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한일신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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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할 만한 사항[편집]

일단 제 '사견'임을 고려하고 읽어 주십시오.

1907년의 정미의병에서부터 한일 합방 1주년이 되는 1911년까지 조국을 독립시키기 위한 무장 항전에 참여한 수효는 전체 인구 1천 312만 명 중에서 14만 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2] 한일 합방 무렵 전체 인구 대비 항일 전투 참전율은 1.1%였다.[2] 민영환, 이상설 등 일부 양반 사대부와 지식인층들을 제외하고는 조용하였다.

역사가 신복룡은 이를 두고 '한 민족이 멸망하면서 한국처럼 무기력했고, 침묵한 민족이 흔치 않았다.[3]'고 개탄하였다.

위와 같이 본문에 서술되어 있는데, 저것은 신복룡 씨 개인의견입니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전국민의 1% 정도가 저항한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레지스탕스 적극 활동자가 5만이 못 되고, 어느 정도 활동한 사람이라도 20만, 도움을 준 사람들까지 합쳐도 30~40만 정도입니다. 이게 당시 프랑스 국민이 4천만이므로 딱 1%입니다. 이것도 아주 이례적인 사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적극 활동자도 아니고, 실제 전투 참전율이 1.1%라고 합니다. 적극 활동자라고 하더라도 전부 전투에 참여한 것이 아니므로 저 14만 명의 수와 1.1%의 비율이 어마어마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논문이 있다면 좋은데, 죄다 결론이 신복룡 씨와 비슷합니다. 대한제국이 멸망하면서 한국인은 거의 저항을 안 했다고... ㅡㅡ;; 전세계적으로 높은 비율인데, 그게 고작 1.1%라서 적다고 치부하는 민족성... ㅡㅡ;; --Knight2000 (토론) 2019년 8월 29일 (목) 21:53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