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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 4대 히토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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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토키리(일본어: (ひと) ())는 "사람 베는", 또는 "사람 베는 자"라는 뜻이다. 특히 막말 시대의 교토에서 암살 활동을 한 존왕양이지사 4명을 막말 4대 히토키리(幕末の四大人斬り)라고 한다.[1] 히토키리들은 요인암살테러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그 활동을 천주(天誅)라 칭했다. 천주는 천벌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천황을 대신해서 주살한다는 뜻이기도 하다.[2] 이들의 테러활동은 당대 교토를 뒤흔들며 세간의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3]

4대 히토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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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신베( () (なか) (しん) () (): 1832년-1863년 7월 11일)

사쓰마번 출신. 1862년 8월 15일 금태합이라고 불릴 만큼 권세를 휘두르던 시마다 마사타츠를 살해했다. 이것이 이후 연발하는 천주사건의 첫 사례였다.[4] 그 밖에도 다수의 암살을 행하여 「사람 베는 신베에」(人斬り新兵衛)의 별명을 얻었다. 사쿠헤이문 밖의 변으로 아네가코우지 킨토모를 암살했다는 혐의로 포박되어 옥중에서 자살했다.

가와카미 겐사이( (かわ) (かみ) (げん) (さい): 1834년 12월 25일-1872년 1월 13일)

히고번 출신. 1864년 8월 12일 병학자 사쿠마 쇼잔을 암살하는 등의 활동으로 「사람 베는 겐사이」(人斬り彦斎)의 별명을 얻었다.[4] 메이지 유신 이후 타카다 겐페이(高田 源兵衛)라고 이름을 고쳤다. 그 뒤 이경사건 개입 혐의와 히로사와 사네오미 암살 혐의로 포박되어 참수형에 처해졌다.

오카다 이조( (おか) () () (ぞう): 1838년 2월 14일-1865년 7월 3일)

도사번 출신. 많은 좌막파에게 위해를 가했으며, 특히 요시다 토요 암살범을 탐색하기 위해 상경한 토사번사 이노우에 사이치로를 참살한 건 등으로 「사람 베는 이조」(人斬り以蔵)의 별명을 얻었다.[4] 교토에서 포박되어 토사에서 고문을 받은 끝에 일련의 천주활동을 자백하고 참수형에 처해진 뒤 옥문에 효수되었다.

나카무라 한지로( (なか) (むら) (はん) () (ろう), 1838년 12월-1877년 9월 24일)

사쓰마번 출신. 일련의 천주행동으로 「사람 베는 한지로」(人斬り半次郎)의 별명을 얻었다.[4] 1867년 9월 30일 병학자이며 자신의 스승이기도 한 아카마츠 코사부로를 암살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키리노 토시아키( (きり) () (とし) (あき))로 개명, 그 뒤 서남전쟁에 반군으로 참여하여 정부군과 교전 끝에 이마에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

그 밖의 히토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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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두 명은 위의 4대 히토키리와 반대로 막신 또는 좌막파였다.

야마다 아사에몬( (やま) () () () () (もん))

에도 막부의 공의어양어용(公儀御様御用: 도검을 이용한 사형집행인). 「사람 베는 아사에몬」(人斬り浅右衛門)이라고도 불렸다.[5] 야마다 아사에몬이라는 이름은 야마다가 당주에게 대대로 계승되었으며, 9대까지 존재한다. 7대 야마다 아사에몬 요시토시안세이 대옥요시다 쇼인 등을 참수했다.

오이시 구와지로( (おお) (いし) (くわ) () (ろう), 1838년-1870년 11월 3일)

신선조 대사(隊士). 토막세력을 추적단속하는 경찰활동 및 토막파에 대한 암살임무도 수행하여 「사람 베는 쿠와지로」(人斬り鍬次郎)의 별명을 얻었다.[6]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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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歴史ポケット人物新聞 回天ふたたび 坂本龍馬』p95 及川拓哉著 大空出版 2008年8月1日
  2. 『決定版幕末のすべて』p64 脇坂昌宏 学研パブリッシング 2010年3月1日
  3. 『幕末史』p136 半藤一利新潮社 2008年12月20日
  4. 『朝日日本歴史人物事典』朝日新聞社編 1994年10月22日
  5. 『大江戸死体考―人斬り浅右衛門の時代』 氏家幹人著(平凡社新書ISBN 978-4-582-85016-1
  6. 『新選組のすべて』 新人物往来社ISBN 978-4-404-031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