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광개토대왕릉비

문서 내용이 다른 언어로는 지원되지 않습니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광개토대왕비의 설명에서 설립자가 잘못되었습니다. 광개토대왕비의 설립자는 광개토대왕이 아니라 장수왕입니다. —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Ksb0605(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위키백과의 문서는 직접 고치실 수 있습니다. 위쪽의 편집 버튼을 사용하세요. -- IRTC1015(··) 2007년 2월 26일 (화) 16:21 (KST)[답변]

광개토대왕릉비와 같은 것이 아닙니까?? 합치는 게 좋을듯 합니다.---Ph 2007년 3월 2일 (금) 18:18 (KST)[답변]

합쳤습니다. --Puzzlet Chung 2007년 6월 15일 (금) 08:50 (KST)[답변]

하평양 관련 문제[편집]

전조 (오호십육국)(前趙)의 초기 수도 평양은 ‘서울’을 말하는 명칭이 아니라 중국 병주(并州) 소속의 도시 이름입니다. 게다가, 전조의 평양은 平壤이 아니라 平陽으로서 글자가 전혀 다릅니다. 이는 명백하게 진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며, 출처 또한 불분명합니다. 삭제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Xakyntos (토론) 2008년 7월 22일 (화) 14:06 (KST)[답변]

그 부분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음 문단의 경우는 어느정도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박영규의 책이 백과사전에 아예 쓸 수 없을 정도로 소설로 가득 찬 것이 아니라면 등재할 만하다고 하겠습니다. adidas (토론) 2008년 7월 22일 (화) 19:51 (KST)[답변]
서술된 바와 같이 박영규 한 사람만의 주장을 독립적인 문단에 넣기에는 난해해 보입니다. 물론 하평양을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간혹 보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오직 박영규 개인만의 주장을 실은 것이기 때문에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박영규를 제외한 다른 하평양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설을 실거나, 아니면 아예 문단을 없애거나, 한 두줄 정도로 줄여 다른 문단에 넣는 것이 좋을듯 합니다.--Ph (토론) 2008년 8월 12일 (화) 10:43 (KST)[답변]
고구려의 평양이 현대의 평양과 다르다는 이설은 많이 있습니다. 박영규 이외에 이런 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을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adidas (토론) 2008년 8월 12일 (화) 13:20 (KST)[답변]
예, 그것이 좋겠습니다.--Ph (토론) 2008년 8월 12일 (화) 19:20 (KST)[답변]
고구려의 평양과 현대의 평양이 다르다는 이설은 많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학자들이 그 설을 지지하느냐보다 그 이설이 근거를 갖추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주로 재야 사학계에서는 사료에 나오는 지명을 가지고 가급적 고구려의 평양을 한반도 밖에서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역사 연구에서 사료에만 의지하여 지명을 비정하는 것은 위험한 행동입니다. 지명 비정은 고고학 자료와 문헌 자료를 같이 고려해야 합니다. 장수왕이 옮긴 평양은 지금의 한반도의 평양이 맞습니다. 안학궁입니다. 고구려 최전성기인 장수왕 시기에 만들어진 궁궐과 부합되게 규모가 굉장히 큽니다. 그리고 평원왕 때 옮긴 평양성은 지금 평양에 남아 있는 평양성곽입니다. 이를 삼국사기에서는 장안성이라 합니다. 더구나 이 장안성의 성벽돌에는 공사 감독자가 고구려 고유 관직명인 소형으로 되어 있고, 고구려 성의 특성인 치, 들여쌓기, 옹성 등이 있어 고구려 성임이 틀림 없습니다. 그 이전에 국내성이 파괴되어 옮겨간 평양은 고고학적으로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이 없습니다. 하지만 동천왕 시기와 고국원왕 시기에 옮겨간 평양은 재야 사학자들의 주장처럼 요동이 아니라 지금의 평양 부근에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동천왕 시기에는 위나라 관구검의 침입으로 국내성이 불 탔고, 고국원왕 시기에는 전연의 침입으로 그리하였습니다. 둘 다 서쪽으로부터 온 침략군들이니 요동으로 옮겼을리는 만무합니다. 적의 침략이 있은 후에 더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것은 상식입니다. 더구나 지금의 평양이 고구려의 평양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보다 많습니다. 위키백과의 지침에도 하평양은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고구려의 평양과 지금의 평양이 같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강단에서 활약하는 교수들이기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박영규의 책을 주석으로 싣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박영규는 역사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제대로 된 주장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박영규가 역사를 전공하지 않아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자의적인 주장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박영규의 한권으로 읽는 고구려 왕조 실록 광개토왕 실록에서 광개토왕의 즉위 나이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습니다. 삼국사기와 광개토왕릉비문의 연대가 차이나는 것을 아무런 역사적 근거가 없이 고국양왕이 양위를 하여 광개토왕이 17세에 왕위에 올랐다고 박영규는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비문에는 분명 18세에 왕위에 올랐다고 돼 있으며, 고국양왕이 선위했다는 어느 기록도 없습니다. 연대의 차이가 난다면 비문의 것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박영규의 실력이 드러납니다.--고구려인 (토론) 2009년 2월 16일 (월) 00:52 (KST)[답변]
박영규가 일개 재야사학자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저서에서도 배울 점은 어느정도 있습니다. 취할 점은 취하고, 버릴 점은 버리면 되겠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16일 (월) 02:20 (KST)[답변]
저는 박영규의 설 중에서 버릴 점이 바로 하평양 관련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욱 궁금한 것은 박영규라는 취미 작가보다 고구려 연구자들이 수두룩한데 그 연구자들의 주장은 왜 싣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구려인 (토론) 2009년 2월 16일 (월) 09:56 (KST)[답변]
그 다른 '고구려 연구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넣어 주겠죠. 위키백과의 편집방침은 특정 전문가가 특정 주제를 잘 알아서 편집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각자 알고 있는 만큼 편집해서 전문가 못지않은 결과물을 내자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편집자들의 편집이 완벽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박영규 말고는 고구려연구재단에서 만든 것을 조금 보았는데 지나치게 민족주의에 입각해서 보기가 좀 그렇더군요. 제 전공 분야도 아니고 해서 잘 아시는 분이 연구 성과를 추가로 넣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16일 (월) 10:25 (KST)[답변]

