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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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립도서관 소장 독립선언문

미국 독립 선언(美國獨立宣言,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은 1776년 7월 4일 당시의 영국의 식민지 상태에 있던 13개의 주가 서로 모여 필라델피아 인디펜던스 홀에서 독립을 선언한 사건을 일컬으며, 이 사건은 〈미국 독립선언문〉에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7월 4일독립기념일로 삼아 축제를 하고 있다. 독립 선언이 있은 후 약 8년간에 걸친 싸움 끝에 1783년 9월 3일에 비로소 미국은 영국프랑스로부터 이른바 〈파리 조약〉을 거쳐 완전한 독립을 인정받게 되었다.

배경[편집]

독립선언문의 서명, 2달러 지폐의 도안으로 사용된다.(존 트럼불 그림)

1762년 2월, 프렌치 인디언 전쟁이 끝나면서 영국왕 조지 3세와 영국 의회는 ‘인지세법’(1765년), ‘타운젠드법’(1767년)과 같은 식민지 미국에 대한 과세와 지배를 강화했다. 본국 정부에 의한 식민지 압박정책은 점차 식민지 사람들에게 불만과 반발을 초래하여 민심이반이 일어난다.

각각 독자적인 발전을 추진했던 13개 식민지1772년 11월 연락 조직으로 교신위원회를 발족시킨다. 이 위원회는 1774년 9월 제1차 대륙회의(조지아 식민지 제외한 12개 식민지 대표 모임)로 발전하고 본국 정부와의 화해를 도모했다. 그러나 이듬해 1775년 4월, 렉싱턴 콩코드 전투에서 영국군과 식민지 민병대 사이에 교전이 일어나게 되고, 미국 독립 전쟁의 포문이 열렸다. 1775년 5월 10일, 제2차 대륙회의가 열렸다 (13개 식민지 대표가 모인) 이때까지의 무력 충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본국 정부와의 화해의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세는 날로 악화되었고, 1776년 1월 독립을 주장하는 토마스 페인의 저서 《상식》(Common Sense)이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식민지 주민과 식민지 대표들 사이에서도 독립론은 최고조에 달했다.

1775년 제2차 대륙 회의에서 벤자민 프랭클린, 존 애덤스(제2대 대통령), 로저 셔먼, 로버트 리빙스턴, 토마스 제퍼슨( 제3대 대통령)의 다섯 사람이 미국 독립선언서의 기초 작업을 수행했다.[1] 1775년 제2차 대륙 회의 부터 미국 독립전쟁이 시작되었다. 지적 리더십의 집단적 행동으로서의 독립선언서는 미국과 유럽의 수십년 간에 걸친 정치적·철학적 논쟁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제퍼슨과 그의 추종자들은 그리스와 로마 사상가들의 작품을 그 시대의 원전으로 해독하고 인용할 수 있을 만큼 고전에 밝았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새로운 사상에도 해박한 사람들이었다. [2]

자연법 사상[편집]

미국 독립 선언은 식민지인의 불만을 상세히 기술하고, 다수의 혁명이론을 집약하였다. 식민지인에게 "자연법과 자연의 신의 법이 부여하는 지위" 및 인간이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은" 권리에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또한 독립 선언 전문은 독립전쟁을 정당화하는 자연법이론의 영향을 강력히 반영하고 있다.[3]
자연법 사상에 따라서 당시 국왕이 하던 노예무역을 비판하던 문항이 초고에 있었지만, 대륙회의는 과반수의 동의하에 그 문항을 삭제했다.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자들은 대부분 버지니아의 농장주였다. 이런 면에서 독립 선언은 한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독립선언문[편집]

제1장[편집]

