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위만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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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의견: 1년 전 (InternetArchiveBot님) - 주제: 외부 링크 수정됨 (2022년 12월)

문서와 관계 없는 내용[편집]

'위만조선' 문서와 관계 없는 내용이 문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당 내용은 삭제하거나 다른 문서로 이동하였으면 합니다. jtm71 2007년 10월 31일 (수) 16:01 (KST)답변

출처 제시 필요[편집]

출처가 제시되지 않아 삭제된 내용을 복원하려면, 적당한 출처가 제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jtm71 2007년 12월 8일 (토) 17:13 (KST)답변

기(其) 사항에 대한 답변[편집]

1. 위만조선에 대한 국가적 개념은 한국사 전반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개념이므로 작성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국가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소를 제시 하기 위해서 귀하께서 지적하신 부분을 삽입한 것이고 이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서 현재 사학과 정치학에서 정론(定論) 혹은 이미 확정된 사실이라고 여겨지는 그 주장을 펼친 살린스와 플래너리의 주장을 언급한 것입니다. 따라서, 귀하께서 주장하신 요지에 대해서는 '1. 국가 문서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은 위만조선의 국가적 개념이 한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 개념이 매우 중대하므로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고, '2. 일부학자의 주장'이라는 것은 국가에 대한 개념중에서 현재 정론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주장을 펼친 학자들을 언급했으므로 일부학자라는것과 그들이 '주장'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또한, '3. 독자적판단에 대한'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기술한 내용이 이미 학계에서 정론 혹은 확정[확증]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만큼 독자적 판단이라고 볼수 없으며 이는 '학계의 정론'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는 '독자적 연구'의 범위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믿을 수 있는 사실, 아이디어, 의견, 주장을 편집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분석하거나 종합한 자료를 소개하고, 이에 대한 믿을 수 있는 출처를 밝히지 않습니다.'에 대한 부분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해설] 위만조선의 국가적 개념이 왜 중요한가? 귀하께서 만일 '한국사'를 전공하셨다면 고조선(단군조선)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인정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 이유는 크게 다음과 같습니다. 1. 기술적 연대와 유물의 연대가 일치하지 않고, 2. 그 중심지의 영역과 위치가 매우 불분명하며, 3. 단군왕검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분석해 볼때 그 존재와 고조선(단군조선)을 국가로서 인정하기 어렵다. 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위만조선의 경우에는 위의 3가지의 조건을 모두 충족하여 '진정한 국가'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고조선에 대한 계급에 대한 언급은 있으나, 관직이나 귀족 작위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하지만, 위만조선의 경우 그 관직과 일종의 귀족작위에 대해서 언급됩니다. 이는 위만조선이 '확정적'인 계급사회를 갖췄다고 볼수 있으며 이는 곧 '체계적인 국가'를 갖추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우리 민족의 최초의 나라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로써, 위만조선에 대한 국가적 개념은 한국사적으로나 우리 민족적으로나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 한국(남한) 사학계의 중론입니다.

참고] 또한 저의 기술 사항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며 현재 학계의 중론이기 때문에 이미 확증된 사실로 받아들여 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만일, 출처에 대해서 계속 해서 주장하신다면, 출처가 명시되어 있지 않은 대부분의 문서에 대해서도 '삭제'조치를 하셨으면 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wikipetan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출처 제시 요구에는 출처를 제시하는 것이 옳습니다. 출처 제시를 요구했다는 것은 출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별도로 출처 제시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jtm71 2007년 12월 8일 (토) 22:19 (KST)답변
그렇다면 왜 출처가 필요한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명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귀하께서는 '총론'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시지 않았는데, 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해서 국가적 개념에 대한 출처를 요구하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귀하의 발언 중 '출처 제시 요구에는 출처를 제시하는 것이 옳습니다.'은 매우 일방적이고 고압적인 자세로 상당히 비민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을 배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로 귀하께서 지적하신 내용은 제가 직접 기술한 것이기에 별다른 출처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제 서명을 추가하기 전에 제 동의를 구하시길 바랍니다. 서명의 임의 추가는 그 당사자가 동의를 구하기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Wikipetan
주장하시는 내용의 근거를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명이 붙어있지 않은 글에는 누구나 서명을 붙일 수 있습니다. 위키백과:확인 가능에서 설명하듯이, ‘만약 문서의 주제에 대해 출처로 삼을 만한 신뢰할 수 있는 제3자의 글이 없다면, 그러한 문서는 위키백과에 존재하지 않아야 합니다.’ 출처를 제시할 수 있으면서도 제시하지 않는다면, 이는 위키백과:편집 분쟁을 유도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jtm71 2007년 12월 9일 (일) 10:29 (KST)답변
계속 되돌리시는 내용을 다시 한 번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 저 글은 한 번 쓰고 다시 되돌아본 글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독자연구가 의심되는 글이며, 저 내용이 적당하지 않다는 것은 개인의 생각만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려 한다면, 적절한 출처를 제시하면 해결될 일입니다. jtm71 2007년 12월 9일 (일) 10:55 (KST)답변
제가 기술한 문서는 출처가 없기 때문에 출처를 명시할 수 없으며(본인이 직접 연구, 작성), 귀하께서 어떠한 부분이 독자연구의 어떤 금지사항에 해당하시는지를 구체적으로 진술 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귀하 개인만이 아니라 여러분이 적당치 않다고 생각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에 대한 근거도 제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귀하께서는 '저 글은 한 번 쓰고 다시 되돌아본 글이라 할 수 없습니다.'라고 판단하셨는데, 어떤 근거로 그 기술의 기록자도 아닌데 주관적 판단을 했는지도 반드시 그리고 분명히 밝혀주시기를 청하는 바입니다. -Wikipetan
독자연구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금지하고 있는데, 제가 기술한 문서는 다음의 사항에 전혀 위배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새로운 문제 해결 방법 또는 이론을 소개합니다.
  • 고유한 아이디어를 소개합니다.
  • 새로운 용어를 정의합니다.
  • 기존 용어를 새롭게 정의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가정하여 부여합니다.
  • 믿을 수 있는 출처가 없는 주장을 소개하고, 이를 다른 아이디어, 이론, 주장, 입장을 반박하거나 지지하는데 사용합니다.
  • 믿을 수 있는 사실, 아이디어, 의견, 주장을 편집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분석하거나 종합한 자료를 소개하고, 이에 대한 믿을 수 있는 출처를 밝히지 않습니다.
  • 새로운 단어를 소개하거나 사용하고, 이에 대한 믿을 수 있는 출처를 밝히지 않습니다.