문서 이동 이유[편집]

광개토왕릉비는 현재 학계 공통으로 "광개토왕릉비"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를 "광개토대왕릉비"라고 부르는 것은 허용된 변용일 뿐, 공식적인 이름은 광개토왕릉비입니다. 그러므로 문서의 기본 타이틀은 "광개토왕릉비"가 되어야 합니다.--Xakyntos (토론) 2008년 9월 23일 (화) 15:30 (KST)[답변]

대왕과 태왕의 문제[편집]

광개토대왕을 광개토태왕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확고하게 확립된 주장이 아니며, 적어도 학계 공통으로 인정되는 주장은 아님이 분명합니다. 국사학계에서 공통적으로 활용되는 광개토대왕의 공식 명칭은 광개토대왕입니다. 백과사전의 내용에서 일부의 주장이 공식적인 용어로 사용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광개토태왕이라 서술하는 행위는 위키백과:중립적 시각에 어긋납니다. --Xakyntos (토론) 2008년 10월 20일 (월) 14:52 (KST)[답변]

학계의 통설이라는 것은 다수의 강단 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설이 아니라 서울대 교수들이 주장하는 설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태왕을 쓰는 것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꽤 많은 걸로 압니다. 이름을 거론해 본다면, 김용만(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 윤명철(동국대 교수), 금경숙(동북아역사재단), 김현숙(동북아역사재단), 시노하라 히로카타, 서길수(서경대 교수),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서영수(단국대 교수), 서영대 등입니다. --고구려인 (토론) 2009년 2월 16일 (월) 01:11 (KST)[답변]
한국사에 대한 가장 기본이 암겨있는 국정 국사 교과서도 '광개토대왕'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위에 xakyn님도 광개토'태왕'이 상당히 널리 쓰이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셨습니다. 다만, 백과사전에 적절한 용어는 '광개토대왕'이지 '광개토태왕'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16일 (월) 02:19 (KST)[답변]

영락은 광개토왕의 연호가 맞음[편집]

주석을 보니 영락이 광개토대왕의 연호로 추정이라고 했는데, 이는 광개토태왕릉비를 제대로 보지 못해서 생겨난 결과입니다. 분명히 광개토태왕릉비문에서는 광개토태왕이 18세에 왕위에 올라 연호를 영락이라 했다 기록돼 있습니다. --고구려인 (토론) 2009년 2월 16일 (월) 01:08 (KST)[답변]

비문 내용의 대폭 보충[편집]

그동안 없었던 광개토대왕 비문 내용이 대폭 보강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고구려발해 학회에서 '무단 펌질'하였다는데 있습니다. 해당 내용이 '무단 펌질'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자료가 아니라면 곤란합니다. 저작권이 없는 원문만 살리고 번역된 부분은 축약 설명만 하고, 전체 설명이 들어있는 링크를 제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16일 (월) 02:16 (KST)[답변]

무단 펌질, 가능합니다. 제가 링크해 놓은 곳으로 가면 고구려발해학회에서 번역한 광개토왕릉비문을 한글 파일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이는 무한 다운로드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고구려인 (토론) 2009년 2월 16일 (월) 09:52 (KST)[답변]
다운은 받을 수 있지만 저작권 문제등이 해결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위키백과의 GFDL 저작권과 호환되는 자료인지 불투명합니다. adidas (토론) 2009년 2월 16일 (월) 10:21 (KST)[답변]
이런 내용은 위키 인용집에 있어야 하는 내용 아닌가요? 본문 내용은 간략하게 하고 자세한 부분은 인용집으로 넘겨야 합니다. 일단은 인용문틀을 붙이긴 했는데, 전반적으로 판단 해보건데, 삭제 해야합니다.--Ph (토론) 2009년 2월 16일 (월) 11:03 (KST)[답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단에 보면 주석 부분에 위키문헌이 링크되어 있습니다. 해당 부분에는 비문의 원문만 제시되어 있고 우측에 국문 번역 부분은 그냥 하얗게 비어 있습니다. 그쪽으로 옮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Xakyntos (토론) 2009년 2월 16일 (월) 11:58 (KST)[답변]

외부 링크 수정됨 (2018년 11월)[편집]

안녕하세요 편집자 여러분,

광개토왕릉비에서 1개의 링크를 수정했습니다. 제 편집을 검토해 주세요. 질문이 있거나, 봇이 이 문서나 링크를 무시하기를 바라신다면 간단한 자주 묻는 질문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세요. 다음 변경사항을 적용했습니다:

봇의 문제를 수정하는 것에 관해서는 자주 묻는 질문을 참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InternetArchiveBot (버그를 제보하기) 2018년 11월 13일 (화) 04:07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