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주 공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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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주 공방전
후한말의 일부
교전국
유비 군벌 손권 군벌
지휘관
관우
관평
미방
요화
부사인
왕보
조루
여몽
육손
반장
서성

형주 공방전후한말의 군벌 유비 세력의 형주 방면 사령관 관우가 조조를 치기 위해 번성 전투를 원정했으나 실패한 뒤, 유비와 동맹 관계이던 군벌 손권이 그 동맹을 파기하고 형주를 공격하여 형주를 탈취하고 관우를 죽인 사건이다.육손과 여몽이 살아있을때 제갈근을 사자로 보내 관우에게 손권의 아들과 관우의 딸을 혼사시키려 했으나 관우가 이를 거절하자 빌미로 삼아 형주를 공격한다. 우선 형주의 수비병을 안심시키기 위해 소수의 병력을 장사치로 변장시키고 수비병들을 안심시킨다. 후에 봉수대를 점령해버리므로써 연락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게 하고 관우의 봉화체계는 무용지물이 된다. 당시 관우는 번성을 공략하고 있었고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위와의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형주를 수비하던 병력도 동원하면서까지 공격하여 번성을 포위하고 방덕을 잡아 처형, 투항한 우금은 형주의 옥으로 보내버린다. 이 와중에 촉병들 사이에서 여몽이 형주를 점령했다는 말이 퍼지자 군심이 동요한다. 관평은 "유언비어에 관심을 가지는 자는 참하겠다" 고 하지만, 향수병이 걸린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결국 500병력밖에 남지 않은 관우는 돌파하여 촉까지 가려 했지만 마충,반장등의 매복에 걸려 잡혀 오나라왕 손권 앞에서 양자 관평과 함께 참수된다. 이소식을 들은 유비는 성도의 병력 수십만과 장비의 군세를 합해 육손을 죽이려하나 육손의 화공에 당해 몇백만 이끌고 백제성으로 피신한다. 결국 타지에서 병이 든 유비는 백제성에서 문무백관이 보는 앞에서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형주 공방전 직후 조조는 사망하고, 조비후한 헌제에게 선양을 받아 위 황조를 개창함으로써 30여년간의 후한 말은 종언을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