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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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성(崔壽城: 1487년[1]~1521년 11월 19일(음력 10월 21일)[2])은 조선시대 전기의 학자·화가다. 자는 가진(可鎭), 호는 원정(猿亭), 북해거사(北海居士), 경포산인(鏡浦山人), 본관은 강릉이다. 진위현(振威縣: 오늘날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에서 태어났다.[3]

생애[편집]

일찍이 학문을 연마하여 사림(士林)간에 명망 높은 학자가 되었으며 시문이나 서화, 음률, 수학에 모두 뛰어났다. 35살 때 신사무옥(辛巳誣獄)에 연루되어 죽었고, 사후에는 문정(文正)이라는 시호도 받았으며, 1545년(인종 원년)에는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또한 강릉 향사(鄕祠)에 배향되었다.[4] 전국의 명산(名山)을 찾아다니며 시작(詩作)과 서화에 심취했는데 그의 그림은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사람과 명나라 사신도 극찬한 만큼 뛰어났다고 한다.[5]

전기 자료[편집]

  • 송징은, 《약헌집》 권14, 증영의정 원정 최 공 행장

각주[편집]

  1. 송징은, 《약헌집》 권14, 贈領議政猿亭崔公行狀, "考諱世孝。(중략) 娶承旨崔哲寬女。以成化丁未生公。"
  2. 《중종실록》 권43, 중종 16년(1521년) 10월 21일(기해) 4번째 기사
  3. 조익, 《포저집》 권23, 禹處士傳, “所友善徐花潭及崔猿亭壽峸。(중략) 崔猿亭者。振威人。”
  4. 《연려실기술 별집》 권4, 서원, 강원도 강릉 향현사우 조
  5. 송징은, 앞의 글, "公一日到東湖。訪金冲庵。冲庵顚倒趨迎。開樽極歡。酒酣。冲庵請公掃松竹圖。公醉臥揮筆。沖庵卽成簇子。至今在湖堂。知畫者曰。'眞天下絶筆'。公所寫之畫。嘗在內藏庫。倭人適至。求見一國名畫。皆不稱其意。見公畫。極愛之。以寶劍一雙請換曰。'此劍直三百金'。上不許。詔使來。又以公畫進。詔使歎曰。'誠天下絶寶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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