만일 이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시려 한다면 위의 조항에 맞는 구절을 구체적으로 진술하시고 그렇게 판단한 이유를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귀하께서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출처를 제시하시길 재차 논한다면, (본인이 직접기술한 내용이기에)출처 제시가 실무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관련 논문이나 참고문헌을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편집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출처를 제시하면 될 일입니다. 단, 출처는, 해당 내용이 본 문서에 포함되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동일한 논지를 갖는 논문의 제시 등) 어떤 내용을 위키백과에 포함시키기 위한 최소 조건은 확인 가능성이며, 단순히 진실이라는 이유로는 부족합니다. 출처가 제시되지 않는다면, 저작권 침해의 가능성도 고려될 수 있습니다. jtm71 2007년 12월 9일 (일) 13:41 (KST)답변
제가 기술을 작성할 때 참고했었던 문헌을 제시했습니다. 참고로, 제가 직접 작성하고 정리한 문건이므로 저작권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국가적 성격에 대한 참고 문헌도 추가적으로 제시 했습니다. -Wikipetan
위키백과는 논문이 아닌 백과사전의 형식으로 기술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철자에 맞게 정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출처는, 해당 문장에 <ref>출처</ref> 으로 표시하면 됩니다.) jtm71 2007년 12월 10일 (월) 12:19 (KST)답변
편집지침을 연구해 본후에 문서는 곧 수정하겠습니다. 출처 대신에 제 기술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참고 문헌을 아래에 첨부 했습니다. 이는 다음의 독자연구 규정에 따른 것입니다.
  • 당신이 쓴 글이 독자연구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과 같은 주장 또는 논거를 제시하는 공개 발표된 믿을 수 있는 출처를 밝히는 것 뿐입니다.

-Wikipetan

위만조선은 한국사가 아닙니다.[편집]

봉건 왕조 시대에 왕조 혈통이 망하면 사라진 것, 위만조선 왕 위만이 중국사람인데 어떻게 한국사가 될 수 있습니까? 궤변입니다. 위만이 사실은 조선사람였다는 주장이 허구란 것은 성씨 시스템에서 뻔하게 증명되기 때문에 출처조차 필요없습니다. 위만(衛滿)위(衞)나라 위강숙(衛 康叔)희(姬)봉(封)후손 중국 사람인 것은 위(衛)글자 희성 위씨(姬姓 衞氏)에서 바로 알 수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조선인 운운하는 사람이나, 한국사에 편입한 역사 학자들은 자질 부족입니다. 이것도 독자 연구입니까? 성씨에 대해서 조금만 공부하면 알 수 있는 그냥 상식입니다.

사람들이 위키를 검색하는 이유는, 다른 검색 보다 과학적 합리적 상식적 정보를 체계적으로 잘 정리했기 때문이지, 고지식한 역사 학자들 논쟁 따위나 보려고 검색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분야는 정보를 올바르게 습득하기가 수월한데, 역사는 정말 읽으면 읽을 수록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 너무 많습니다. 상식적인 내용도 말 꼬리 출처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역사 토론은 불필요하게 느껴집니다.

또, 중국사람 위만이 1,000여명 연나라 중국인을 이끌고 조선에 위장 망명 반란 고조선을 멸망시켰는데, 중국과 조선이 연합한 국가란 말은 궤변입니다. 왕조국가는 왕실이 망하면 종 친 겁니다.

