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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동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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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동
李圭東
출생1889년 3월 26일(1889-03-26)
조선 충청도 보령
사망1950년 7월 25일(1950-07-25)(61세)
대한민국 서울
국적대한민국
본관수안(遂安)
경력신민회 초급행정위원(1908년)
한독당 군사행정특보위원(1930년)
한독당 국가민족행연대위원(1947년)
정당무소속

이규동(李圭東, 1889년 3월 26일 ~ 1950년 7월 25일)은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대한제국독립운동가이다. 이명(異名)으로는 관일(貫一·寬一), 규사(圭四)가 있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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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경기도 안성경기도 안양을 거쳐 경기도 인천경기도 고양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그 후 경기도 의정부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고 그 후 한성부에서 성장한 그는 1908년 비밀 결사단체인 신민회에 가입하여 구국계몽운동을 펼쳤다. 1918년 대한혁명군의 중대장으로 복무한 바 있으며 이후 신흥학교 계몽대장을 지냈다.에서 복무했으며 신흥학교에서 근무한 바 있다. 신창학교를 설립하는 등 만주 지역에서 한국인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며 군사훈련과 지식 전달의 거점을 만들었다. 또한 혁신농우단(革新農友團)을 만들어 만주 내 한국교민들과 독립운동을 위해 힘썼다. 정의부(正義府)에 가담해 이른바 3부통합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한국의 광복이 이후 조선인대회에서 부의장에 선출되었다. 귀국 후에는 동북한국교민회 연합회장, 중국귀환동포호조동맹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92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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