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의 임시 수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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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0일 (금) 16:41 판
임시 수도 강계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한국 전쟁에서 평양에서 철수해 강계를 임시 수도를 결정한 것을 말한다.
전개
- 대한민국과 국제 연합군이 9월 27일에 서울을 수복하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부대, 기관, 정부 등이 평양에서 철수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10월 7일에 국제 연합군이 38도선을 넘자 본격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부대, 기관, 정부 등이 평양으로 철수하여 강계를 임시 수도로 결정하였다. [1] 그러다가 중화인민공화국의 개입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2월 6일에 평양을 수복하였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부는 곧 평양으로 환도하였다.
- 중국의 마오쩌둥이 10월 4일 중화인민공화국이 한국전쟁에 개입을 결정하였다. [2]그리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은 10월 19일에 맨 처음으로 압록강을 건너 한국전쟁에 개입하여 청천강을 넘은 국제 연합군과 10월 25일에 온정리 전투를 벌였고 한편 동부 국제 연합군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임시 수도 강계를 점령하려고 했지만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장진호 전투에서 패하면서 흥남에서 철수하였다. 그리고 11월 27일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인해전술로 제2차 청천강 전투에서도 크게 이겨 12월 2일에 평양을 철수하였고 대한민국도 12월 4일에 평양에서 마지막으로 철수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일성은 평양에서 덕천으로 철수하여 잠시 이곳에 머물렀는데 10월 19일에 덕천에서 철수하고 강계 근처에 머물렀다. 김정일은 만주의 장춘으로 피신하였다.[3]
주석
- ↑ 한국전쟁 Korean war
- ↑ Korean War (한국전쟁) 6/8
- ↑ 김일성의 패주 행각 1999.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