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집 툰 라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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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집 툰 라작
다토 스리 하지 모하마드 나집 빈 툰 하지 압둘 라작
Dato' Sri Haji Mohammad Najib bin Tun Haji Abdul Razak
Dato Sri Mohd Najib Tun Razak.JPG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제6대 총리
임기 2009년 4월 3일 ~
부통령 압둘 할림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의의 제9대 부총리
임기 2004년 1월 7일 ~ 2009년 4월 3일
총리 압둘라 아마드 바다위
후임: 무히딘 야신(제10대)

국적 말레이시아
출생일 1953년 7월 23일(1953-07-23)
출생지 말레이시아 쿠알라 리피스
정당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
학력 노팅엄 대학교
종교 이슬람교
배우자 로스마흐 만소르
자녀 모하마드 니자르, 푸트리 노를리사, 모하마드 나지푸딘, 누랴나 나즈와, 노라슈만 라작
부모 압둘 라작 후세인(父)
웹사이트 http://www.pmo.gov.my/

나집 툰 라작(말레이어: Mohd. Najib bin Tun Haji Abdul Razak, 1953년 7월 23일 ~ )는 말레이시아의 정치인이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부총리를 지냈으며, 2009년 4월 압둘라 총리가 사임하자 후임 총리로 임명, 현재 재직중이다.

유명 정치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압둘 라작 후세인1970년 ~ 1976년 총리를 지냈다. 그의 부친의 뒤를 이어 총리를 지낸 후세인 온의 조카이기도 하다. 나집은 영국 노팅엄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1976년 총리로 재직중이던 부친이 사망하자[1] 그의 의석을 물려받아 곧바로 여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의 국민전선(Barisan Nasional) 소속으로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이 되었다. 1980년대에 통일 말레이 국민조직의 청년조직 대표를 맡았고,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총리의 신임을 받으며 유력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그 사이 계속하여 선거에서 당선되어 국회의원 자리를 지켰다.

2003년 마하티르 총리가 퇴임하면서 압둘라 아마드 바다위 부총리가 총리직을 이었다. 그 이듬해, 나집은 공석이 된 부총리 자리에 올라 당권에 더욱 가깝게 다가섰다. 2008년 재무부 장관직도 압둘라 총리에게 이어받으며, 재무부 장관을 겸했다. 정계에서 계속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마하티르 전 총리는 압둘라 총리의 실정을 비판하며 나집을 지원하였다. 2008년 총선에서 집권여당인 UMNO는 계속 최다의석을 확보했으나, 예전보다 의석수는 줄어들었으며, 의석을 많이 잃은 것에 따른 압둘라 총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 해 11월, 나집은 압둘라 총리에 이어 통일 말레이 국민조직 대표로 지명되어 2009년 3월 정식으로 대표가 되었으며, 곧이어 압둘라 총리가 사임하여 4월 3일 미잔 자이날 아비딘 국왕 앞에서 취임식을 갖고 제6대 총리로 취임했다.

나집은 유력 정치가문 출신에 다양한 경력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으며, 정계 대립과 경제 위기 문제 해결이라는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

약력[편집]

나집 툰 라작은 1953년 7월 2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 리피스에서 압둘 라작 후세인 前총리와 라하흐 노아흐 전 영부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6명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2] 나집은 부친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된 후세인 온 前부총리의 조카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동생인 다토 스리 모하마드 나지르 압둘 라작은 부미푸트라커머스 홀딩스의 일원이기도 하다. 나집은 또한 파항 다룰 마크무르(Pahang Darul Makmur)의 4명의 귀족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는 노팅엄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하지만 1976년 총리로 재직하던 부친이 사망하게 된다. 그 해에 나집은 텡쿠 푸트리 자이나흐 텡쿠 에스칸다르와 결혼하였다. 그는 그녀와의 사이에서 3명의 아이를 낳았다. 11년 후인 1987년 둘은 이혼하였고, 대신에 나집은 로스마흐 만소르와 재혼하였다. 그는 그녀와의 사이에서 2명의 아이를 더 낳았다.

정치 활동[편집]

1976년 총리로 재직하던 부친이 사망하자 그는 국회의원이 되었다. 1986년 문화청년체육장관이 되었으며 1991년에는 국방부 장관이 되었다. 1995년에는 교육부 장관이 되었으며 2004년 부총리로 임명되었다. 2008년에는 재정부 장관이 됨으로써 두 직을 겸임하게 되었다.

총리[편집]

마하티르의 사임으로 총리가 된 압둘라 아마드 바다위 부총리에 이어, 나집은 2004년 부총리로 임명되었다. 그는 2009년 4월 3일 압둘라가 사임할 때까지 재직하게 된다.

압둘라의 사임이 원인이 된 것이 바로 2008년 총선이었다. 이 총선에서 UMNO는 승리하였고, 압둘라는 연임에 성공하지만, 의석을 많이 잃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압둘라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 와중에 압둘라는 2009년 사임하였다. 부총리였던 나집이, 그의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외교 정책[편집]

미국[편집]

나집은 2010년 4월 12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핵안보회의를 앞두고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를 만났다. 이 회담은 두 나라간의 우호적 관계를 대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회담은 그들의 첫 일대일(one-on-one)회담이었다. 이 회담에서 오바마는 핵분열이 세계 안보에 큰 위협을 줄 수 있다며 말레이시아에 더 많은 원조를 추구한다고 말했다. 회담 중에서 나집은 평화적인 목적으로 핵 프로그램을 지원함을 강조하였다. 나집의 방문은 일주일 간의(week-long) 미국 공식 방문의 한 부분이 되었다.

대한민국[편집]

나집은 2009년 6월 1일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개최된 아세안-한국 회담에 참석하였다. 이 회담에서 경제성장을 후원하여 아세안-한국 투자협정에 서명하였고, 회담이 끝난 후 나집은 한국의 핵개발과, 저탄소 녹색 기술을 본받아야 함을 주장했다.

주석[편집]

  1. "라자크 말聯首相別世 享年53歲···英서白血病으로 後任에 후세인就任", 《동아일보》, 1976년 1월 15일 작성.
  2. Office of The Prime Minister of Malaysia. The Honourable Dato' Sri Mohd Najib bin Tun Abdul Razak. 2012년 8월 20일에 확인.
전 임
압둘라 아마드 바다위
제6대 말레이시아의 총리
2009년 ~ 현재
후 임
(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