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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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만중(睦萬中, 1727년 ~ 1810년)은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유선(幼選), 호는 여와(餘窩)이다.[1]

1759년(영조 35)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86년(정조 10) 도사(都事)로서 문과중시에 장원급제하여 돈녕도정(敦寧都正)에 임명되었다. 태천현감(泰川縣監)을 거쳐 1797년(정조 21) 병조참의, 승지(承旨)를 지내고,[2] 1798년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3]

1801년(순조 1) 신유사옥대사간(大司諫)으로서 영의정 심환지(沈煥之)와 함께 남인(南人) 시파(時派) 계열의 천주교도들에 대한 박해와 탄압을 주도하였다.[4]

1806년(순조 6)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를 지내고,[5] 1807년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다.[6]

저서[편집]

  • 『여와집』

가족[편집]

  • 증조부 : 목천성(睦天成)
    • 조부 : 목경연(睦慶衍)
      • 아버지 : 목조우(睦祖禹)
    • 외조부 : 한명익(韓命翼)
      • 어머니 : 청주 한씨(淸州韓氏)
        • 동생 : 목황중(睦黃中)
      • 처부 : 이한덕(李漢德)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