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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2일 (화)

  • 23:462019년 10월 22일 (화) 23:46 차이 역사 −585 선비족 관롱집단은 한족과 호족이 연합해서 세워진 집단입니다. 한 쪽을 일방적으로 피지배라고 볼 수 없습니다.
  • 23:402019년 10월 22일 (화) 23:40 차이 역사 −98 수나라 출신
  • 23:392019년 10월 22일 (화) 23:39 차이 역사 −393 당나라 편집 요약 없음
  • 22:502019년 10월 22일 (화) 22:50 차이 역사 −3,413 선비족 출처 자체에 문제가 있으니;; 중국인 아닙니다 대한민국 출신입니다 태그: 편집 취소
  • 22:292019년 10월 22일 (화) 22:29 차이 역사 −3,413 선비족 1.쓸데없는 표현의 반복. 2.서술 자체에서 드러나는 문제점들(타카오의 잘못된 주장) 3. 청나라의 정책과 동일선상으로 놓기 불가능. 관롱집단이 유목집단이라는 근거부터 제시 바라고 내가 제시한 근거에 대한 반박 부탁드림 태그: 편집 취소
  • 21:562019년 10월 22일 (화) 21:56 차이 역사 −3,413 선비족 https://news.joins.com/article/23567062 이걸 보고도 블로그 글이라고 주장한다면 인정합니다. 진인각도 애초에 관롱집단에서 산서성 일대의 선비족 및 그와 결합한 한족 지배층과 호족화된 한족이 섞여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서술 좀 중립적으로 하십시요 태그: 편집 취소
  • 21:162019년 10월 22일 (화) 21:16 차이 역사 −3,413 선비족 진인각의 학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관롱집단설'이란 것인데, 박한제 교수의 중국역사기행 3부작 중 ''제국으로 가는 긴 여정 - 북조·수·초당 시대'를 보면 관롱집단설에 대해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관롱집단설은 간단히 이야기하면 남북조 시대 선비족이 건국한 북위 말의 혼란기에 관중(현재의 섬서성)과 농우(현재의 감숙성)로 이주한 선비족들이 현지 한족과 혼합되어 형성된 '관롱집단'이 세계 제국 수, 당을 건국한 주역들이라는 학설입니다. 태그: 편집 취소
  • 20:572019년 10월 22일 (화) 20:57 차이 역사 −368 선비족 편집 요약 없음
  • 20:552019년 10월 22일 (화) 20:55 차이 역사 −1,120 선비족 관롱집단은 역사학자 진인각이 주장한 내용이며 그도 단순히 선비족만의 집단이 아닌 서위 이래 관중,농서지방을 출신으로 배출되었던 지배층을 뜻합니다. 즉 이분법적으로 어느 민족이라고 특정지을수 없다는겁니다. 태그: 각주 제거됨
  • 20:502019년 10월 22일 (화) 20:50 차이 역사 −1,873 선비족 박한제도 호한통합이라는 말을 대당제국과 그 유산이라는 책에 저술하고 있네요. 단순히 한족이 호족의 노예상태였다는것은 근본적으로 틀린 주장입니다. 태그: 편집 취소 각주 제거됨
  • 20:462019년 10월 22일 (화) 20:46 차이 역사 −52 선비족 관롱집단(關隴集團)세력 관롱집단은 관롱 즉 관중(關中)과 농우(陇右)를 지역기반으로 하는 정치집단이었다. 이 집단을 주도한 것은 앞서 서술한 서위(西魏)의 우문태(宇文泰)였다. 우문태는 관롱을 중심으로 하여 종족적으로 호(胡 선비족)와 한(漢)을 혼합하였으며, 무력과 재지를 겸수한 자들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냈다. 특히 우문태는 동위와 남쪽의 양(梁)을 견제할 강력한 군부를 필요로 하여, 육진의 난 때 무천진(武川鎮)으로부터 남하한 세력을 중심으로 군사행정의 근간인 8주국 12대장군제(八柱國 十二大將軍制)를 국가 확립 기반으로 삼았다. 이 8주국 대장군들의 가문이 바로 관롱집단의 핵심이다. 태그: 편집 취소
  • 20:452019년 10월 22일 (화) 20:45 차이 역사 −1 선비족 중국 외부의 적에서 내부의 지배 계층으로 변모한 이민족들은 통치체제 안정과 선진 문물 습득을 위한 적극적인 동화 정책을 펼쳐 이민족과 한족 혼혈의 귀족 계급이 등장했고 이세민의 가문도 이에 해당됐다.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태그: 편집 취소
  • 16:172019년 10월 22일 (화) 16:17 차이 역사 −2,606 선비족 ?? 정당한 사유 없이 되돌리는게 반달 아닌가요?? 관롱집단은 실제로 호한 융합 집단이였고 한족 외의 융적까지 있었을 정돕니다. 태그: 편집 취소 각주 제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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