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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8일 (목) 09:38 판

(堯)는 명군으로 알려진 중국의 신화 속 군주의 이름으로,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신화 가운데 오제의 하나이다. 다음대의 군주인 (舜)과 함께 성군(聖君)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며 '요순'과 같이 함께 묶어 많이 사용한다. 이 말은 주로 뛰어난 군주를 찬양하거나 먼 옛날의 이상적인 군주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쓰였으며, 하나라우왕, 은나라탕왕을 합쳐 요순우탕(堯舜禹湯)이라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현재까지 요의 역사적 실존성은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고, 다만 우왕과의 관계에서 하나라 이전에도 국가 비슷한 실체가 형성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사용된다.

치세

요는 제곡 고신의 아들로 이름은 방훈(放勳)이고 당요(唐堯) 또는 제요도당(帝堯陶唐)으로도 부른다. 이는 요가 당(唐) 지방을 다스렸기 때문에 붙은 칭호이다.

사기(史記)》와 여러 역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요는 20살에 왕위에 올라 덕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요의 치세에는 가족들이 화합하고 백관의 직분이 공명정대하여 모든 제후국들이 화목하였다고 한다. 요는 희씨(羲氏)와 화씨(和氏) 일족에게 계절의 구분에 따라 농사의 적기를 가르쳐주도록 하였으며, 1년을 366일로 정하고 백관들을 정비하였다. 또한 자신이 독단적인 정치를 할 것을 염려하여 궁전 입구에 감간고(敢諫鼓: 감히 간언드리는 북)를 달아 경계하도록 하였다. 요의 만년에는 황하가 범람하여 큰 홍수가 났으며, 요는 이를 다스리기 위하여 곤(鯀)을 시켜 9년 동안 치수공사를 하게 했지만, 실패하였다.

요가 왕위에 오른 지 70년 가까이 지난 후 요는 후계자를 찾아 신하들에게 추천할 것을 명하였다. 신하들은 전욱 고양의 후손이자, 효성이 지극한 순(舜)을 추천하였다. 요는 순에게 두 딸을 시집보내고 여러가지 일을 맡겨 순의 사람됨과 능력을 시험하였으며, 3년 후 순을 등용하여 천하의 일을 맡겼다. 20년이 지나자 요는 순을 섭정으로 삼고 은거하여 8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일부 학자들은 요 시대 쯤에 황하 유역에 중앙집권적인 정치세력이 형성되었다고 추정한다.

"요순"이라는 표현

이후 “요순”이라는 표현은,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누리고, 권력투쟁 없이 정치가 안정되어 있으며, 자연재해도 없는 평온한 시절을 지칭하는 표현이 되었다.

한편으로, 역성혁명을 꾀하던 자들이 요순임금의 예를 들며 자신이야말로 백성의 신망을 받는 지도자라는 점을 강조하는 데 이용되기도 하였다.

요순 시절의 태평성대는 중국 역사상 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좋은 옛 시절”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자주 사용되었으며, 각종 시, 노래, 민요, 상소문 등에서 용례를 찾아볼 수 있다.

선양 전설

선양(禪讓)은 군주가 혈연관계가 없는 후계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다. 중국의 신화 시대에 성천자(聖天子)로 일컬어지는 요·순·우(禹)가 차례로 왕위를 물려주었다는 전설에서 탄생한 개념이다. 요는 아들 단주(丹朱)가 덕이 부족하여 후계자로 삼지 않고, 효성과 덕성, 능력을 갖춘 인재인 순을 후계자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었다. 순 역시 아들이 아닌 우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이러한 선양은 신화 속 태평성대의 군주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칭송을 되었으며, 이상적인 군주 교체의 방법으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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