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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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Shanghai massacre of 1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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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2일 (화) 14:09 판
4·12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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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내전의 일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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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중국 국민당, 청방 및 삼합회 등 | 중국 공산당 및 상하이노조 조직 | ||||||
지휘관 | |||||||
바이충시 | 천두슈, 저우언라이 | ||||||
병력 | |||||||
약 5천여 명의 군대 및 상하이 폭력조직 | 수천명의 공산주의자 및 노동자 | ||||||
피해 규모 | |||||||
없음 | 300-400명 사망, 5,000여 명 실종 |
상하이 쿠데타 또는 4·12 사건은 1927년 4월 12일 상하이에서 벌어진 중국 국민당의 중국 공산당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가리킨다. 이 사건으로 제1차 국공 합작이 결렬되고, 제1차 국공 내전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개요
북벌 기간 중 장제스의 명령에 의해 이루어진 이 공격으로 공산당은 대대적인 탄압에 들어갔고 결국 제1차 국공합작은 결렬되었다. 이 사건을 두고 국민당 쪽에서는 ‘당내 공산당에 대한 숙청, 정화(이른바 중국어 정체자: 淸黨, 병음: qīng dǎng 청당[*])’으로 부르는 반면, 공산당 진영에서는 ‘4·12 쿠테타(중국어 간체자: 四一二反革命政变)’ 또는 ‘4·12 참변(중국어: 四一二慘案)’으로 부른다.
이 사건 이후 몇 달 동안 중국 전역에 걸쳐 공산당과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척작업이 벌어져 국민당 내 공산당원, 공산주의자, 좌파 당원들이 축출되었고 체포, 투옥, 처형당했다. 이때 중국 공산당은 공동 설립자 중에 한 사람인 리다자오도 베이징에서 처형당하는 등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결과
중국 국민당은 이 사건으로 공산당을 축출한 후 북벌을 완수하고 중국 전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할 수 있었고 장제스 또한 당내 권력을 확실히 장악하고 1인 독재체제를 강화할 수 있었다.
1927년 7월 13일, 중국 공산당은 대시국 선언을 발표해 제1차 국공 합작의 종료를 선언하고 이후 같은 해 8월 1일 난창 봉기를 비롯하여 몇 차례 봉기를 일으켰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도시지역에서 영향력을 상실하고 지하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고 마오쩌둥 등 일부지도자들은 농촌지역과 산간오지로 철수하여 암중모색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로서 중국은 다시 제2차 국공 내전에 접어들게 되었다.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가 1933년 발표한 장편소설 《인간의 조건》은 바로 상하이에서 벌어진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