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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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임
許任
조선국 경기도 남양부 부사
(前 朝鮮國 京畿道 南陽府 府使)
임기 1622년 ~ 1629년
군주 광해군 이혼
인조 이종
섭정 흥안군 이제(前)
신상정보
출생일 ?
출생지 조선 전라도 나주
사망일 ?
사망지 조선 경기도 남양
거주지 조선 전라도 목포
조선 강원도 양양
조선 경기도 시흥
조선 경상도 경산
조선 경상도 김해
조선 경기도 마전
조선 한성부
조선 경기도 남양
본관 하양(河陽)
경력 의관 겸 관료
정당 무소속
부모 허억복(부)

허임(許任, 생몰년 미상)은 조선 중기 시대 의관 겸 관료로 선조 치세 시절에서 광해군 때까지 활동한 관료이자 명의이다. 본관은 하양(河陽)이고 호(號)는 산남(山南)이며 본래 상민 출신이다. 침술에 능했다고 한다. 전라도 나주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전라도 목포강원도 양양에서 각기각기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경기도 시흥경상도 경산경상도 김해에서 각기각기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인조 치세 시절이던 1644년(인조 22년)《침구경험방》을 간행하였으며, 그 이외 저서로는 《사의경험방》 등이 있다.

생애[편집]

본관은 하양(河陽)인데 그의 선조 중 누구의 대에 몰락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의 아버지 허억복(許億福)은 강원도 양양 출신의 관노로, 피리 솜씨가 뛰어나 그 실력을 인정받아 이후 장악원에서 악공으로 일했다.[1] 어머니는 정승 김귀영 집안의 사가 시녀였다.[1]

선조편두통을 자주 앓았었는데, 1601년경을 전후하여 그가 선조의 편두통을 치료하면서 내의원에 들게 되었다. 허임은 뜸과 침에 뛰어났으며 선조 때 침을 잘 놓는 의사로 뽑혀 왕을 치료하였다. 1609년(광해군 2년) 마전 군수(麻田郡守)의 관직을 제수받았는데, 사헌부에서 허임의 출신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이를 반대하였다. 광해군은 처음에는 이를 듣지 않았으나 신하들이 거듭 간하자 결국 군수의 직을 거두어들이고 그에게 녹봉을 지급하도록 명했다.[2]

1612년 광해군이 해주(海州)에 있을 때 그를 모신 공로로 3등 공신에 녹훈되고, 허준과 함께 의사로서 이름난 사람들을 기록한 《의관록》에 기록되었다. 벼슬은 부평 부사·남양 부사에까지 이르렀다. 1616년에는 영평 현령(永平縣令)에 제수되었고, 이듬해에는 양주 목사(楊州牧使)가 되었다. 이번에도 사간원이 허임의 신분이 낮음을 이유로 거듭 벼슬을 거둘 것을 청해 관직이 부평 부사(富平府使)로 바뀌었다.[3] 1622년에는 남양 부사(南陽府使)의 자리에 올랐다.

저서[편집]

  • 《침구경험방(鍼灸經驗方)》
  • 《동의문견방(東醫聞見方)》
  • 《사의경험방》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소설[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김호, 《조선의 명의들》, 살림출판사, p.39
  2. 《광해군일기》 21권, 1609년(광해군 1) 10월 16일
  3. 《광해군일기》 113권, 1617년(광해군 9) 3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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