인류의 역사에서 한 민족이 다른 민족과의 정치적 결합을 해체하고 세계의 여러 나라 사이에서 자연법과 자연의 신의 법이 부여한 독립, 평등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인류의 신념에 대해 엄정하게 고려해 보면서 독립을 요청하는 여러 원인을 선언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제2장[편집]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으며, 이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하고 있는 것이다. 또 어떤 형태의 정부이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언제든지 정부를 개혁하거나 폐지하여 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그러한 원칙에 기초를 두고 그러한 형태로 기구를 갖춘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은 인민의 권리인 것이다. 진실로 인간의 심려는 오랜 역사를 가진 정부를 천박하고도 일시적인 원인으로 변경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인간에게는 악폐를 참을 수 있는 데까지는 참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줄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에 걸친 학대와 착취가 변함없이 동일한 목적을 추구하고 인민을 절대 전제 정치 밑에 예속시키려는 계획을 분명히 했을 때에는, 이와 같은 정부를 타도하고 미래의 안전을 위해서 새로운 보호자를 마련하는 것은 그들의 권리이며 또한 의무인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지금까지 식민지가 견디어 온 고통이었고, 이제야 종래의 정부를 변혁해야 할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대영국의 현재 국왕의 역사는 악행과 착취를 되풀이한 역사이며, 그 목적은 직접 이 땅에 절대 전제 정치를 세우려는 데 있었다. 지금 이러한 사실을 밝히기 위하여 다음의 사실을 공정하게 사리를 판단하는 세계에 표명하는 바이다.

제3장[편집]

국왕은 공익을 위해 대단히 유익하고 필요한 법률을 허가하지 않았다.

국왕은 긴급히 요구되는 중요한 법률이라 할지라도 그가 동의하지 않으면 시행해서는 안 된다고 식민지 총독에게 명령했다. 이렇게 하여 시행이 안 된 법률을 허가할 수 없다고 했다.

국왕은 우리를 괴롭혀 결국은 그의 정책에 복종시키기 위하여 입법 기관의 양원을 공문서 보관소로부터 멀리 떨어진 유별나고 불편한 장소에 동시에 소집했다.

국왕은 인민의 권리를 침해한 데 대하여 민의원이 단호하게 반발하면 몇 번이고 민의원을 해산했다.

국왕은 민의원을 이렇게 해산한 뒤 오랫동안 대의원의 선출을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입법권이라는 것은 완전히 폐지할 수는 없으므로, 입법권은 결국 인민 일반에게 돌아와 다시 행사하게 되었지만, 그 동안에 식민지는 내우외환의 온갖 위협에 당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왕은 식민지의 인구를 억제하는 데에도 힘을 썼다. 이를 위하여 외국인의 귀화법에 반대했고, 외국인의 이주를 장려하는 법률도 허가하지 않았으며, 토지를 새로이 취득하는 데에도 여러 가지 조건을 붙여 까다롭게 했다.

국왕은 사법권을 수립하는 데 관한 법률을 허가하지 않음으로써 사법 행정에도 반대했다.

국왕은 판사의 임기, 봉급의 액수와 지불에 관해 오로지 국왕의 의사에만 따르도록 했다.

국왕은 우리들 인민을 괴롭히고 인민의 재산을 축내기 위하여 수많은 새로운 관직을 만들고, 수많은 관리를 식민지에 보냈다.

국왕은 평화시에도 우리의 입법 기관의 동의 없이 상비군을 주둔시켰다.

국왕은 다른 기관과 결탁하여 우리의 헌정이 인정하지 않고 우리의 법률이 승인하지 않는 사법권에 예속시키려 했고, 식민지에 대하여 입법권을 주장하는 영국 의회의 여러 법률을 허가했다. 즉, 대규모의 군대를 우리들 사이에 주둔시키고, 군대가 우리들 주민을 살해해도 기만적 재판을 해서 이들을 처벌받지 않도록 하고, 우리와 전 세계와의 무역을 차단하고, 우리의 동의 없이 세금을 부과하고, 수많은 사건에서 배심 재판을 받는 혜택을 박탈하고, 허구적인 범죄를 재판하기 위하여 우리를 본국으로 소환하고, 우리와 인접한 식민지에서 영국의 자유로운 법률 제도를 철폐하고, 전제적 정부를 수립하여 다시 그 영역을 넓혀 이 정부를 모범으로 삼아 이 식민지에도 동일한 절대적 통치를 도입하는 적절한 수단으로 하고, 우리의 특허장을 박탈하고, 우리의 귀중한 법률을 철폐하고, 우리의 정부 형태를 변경하고, 우리의 입법 기관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어떠한 경우든 우리를 대신하여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선언하는, 이러한 법률을 허가한 것이다.

국왕은 우리를 그의 보호 밖에 둔다고 선언하고, 우리에게 전쟁을 벌임으로써 식민지에 대한 통치를 포기했다.

국왕은 우리의 바다에서 약탈을 자행하고, 우리의 해안을 습격하고, 우리의 도시를 불사르고, 우리들 주민의 생명을 빼앗았다.

