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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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열 남궁씨 (咸悅 南宮氏)
관향 전라북도 익산시 함열읍
시조 남궁 원청 (南宮 元淸))
주요 중시조 남궁 득희
주요 집성촌 강원도 홍천군
경기도 가평군
충남 공주시
전북 익산시
주요 인물 남궁억, 남궁영, 남궁연, 남궁민, 남궁도, 남궁현, 남궁웅
인구(2000년) 18,703명 / 5,666가구

남궁(南宮)씨는 한국중국의 성씨다.

연원[편집]

남궁(南宮)씨는 희성으로 전하고, 선조가 주나라 개국 공신으로 주문왕의 친구였다고 한다. 그리고 노나라 맹손(孟孫)씨 가문에 맹희자의 아들 맹의자 이름이 남궁괄이라고 한다. 그 이전에는 남궁장만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비슷한 성씨로 남곽(南郭)씨가 있는데 주문왕 동생 곽숙이 곽국에 봉해졌다가 남곽에 살면서 남곽씨가 되었고 다른 계열로는 강성이 있다. 남궁, 남곽등의 복성은 사라지고 단성화 되었다.

한국의 남궁씨는 함열 남궁씨 단본이다. 도시조는 남궁수(南宮修)인데, 남궁수가 고조선에 들어온 시기가 2500~3000년 이전으로 한국 성씨 가운데 가장 오래된 토착 성본이라고 한다. 문중에 따르면 남궁(南宮)은 복성이지만, 고대 고구려백제에는 복성이 많았으므로 한반도 토착 세력일 가능성도 높다고 한다. 함열 남궁씨의 본관 익산은 고대 마한백제 지역이다.

2000년 통계청 조사에서 남궁씨는 18,743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함열 남궁씨[편집]

함열 남궁씨 시조는 고려 성종 때의 대장군 남궁원청(南宮元淸)이다. 991년(고려 성종 10년)에 남궁원청이 대장군으로서 여진족백두산 이북까지 몰아낸 공으로 감물아(함열의 옛이름)백에 봉해짐으로써 그의 후손들이 본관을 함열로 하게 되었다. 그는 북방에서 여진족 토벌에 전공을 세워 문하시중평장사로 함열백에 봉해졌다. 이후 세보가 실전되어 그의 후손 남궁득희(南宮得禧)을 1세조로 하였다. 남궁득희의 증손 남궁 민(南宮 敏)은 고려 충숙왕 때 간의대부를 지냈다.

함열(咸悅)은 전북 익산에 속한 있는 지명으로 마한 때 감물아현(甘勿阿縣)이라 불리다가, 통일 신라 경덕왕함열(咸悅)로 고쳤다.

함열 남궁씨의 인구수는 2000년 기준 5,666가구, 18,703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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