그럼 사서는 왜 위만조선을 한국사에 편입할 수 밖에 없었을까? 편입하지 않으면 위만조선 86년 동안 혈통 명맥이 끊기지 않습니까? 이전 국가들과 이후 국가들 연계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무리하게 편성한 겁니다.

위만 조선은 겨우 86년짜리 단명 국가로 확장기 얼마되지 않고, 동북 3성을 점령하고 있던 예(濊)=기(箕)+맥(貊)=부여(扶餘)=고조선에서, BC300년 연나라 진개 침공 때 예(濊)=기(箕)가 요하지역을 상실하면서, 현재 평양으로 왕검성 이전했고, 연나라 위만 1000여명 위장 귀순 반란에 망하면서 점령한 것은 평양 주변 지역에 국한된 것입니다. 한 4군현은 위만이 망하면서 생긴 것이고, 위만은 중국사람 유입 지속적 받아들이면서 세를 확장할 때, 이미 길림성 지역에 있던 맥(貊)=부여(扶餘)는 위만 조선 통제권 밖에서 BC300년부터 시작했고, 예(濊)=기(箕)가 평양을 뺏길 때, 동쪽엔 동예, 옥저 역시 존재했던 것이고, 남쪽엔 마한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런 시간적 지리적 사실을 무시하고, 중국 사람이 세운 국가를 무리하게 한국사에 편입하니까, 위키 부여를 보면 BC 300년 시작됐다고 쓰면서, 한국사 관련 도표 표시엔 저 밑에 처박히는 결과가 되는 겁니다.

한국사에서 위만조선 삭제한다해도, 상관 없는 이유는, 시간 공간적으로 부여, 동예, 옥저, 마한이 병립했기 때문에 한국사가 통째로 망한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려, 조선 학자들은 바보라서 있지도 않은 사실들을 기록한 것은 아닌데, 현재 학자들이 몇몇 틀릴 수 있는 부분을 꼬투리 잡아 전체를 가짜 프레임 씌우고 있고, 유물 분석은 추정적 요소가 기록 보다 훨씬 클 수 밖에 없는데, 유물 출토 자기 주관에 맞춰 짜집기 한 것을 마치 그것만 100% 진실처럼 얘기합니다.

기자조선은 사대주의라 칩시다. 이름 따위가 뭐가 중요합니까? 유물 출토 기후 발견되도 이런 저런 이유들고 무시하고, 집집마다 다른 조상 상계 모여서 짜 맞춘 것도 아닌데, 연대가 잘 맞는 부분이 더 많은데 일부 부정확한 것 꼬투리 잡아 전체를 매도하고,

역사학자들이 수만명 되는 것도 아니고, 겨우 소수 인원이 연구하고 토론한 내용을 역사학계 운운, 진실을 보려는 태도가 아닙니다.

국가의 조건 역시, 고조선 시대는 완전한 국가로 볼 수 없는 대종 소종 씨족 형태 족읍들로 구성된 집성촌 연합체일뿐, 현대 국가 개념을 고대사에 적용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고조선 시대 자체가 신석기-청동기 상황에 국가 요소 구분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위만 조선은 절대 한국사가 될 수 없습니다. 한국사에서 86년 시간 공간 허전하면, 고대사 연구 더해서 보충할 여지 충분합니다. 여러 기록 정황을 보면, 한국인 조상 출발이 요하 동북3성이 분명한데, 역사적 연대도 얼마 되지 않은 짧은 기간에만 치중, 고대사를 중국 관점에 맞게 방치하고 있습니다. 조선은 조선왕조가 이름을 그렇게 지었으니까 조선왕조로 불러야겠지만, 고조선은 고려 조선시대 학자들이 제대로 된 역사 해석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조선인 것 아닙니까? 조선(朝鮮)은 글자 자체에서 절대 우리 조상이 작명한 글자가 아닙니다. 아침이 고운 곳이 어떻게 우리 생각입니까? 동쪽에 해뜨는 곳이란 자체가 중국인 관점에서 작명 한 것입니다. 조선은 몰라도, 고조선은 이름을 바꿔야 합니다. 단국 기국으로 바꿔야 합니다.--Tol6560 (토론) 2019년 4월 24일 (수) 02:29 (KST)답변

외부 링크 수정됨 (2022년 12월)[편집]

안녕하세요 편집자 여러분,

위만조선에서 1개의 링크를 수정했습니다. 제 편집을 검토해 주세요. 질문이 있거나, 봇이 이 문서나 링크를 무시하기를 바라신다면 간단한 자주 묻는 질문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세요. 다음 변경사항을 적용했습니다:

봇의 문제를 수정하는 것에 관해서는 자주 묻는 질문을 참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InternetArchiveBot (버그를 제보하기) 2022년 12월 31일 (토) 02:58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