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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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와와 복희.

태호 복희씨(太皞伏羲氏) 또는 포희씨(庖犧氏)는 중국 삼황 중 하나이다. 전설에서 복희는 인류에게 닥친 대홍수 시절에 표주박 속에 들어가 있던 덕분에 되살아날 수 있었다고 하는데, 다시 살아났다는 의미로 복희라고 했다고 전한다(*실제 역사적으로 대홍수는 태호복희의 뒤를 이은 여와 시기에 일어난 천재지변임. 여와는 서기전 3414년 이후 임금으로 홍수를 다스린 인물임. 여와가 홍수가 난 하늘의 구멍을 기웠다고 하는 말로 여와보천<女媧補天>)이라는 말이 전함.)[1] ‘복희’란 희생(제사에 쓰이는 짐승)을 길러 붙여진 이름이다. 성씨는 풍(風)으로 전해진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동이족(*공자의 후손으로 서기전 268년경 인물인 위(魏)나라 사람 공빈의 홍사서문에 의하면 배달나라도 동이의 나라임. 역사적으로 태호복희는 한웅천왕의 아들로 기록되며, 태우의한웅의계자(季者) 즉 막내 동생으로 추정됨.)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팔괘(八卦)를 창제했다고 전한다. 이는 《주역》(64괘)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다. 도교에서는 그를 동방의 천제(실제 역사로는 한웅천왕의 아들로서 진제국의 초대 천군임. 십팔사략에 태호복희는 천지인 삼신에게 제(祭)를 지냈다고 기록되고 있어 제사장임을 알 수 있다.)라 일컫는다. 또한 글자(*용서<龍書>라고 함.)를 만들었다고 믿어졌다.[2] 또 복희는 혼인제도를 만들었으며 姓氏를 만들었다고한다(*태호복희의 후손에 여러 성씨가 있음.). 복희는 회양현(=陳(진))에 도읍을 정했다고 한다. 회양현에서 복희가 만들었다는 팔괘가 발견되었다 .. ...

출생[편집]

전설에 의하면 태호 복희씨는 기원전 3500년 무렵(서기전 3528년 계유년~서기전 3414년. 115년간 임금 재위)에 살았다고 기록되는데, 이러한 계유년처럼 간지(干支)가 기록된 것을 무시하고, 서기전 2750년경 인물이라고 추정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역사를 재편하면서 약 700년 이상 시기를 늦춤으로써 야기된 명백한 오류가 된다. 그는 사람의 머리에 뱀의 몸(인두사신<人頭蛇身>)을 하고 있다고 하며, 다른 전설에는 용의 몸(*배달나라 우사<雨師>를 지냈는바, 우사는 비 또는 물과 관련되어 용으로 상징됨.)이라고도 한다.

원래 민간 전설상으로는 태호와 복희는 별개의 인물이었다. 전국시대 진(秦)나라에서 편찬한 세본(世本)에서 동일 인물로 서술하자, 이후 황조 이후부터 동일인으로 서술 하기 시작하였다. 이름이 두 개이고, 본래 동일인이 아니라는 기록이 존재하므로 실존성은 낮은 신화적인 상징이라고 해석이 하기도 한다.(*태호복희는 소호국 출신인 금천 즉 소호금천이라는 명칭처럼 태호 출신의 복희라는 명칭으로서 태호는 곧 진제국<震帝國>을 가리키는 것이 됨.)

태호 복희는 여와(女媧 : 서기전 3414년경부터 태호복희를 이어 중원대륙을 다스리며 황토인 즉 중원인들을 혼인제도를 통하여 많이 번창시켰음.)처럼 고대 민간 신앙의 신화일 뿐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복희 상상도가 출토된 신장의 경우 본래 한족 지역이 아니며, 한족 이외에 남방 소수 민족들도 복희 신화를 가지고 있어, 고대 씨족 사회에 널리 사용된 민간 신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당나라 시대에 간행된 역경에 따르면 복희가 팔괘(八卦)를 만들었다고 서술하고 있으나, 복희가 살았다는 기원전 25세기의 문자나 기호가 발견되지 않았다.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팔괘는 주나라 초기 점술가들이 제안하였고 기원전 5세기 무렵에 여러 신앙풍습이 더해져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여, 사서의 내용들과는 실제로는 다른 면도 있다. 글자를 만들었다고 믿어지기도 하지만, 역시 복희가 살았던 시대의 문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전설에 의하면 100년 이상 살았다고 전해진다. 무덤은 화이양 현 북쪽 3리 떨어진 곳에 있다. 하지만 다른 전설 시대에 나오는 인물 무덤처럼 실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자식으로는 복비가 있고 후손은 늠군이다.

기타[편집]

알렉산더 캣콧은 대홍수에서 표주박 속에 들어가 살아남은 복희가 동쪽으로 이주한 아시아인들이 성서의 노아를 복희로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을 오해한 것이 된다.[3]

각주[편집]

  1. 박영규, 《교양으로 읽는 중국사 1》 웅진씽크빅(2005). 17쪽. “복희씨伏羲氏는 중국 민족의 시조로 알려져 있는 신화적 인물로 복희伏羲 또는 복희伏犧, 포희包羲, 포희包犧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전설에서 복희는 인류에게 닥친 대홍수 시절에 표주박 속에 들어가 있던 덕분에 되살이날 수 있었다고 하는데, 다시 살아났다는 의미로 복희라고 했다고 전한다.”
  2. 《사기》〈삼황본기〉, 당나라 시대
  3. Anne Birrell. 《The Four Flood Myth Traditions of Classical China》 1997판.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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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수인씨
중국의 임금(帝)
기원전 2852년경 ~ 기원전 2737년경
후임
염제 신농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