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임 바이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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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임 바이츠만
חיים ווייצמאן
하임 바이츠만
하임 바이츠만
이스라엘 이스라엘제1대 대통령
임기 1949년 2월 17일 ~ 1952년 11월 9일
후임: 이착 벤즈비(2대)

출생일 1874년 11월 27일(1874-11-27)
출생지 러시아 제국 러시아 제국 모탈(현재는 벨라루스 영토이다.)
사망일 1952년 11월 9일 (77세)
사망지 이스라엘 이스라엘 레호보트
정당 시온주의
종교 유대교
배우자 베라 바이츠만
서명 Chaim Weizmann Signature.svg

하임 아즈리엘 바이츠만(히브리어: חיים ווייצמאן, 아랍어: حاييم وايزمان‎, 영어: Chaim Azriel Weizmann, 1874년 11월 27일 ~ 1952년 11월 9일)은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으로, 아세톤을 만든 후 대통령이 된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대통령이 되기까지[편집]

하임 바이츠만은 1874년에 현재 벨라루스령으로 되어있는 러시아 제국모탈에서 태어났다. 비록 젊은 시절에는 시온주의 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였지만, 본래 평범한 화학자에 지나지 않던 그가 대통령이 된 사연은 이렇다. 1910년에 바이츠만은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설탕으로 인조 고무를 만드는 실험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아세톤이 만들어지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학계에 발표하였으나, 아무도 이에 주목하지 않았다. 이 무렵, 1914년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영국 정부에서는 과학자들을 상대로 군사적 가치가 있을만한 연구논문을 모집하였다. 바이츠만이 제출한 논문도 있었지만, 처음에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바이츠만은 당시 영국의 총리로 재임 중이던,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로부터 아세톤의 제조법을 개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옥수수를 이용하여 아세톤을 대량 생산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공로로 영국 정부는 그에게 대영제국 훈장을 수여하기로 한다.

그러나[편집]

하지만 그는 당당히 거부했다. 자신은 그 대신에 조상의 땅인 팔레스타인에 가서 살게 해 줄것을 요구했다. 그 무렵 유대인들은 조국 없이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었기 때문에, 조상의 땅에 나라를 세우기를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전세계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져 있었고, 영국은 바이츠만에게 우간다로의 이주를 제안했으나,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만약 누군가 당신들에게 파리에 가서 나라를 세우라고 제안하면 당신들은 런던을 버릴 것입니까? 예루살렘에는 우리 선조들의 뼈가 묻혀 있습니다. 런던이 원시적이었던 그 옛날부터 예루살렘은 우리의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그곳을 되돌려 주십시오.

이것이 밸푸어 선언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주변의 아랍계 국가들과 충돌하면서 영국은 다시 이 문제를 연합국에 넘기기로 했다. 이를 눈치챈 바이츠만은 수많은 유대인 단체의 대표들과 정치인들을 만났다.

당선과 죽음[편집]

오랜 노력 끝에 1948년이스라엘이 설립되었고, 이스라엘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1952년에 재임하던 중에 사망하였고, 레호보트에 묻혔다.

전 임
(없음)
제1대 이스라엘의 대통령
1949년 ~ 1952년
후 임
이착 벤즈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