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사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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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太師)는 고대 중국에서 사용된 관직명으로, 천자(황제)의 스승을 가리킨다. 천자의 국정을 자문하고, 육경의 으뜸이었다.

개요[편집]

한서》 백관지(百官志) 공경표(公卿表) 상(上)에 따르면 왕조에서는 태사와 태부(太傅), 태보(太保)를 삼공(三公)이라 불렀고, 천자에게 국정 방향을 자문하는 직책이었다고 되어 있다. 왕조의 마지막 왕인 를 피해 고조선으로 달아났다는 기자가 상 왕조에서 태사를 지냈었다고 알려져 있다. 성왕 때에는 주공 단이 처음으로 이 지위를 맡았다고 한다. 한편 주 왕조에서는 천자의 스승 이외에 악관(楽官)의 지위로써도 「태사」라는 이름이 보인다.

전한 평제 원시(元始) 원년(서기 1년), 어린 나이로 왕망 등에게 옹립된 평제의 보좌와 교육을 위해 태사, 태부, 태보가 설치되었다. 금인자수(金印紫綬)로 지위는 대사마(大司馬), 대사도(大司徒), 대사공(大司空)의 삼공보다도 높았고, 태사는 태사, 태부, 태보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지위였다. 태사, 태부, 태보 및 소부(少傅)의 네 관직을 사보(四輔)라 불렀다. 이후로 태사는 두어지지 않았으나, 후한 헌제 초평 2년(191년)에 동탁이 태사가 되었다. 지위는 여러 제후왕보다도 높은 것이었다(《후한서》 동탁전).

에서 다시금 태사와 태부, 태보를 두었으나, 「사」(師)라는 글자가 경제(추존)의 휘를 범한다 하여 이를 피해 태재(太宰)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후의 중국 왕조에서도 태사, 태부, 태보가 설치되었으나, 적합한 자가 없으면 비워두기도 하는 명예직이었다. 《당육전》에는 태사 등 「사부지관(師傅之官)」은 한 애제(哀帝), 평제 때 「삼공」의 위에 있어 「상공」(上公)이라고 부르던 것이 북위에서는 태사, 태부, 태보를 삼사(三師)라 불렀다고 되어 있으며, 북주(北周) 때 다시 한 번 「삼공」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 시대에는 「삼사」라고 불렸다.

한국의 고려조선 왕조, 베트남 왕조에서도 중국의 제도를 본떠 태사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