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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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南宮)씨는 한국중국의 성씨다.

연원[편집]

남궁(南宮)씨는 희성으로 전하고, 선조가 주나라 개국 공신으로 주문왕의 친구였다고 한다. 그리고 노나라 맹손(孟孫)씨 가문에 맹희자의 아들 맹의자 이름이 남궁괄이라고 한다. 그 이전에는 남궁장만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비슷한 성씨로 남곽(南郭)씨가 있는데 주문왕 동생 곽숙이 곽국에 봉해졌다가 남곽에 살면서 남곽씨가 되었고 다른 계열로는 강성이 있다. 남궁, 남곽등의 복성은 사라지고 단성화 되었다.

한국 남궁씨의 본관은 함열 남궁씨 단본이다. 도시조는 남궁수(南宮修)인데, 남궁수가 고조선에 들어온 시기가 2500~3000년 이전으로 한국 성씨 가운데 가장 오래된 토착 성본이라고 한다. 문중에 따르면 남궁(南宮)은 복성이지만, 고대 고구려백제에는 복성이 많았으므로 한반도 토착 세력일 가능성도 높다고 한다. 함열 남궁씨의 본관인 전라북도 익산시 함열읍은 고대 마한백제 지역이다.

남궁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조사에서 18,743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93위이다.

함열 남궁씨[편집]

함열 남궁씨(咸悅 南宮氏)의 시조는 고려 성종 때의 대장군 남궁원청(南宮元淸)이다. 그는 991년(고려 성종 10년) 대장군(大將軍)이 되어 여진족을 백두산(白頭山) 북방까지 몰아내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워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임명되고 감물아백(甘勿阿伯)에 봉해졌다. 이후 세보가 실전되어 그의 후손 남궁득희(南宮得禧)을 1세조로 하였다. 남궁득희의 증손 남궁민(南宮敏)은 고려 충숙왕 때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간의대부를 지냈다. 함열 남궁씨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5명, 무과 급제자 9명, 사마시 53명, 음관 24명을 배출하였다.[1]

주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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