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1392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1389년 1390년 1391년 - 1392년 - 1393년 1394년 1395년
연대
1370년대 1380년대 - 1390년대 - 1400년대 1410년대
세기
12세기 13세기 - 14세기 - 15세기 16세기
서기 1392년의 다른 기년법
간지 신미년~임신
단기 3725년
그레고리력 1392년
MCCCXCII
불기 1936년
이슬람력 794~795
황기 2052년
히브리력 5152~5153
아시리아력 6142년
에티오피아력 1386~1387


연호

[편집]

기년

[편집]

사건

[편집]
  • 4월 26일(음력 4월 4일) - 정몽주가 이방원의 심복 조영규에게 선죽교에서 죽임을 당함.
  • 8월 2일(음력 7월 17일) - 태조(太祖)가 송경(松京) 수창궁(壽昌宮)에서 공양왕으로부터 선위(禪位) 받는 형식으로 왕위에 오름으로써 조선왕조가 개국하였다.[1]
  • 음력 10월 19일 - 일본 축주 태수(筑州太守) 장충가(藏忠佳)가 승려 장주(藏主)·종순(宗順) 등을 보내어 사로잡혀 갔던 조선의 인민들을 돌려보내고 또 수호(修好)하기를 청하였다.[2]
  • 12월 1일(음력 11월 17일) - 인재의 천거 등 시무책을 정함.
  • 음력 11월 29일 - 예문관 학사(藝文館學士) 한상질(韓尙質)을 명나라 남경에 보내, 조선(朝鮮)과 화령(和寧) 중에서 국호(國號)를 고치기를 청하게 하였다.[3]
  • 음력 11월 - 조선이 승려 각추(覺鎚)를 무로마치 막부에 보내, 왜구의 금압(禁壓)과 피로인(被虜人)의 귀환을 요구함과 동시에 수호(修好)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대해 아시카가 요시미쓰는 답사(答使)를 보내 피로인 100명을 송환하면서 조선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4][5][6]

탄생

[편집]

사망

[편집]

각주

[편집]
  1. 태조실록 (1413) 1권, 태조 1년 7월 17일 병신 1번째기사; 《조선왕조실록》〈조선왕조실록/태조실록/1년〉7월 17일, 태조가 수창궁(壽昌宮)에서 즉위하였다.
  2. 태조실록 (1413) 2권, 태조 1년 10월 19일 정묘 2번째기사
  3. 태조실록 (1413) 2권, 태조 1년 11월 29일 병오 1번째기사
  4. 하우봉 2010 155쪽. "태조 이성계는 즉위한 직후 室町幕府에 승려 覺鎚를 보내 왜구의 금압과 피로인의 쇄환을 요구함과 동시에 修好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대해 막부의 3대장군 足利義滿은 答使를 보내 피로인 100명을 송환하면서 조선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5. 손승철, 박찬기 2008 115쪽. "1392.11 승려 각추 왜구금압요청 『善隣國宝紀』"
  6. 《선린국보기(善隣国宝記)》

참고 문헌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