국왕은 가장 야만적인 시대에도 그 유례가 없고 문명국의 원수로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잔학과 배신의 상황을 만들고, 이와 더불어 이미 착수한 죽음과 황폐와 포학의 과업을 완수하기 위하여 이 시간에도 외국 용병 대부대를 수송하고 있다.

국왕은 해상에서 포로가 된 우리들 동포 시민에게 그들이 사는 식민지에 대하여 무기를 들거나, 우리의 벗과 형제 자매의 사형을 집행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손에 죽기를 강요했다.

국왕은 우리들 사이에 내란을 선동했고, 변경의 주민에 대하여는 연령, 남녀, 신분의 여하를 막론하고 무차별로 살해하는 것을 전쟁의 규칙으로 하는, 무자비한 인디언을 자기편으로 하려고 했다.

  • 해설: 세 번째 부분은 영국 국왕의 압정에 대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앞에서 독립의 정당성을 사상 및 이념을 동원해서 설명했다면 여기서는 왜 영국 국왕으로 대표되는 영국 정부로부터 벗어나려 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논증하고 있는 것이다. 주요 내용은 사법권 및 식민지 의회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기에 불법적으로 군대를 주둔시켜서 압정을 자행하고 동의 없는 세금을 징수한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재미있는 부분은 "무자비하고 야만스러운"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들과 연합했다는 점도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4장[편집]

이러한 탄압을 받을 때마다 그때그때 우리는 겸손한 언사로써 시정을 탄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여러 차례의 진정에 대하여 돌아온 것은 여러 차례의 박해에 지나지 않았다. 이와 같이 그 성격이 모든 행동에서 폭군이라는 정의를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국왕은 자유로운 인민의 통치자로서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또한 영국의 형제 자매에게도 주의를 환기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우리는 영국 의회가 우리를 억압하려고 부당한 사법권을 넓히려고 하는 데 대하여도 수시로 경고를 했다. 우리는 우리가 아메리카로 이주하여 식민을 하게 된 제반 사정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우리는 그들의 타고난 정의감과 아량에 대하여도 호소한 바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피를 같이 나누고 있다는 것에 호소하여 우리와의 연결과 결합을 결국에는 단절시키는 것이 불가피한 이러한 탄압을 거부해 줄 것을 탄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또한 정의와 혈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할 사정을 고발할 필요성을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세계의 다른 국민에게 대하듯이 영국인에 대하여도 전시에는 적으로, 평화시에는 친구로 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바이다. 이에 아메리카의 연합 제 주의 대표들은 전체 회의에 모여서 우리의 공정한 의도를 세계의 최고 심판에 호소하는 바이며, 이 식민지의 선량한 인민의 이름과 권능으로써 엄숙히 발표하고 선언하는 바이다. 이 연합한 제 식민지는 자유롭고 독립된 국가이며, 또 권리에 의거하고 자유롭고 독립된 국가여야 한다. 이 국가는 영국의 왕권에 대한 모든 충성의 의무를 벗으며, 대영제국과의 모든 정치적 관계는 완전히 해소되고 또 해소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 국가는 자유롭고 독립된 국가로서 전쟁을 개시하고 평화를 체결하고 동맹 관계를 협정하고, 통상 관계를 수립하여 독립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모든 행동과 사무를 할 수 있는 완전한 권리를 갖고 있는 바이다. 우리들은 이에 우리의 생명과 재산과 신성한 명예를 걸고 신의 가호를 굳게 믿으면서 이 선언을 지지할 것을 서로 굳게 맹세하는 바이다.

  • 해설: 마지막 부분인데, 세 번째 파트에서 영국의 압제를 구체적으로 열거했다면 여기서는 이러한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을 선언한다는 내용이다. 주의를 환기시키고, 경고도 하고, 호소나 사정도 했는데, 영국은 그 모든 시도를 묵살했으므로 독립하겠다는 것이다.

주석[편집]

  1. 윤용희, 윤이화, "미국의 건국정신과 헌법정신의 함의" 사회과학 Vol.17. 경북대학교 사회과학대학, 2005, 13면
  2.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 (2006).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 서울: (사)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105쪽. ISBN 89-20-92226-8
  3. 윤용희, 윤이화, "미국의 건국정신과 헌법정신의 함의" 사회과학 Vol.17. 경북대학교 사회과학대학, 2005, 15면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