받은 여러 영예들을 서술하고 있다.[2]

공공 사업[편집]

두 번째 부분(15 ~ 24번째 문단)은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시민들에게 돈, 토지, 곡물들을 기부한 내역을 담고 있다. 또한 가도 보수 등의 공공사업, 검투사 시합들을 개최한 내용도 함께 기록되어있다.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재산을 털어 이러한 사업들을 벌인 것을 계속하여 서술하고 있다.[3]

군사 행동[편집]

세 번째 부분(25 ~ 33번째 문단)에서는 아우구스투스의 통치기간동안 벌였던 일련의 군사행동들과, 맺은 동맹들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4]

정치적인 위치[편집]

마지막 부분(34, 35번째 문단)에서는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의 정부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5]

주석[편집]

제3자에 의해 쓰인 주석은 《아우구스투스 업적록》의 모든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아우구스투스가 건설하고 보수한 모든 건물들의 목록과, 6억 데나리우스의 재산을 공공사업에 쏟아부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역사[편집]

앙카라에서 〈앙키라 비문〉(Monumentum Ancyranum)이 발견된 장소.

본문의 내용에 따르면, 《아우구스투스 업적록》은 아우구스투스가 죽기 직전인 서기 14년경에 쓰였다. 업적록의 원문은 청동판으로 기록되어 아우구스투스 영묘 앞에 놓였으나 현재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많은 사본들이 로마 제국 전역에 배포되었기 때문에, 현대에도 여러 사본들이 남겨져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앙키라(현재 터키앙카라)에서 발견된 〈앙키라 비문〉, 피시디아 지방의 아폴로니아와 안티오키아(오늘날의 얄바치)에서 발견된 비문 등이 있다.

《아우구스투스 업적록》은 아우구스투스가 직접 썼음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정치적인 선전 목적 때문에 사료로써의 가치는 떨어진다. 이러한 점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이후부터 악티움 해전까지의 서술에서 잘 나타나 있다. 브루투스카시우스의 경우 이름은 언급되어 있지 않고, "내 아버지를 죽인 자들"이라고만 기술되어 있으며,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섹스투스 폼페이우스의 경우에도 실명이 언급되어있지 않았다. 안토니우스의 경우엔 "나와 싸운 상대",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의 경우엔 "해적"이라고만 언급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당시 로마의 정치체제에서 아우구스투스는 최고의 권력을 손에 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이 공화정의 일원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자신의 권위가 다른 이들보다 높을지라도, 권력은 손에 쥐고 있지 않다고 서술하고 있다.[5] 이러한 서술은, 당시에 아직 남아있었던 공화주의자들을 우려하여, 자신이 제 1인자라는 것 이외에는 강조하지 않았다.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다른 방법으로 부분을 나누기도 한다. John Scheid의 Res Gestae Divi Augusti: hauts faits du divin Auguste.의 "Introduction" 참조, XXXVI-XLIII.
  2. 수에토니우스 (박광순 옮김). 〈신군 아우구스투스의 업적록〉, 《풍속으로 본 12인의 로마 황제》. 풀빛미디어, 201-205쪽
  3. 수에토니우스 (박광순 옮김). 〈신군 아우구스투스의 업적록〉, 《풍속으로 본 12인의 로마 황제》. 풀빛미디어, 206-210쪽
  4. 수에토니우스 (박광순 옮김). 〈신군 아우구스투스의 업적록〉, 《풍속으로 본 12인의 로마 황제》. 풀빛미디어, 210-213쪽
  5. 수에토니우스 (박광순 옮김). 〈신군 아우구스투스의 업적록〉, 《풍속으로 본 12인의 로마 황제》. 풀빛미디어, 214쪽 “나는 위엄과 신망상으로는 어느 누구보다 우위에 서 있었지만, 권력상으로는 어떤 정무관이든 나의 동료인 다른 사람을 능가하지 못했다.”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