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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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욘
Angkor Head1.jpg
문명 크메르 제국
건립 연대 12세기 후반
건립자 자야바르만 7세
발굴자 앙리 무오(프랑스의 고고학자)
현 소재지 씨엠립 앙코르 톰

바이욘(Bayon)은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군 중의 하나로, 힌두교, 불교 혼합의 사원유적이다. 앙코르 톰의 중앙 부근에 자리잡고 있다. 바이욘의 호칭은 여러 가지로 불리고 있지만, 크메르 발음으로는 바욘 쪽이 더 가깝다. 바는 '아름답다'는 의미이고, 욘은 '탑'을 의미한다.

구조[편집]

바이욘의 특징 중의 하나는 중앙 사당을 시작으로, 탑의 4면에 조각되고 있는 인면상(바이욘의 사방상)이다. 인면상은 관세음보살의 형상을 모방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그러나 전사를 나타내었다는 설, 장식된 갑옷을 입고 있어, 자야바르만 7세를 신격화하여 우상화으로 표현하였다는 설도 존재한다.

뒷편에서 본 모습

다른 앙코르 유적군에는 보기 드문, 의사 아치 구조를 많이 이용하여 건축의 구조물을 이루었다. 건축 전체는 대체로 삼층의 구조로 되어 있고, 높이는 43m에 이른다. 중앙의 사당을 중심으로, 1층에는 이중의 긴 복도가 배치된 구조로 되어 있다.

50개에 가까운 탑이 있고, 117개의 인명상이 남아있다. 인명상의 높이는 1.7~2.2m 정도로 개별적으로는 불규칙하다.

제1층[편집]

제1층에는 동서남북 전 방향에 문이 있다. 그 중에서 동문 근처에는 양쪽에 연못이 있는 테라스가 있다. 제1회랑에도 돌부조가 남아 있다. 앙코르 왓에도 볼 수 있는 우유의 바다에 대한 부조가 있지만 보존 상태는 좋지 못하다. 제2회랑은 약 160m 정도이고, 정면은 동쪽을 향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부조는 다른 앙코르 유적과는 다른 특징적인 면이 있다. 제2회랑에는 참파(champa)와의 전쟁 모습이나 바이욘 건설 당시의 시장의 모습, 수의 모습 등이 부조에 새겨져 있고, 서민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자야바르만 7세의 모습

제2층[편집]

16개의 탑이 있고, 모든 탑에 관음보살로 추측되는 사방상이 조각되어 있다. 제2층의 장랑에는 힌두교의 색채가 강한 부조가 디자인되어 있다.

제3층[편집]

제3층은 테라스로 역시 모든 탑에 관음보살로 추측되는 사방상이 조각되어 있다. 제3층의 중앙에는 과거에 힌두교 유적이 주조되어 있었다고 하지만, 후대에 없어지고 지금은 소승 불교은 흔적이 나타나는 불상이 놓여 있다.

역사[편집]

바이욘은 앙코르에서 세운 마지막 국사이자, 대승불교의 사원으로 부처에게 봉헌된 유일한 사원이다. 이곳 바이욘은 앙코르 왕조의 중흥을 주창한 자야바르만 7세참파에 대한 전승을 기념하여 12세기 말부터 조성에 착수했다고 추측된다. 축조된 돌이나 여러 흔적에서 여러 왕 대에 걸쳐 조금씩 건설되었다고 추측된다. 당시는 대승불교 사원이었지만, 후에 앙코르 왕조에 힌두교가 유입되면서 사원 전체가 힌두교화 되었다. 이것은 건축물 부분에 불상을 제거한 흔적이나 힌두교의 신상 등을 통해 추측할 수 있다. 1933년 프랑스 극동학회의 조사에 의해 중앙 사원에서 부처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자야바르만 7세는 거대한 건축군들을 세웠는데, 그 중심이 되는 것이 바이욘이었고, 성벽과 나가가 있는 앙코르톰의 다리와 프레아칸의 사원군과 타 프롬, 반테이 끄데이 등의 사원을 세웠다.

사원의 탑에 있는, 200여개의 거대한 얼굴상들의 유사성은 자야바르만 7세 자신의 얼굴이라는 추측하고 있다. 혹자는 관세음보살의 얼굴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