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쿠르고스 (스파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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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쿠르고스(그리스어: Λυκοῦργος, 기원전 800년? ~ 730년)는 스파르타의 전설적인 입법자로서, 델포이의 아폴론 신탁에 따라 스파르타 사회를 군국주의로 개혁하였다. 리쿠르고스의 모든 개혁은 스파르타 사람의 세가지 덕목인 (시민간의) 평등, 군사적 적합성, 엄격성을 지향하였다.[1]
고대 역사가 헤로도토스, 크세노폰, 플라톤, 플루타르코스가 그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리쿠르고스가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고대의 여러 역사가들[2]은 리쿠르고스가 공동체적이고 군국주의적인 개혁으로 스파르타 사회를 바꾸었다고 여기며, 이 개혁안에는 토지 균등 분배, 시민간의 완전한 평등, 이기심 억제 등의 내용이 존재한다. 고대 역사가들은 그를 기원전 7세기 초반의 사람으로 비정하고 있다.
리쿠르고스의 개혁
[편집]기존 스파르타 사회는 혼란과 부패의 연속이었다. 그는 수많은 지역을 여행한 후 여러 정치 사례를 터득하였으며, 귀국했을 때 조카인 카릴라우스 왕의 신뢰를 받았기에 개혁을 순탄하게 착수할 수 있었으나, 이 과정에서 부유층과 기존 기득권의 극심한 반발이 생겼으며, 집단 린치를 당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개혁을 성공적으로 끝마쳤으며, 결국 스파르타 군국주의 체제가 완성되게 된다.
- 28명으로 구성된 장로회를 설치하여, 왕과 동등한 입법 권력을 가지게 하였다.
- 귀금속 화폐를 폐지하고 식초에 담가둔 녹슨 쇠 화폐를 사용하게 하였다. 녹슨 쇠 화폐는 단위 무게당으로 가치를 환산해서 귀금속 화폐랑 비교했을 때 훨씬 더 많은 수를 요했기에 숨기거나 옮기거나 도둑질하기 힘들었다. 때문에 관리의 비리와 재산 은닉 현상이 사라졌다.
- 주택의 크기와 형태를 제한하여 모든 스파르타인이 동일한 주거 수준을 갖게 하였다.
- 가구, 의복 등 생필품의 수준을 제한하여 모든 스파르타인이 비슷한 종류의 물건을 사용하게 강제하였다.
- 부유층의 토지와 노예를 몰수하여 가난한 시민에게 분배하였다. 모든 스파르타인을 자립 가능한 자영농으로 성장시켰으며, 가질 수 있는 땅의 크기도 제한하여 경제 수준에서 평등을 달성하였다. 그러나 이후 거듭되는 전쟁으로 인해 헤일로타이 소유에 불균형이 초래되면서 어느 정도의 빈부격차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 공동 식당을 구역 단위마다 설치하여 공동 식사를 하게 하였다. 공동 식사로부터 시민들이 서로 친분을 쌓았으며, 이는 굳건한 형제애를 형성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 시민들에게 자녀 부양 의무와 교육 의무를 부여했으며, 모든 시민의 자녀들에게 교육 혜택을 제공하였다. 교육은 생활 유지에 필수적인 사냥, 합리적 사고에 필수적인 논변학 및 수학과 전투에 도움이 되는 실전 체육이 주된 내용이었으며, 이를 아고게(agoge)라고 한다. 하지만, 장애가 있는 아이의 경우는 사회 효율성 증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죽이거나 내다 버리게 하였으며, 이 교육 과정에서 지향하는 과도한 경쟁성으로 인해 사망하는 아이들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 재산 권리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에 차별을 두지 않았으며, 양성에게 비슷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했다.
- 민선관 제도를 두어 왕·장로·시민을 감시하게 하였으며, 이기적이고 향락적인 생활 양식에 대한 억제가 이루어졌다.
- 모든 스파르타 시민에게 군사 훈련을 의무로 참여하게 하도록 강제하였다. 주기적인 노예 학살과 사냥을 통해 전투 감각을 익히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