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4대 히토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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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토키리(일본어:
4대 히토키리
[편집]다나카 신베(
- 사쓰마번 출신. 1862년 8월 15일 금태합이라고 불릴 만큼 권세를 휘두르던 시마다 마사타츠를 살해했다. 이것이 이후 연발하는 천주사건의 첫 사례였다.[4] 그 밖에도 다수의 암살을 행하여 「사람 베는 신베에」(人斬り新兵衛)의 별명을 얻었다. 사쿠헤이문 밖의 변으로 아네가코우지 킨토모를 암살했다는 혐의로 포박되어 옥중에서 자살했다.
가와카미 겐사이(
- 히고번 출신. 1864년 8월 12일 병학자 사쿠마 쇼잔을 암살하는 등의 활동으로 「사람 베는 겐사이」(人斬り彦斎)의 별명을 얻었다.[4] 메이지 유신 이후 타카다 겐페이(高田 源兵衛)라고 이름을 고쳤다. 그 뒤 이경사건 개입 혐의와 히로사와 사네오미 암살 혐의로 포박되어 참수형에 처해졌다.
오카다 이조(
- 도사번 출신. 많은 좌막파에게 위해를 가했으며, 특히 요시다 토요 암살범을 탐색하기 위해 상경한 토사번사 이노우에 사이치로를 참살한 건 등으로 「사람 베는 이조」(人斬り以蔵)의 별명을 얻었다.[4] 교토에서 포박되어 토사에서 고문을 받은 끝에 일련의 천주활동을 자백하고 참수형에 처해진 뒤 옥문에 효수되었다.
나카무라 한지로(
- 사쓰마번 출신. 일련의 천주행동으로 「사람 베는 한지로」(人斬り半次郎)의 별명을 얻었다.[4] 1867년 9월 30일 병학자이며 자신의 스승이기도 한 아카마츠 코사부로를 암살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키리노 토시아키(
桐 野 利 秋 )로 개명, 그 뒤 서남전쟁에 반군으로 참여하여 정부군과 교전 끝에 이마에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
그 밖의 히토키리
[편집]이하 두 명은 위의 4대 히토키리와 반대로 막신 또는 좌막파였다.
야마다 아사에몬(
- 에도 막부의 공의어양어용(公儀御様御用: 도검을 이용한 사형집행인). 「사람 베는 아사에몬」(人斬り浅右衛門)이라고도 불렸다.[5] 야마다 아사에몬이라는 이름은 야마다가 당주에게 대대로 계승되었으며, 9대까지 존재한다. 7대 야마다 아사에몬 요시토시가 안세이 대옥 때 요시다 쇼인 등을 참수했다.
오이시 구와지로(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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